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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계획했던 K형 방문을 결행하다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되던 태풍 메아리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비켜갔다. 그 태풍이 제주 부근에서 북상하며 대전과 충청지방에 집중호우를 뿌리던 25일 아침, 2006년부터 개설 운영하는 재활카페를 통해 알게 되어 그간 틈틈이 이메일을 통해 근황과 재활경험을 공유하던 부산의 K형(만 4개월 만에 의식을 회복한-K형에게 드리는 공개편지 참조 일 게재)을 만나기 위해 부산행을 감행했다. 내가 생활하는 전북 전주에서는 경부선KTX를 이용할 수 없어 차를 가지고 대전역까지 이동해 대전역 부설 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9시 5분발 KTX를 이용했다.

 

2005년 그 끔찍한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재활에 매진하며 내 상태와 재활에 대한 개념을 잡고자 수없이 인터넷을 뒤지다가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나의 재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개설한 재활카페를 통해 최초로 연락을 해온 사람이 K형의 부인이다.

 

의학적으로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의 기간에 따라 회복비율의 차이를 보인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어, 무려 4개월(120여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는 K형은 내가 처했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 재활하며 얻은 값진 경험들을 나누고 환자 입장에서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절실히 바랐던 것들을 K형의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주기 위해 그간 시험 준비를 위해 미뤘던 방문을 감행한 것이다. 더 어려운 재활과정을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K형이 '전열'을 정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재활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부산으로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K형과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사항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가족들은 의연히 대처하고 있었다. 부산 유수의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의 부인(남편이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의 회복을 굳게 믿고 회복 후를 대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내가 개설한 카페를 발견하고 연락을 해올 정도로 침착한)이 상황 전체를 장악하고 오랜 임상경험(실제 재활의학과의 임상경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또 이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까지 논리적으로 설득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재활에 초점을 맟추고 있어 열차 안에서 준비했던 자료들 대부분이 필요없게 됐다.

 

흔하지 않은 미만성 축삭손상(Diffuse Axonal Injury)을 당한 나의 방문에 K형의 아버지(김성규)까지 병원에서 기다리시다가(며느리와 교대로 병원에서 K형을 간병하고 계신다고 했다)는 '귀인'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셨다. 도시 규모가 있어선지 입원해 있는 매드윌 재활병원은 한눈에도 재활환경이 잘 조성된 병원이었다. 식사시간을 포함해 4시간여를 함께 하며 방문목적에 맞는 충실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이번 방문을 나름대로 정리하다 보니 언어구사가 되지않는 지금 진민씨의 상황에서 정규치료시간 외에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 몇가지를 정리하고자 한다.

 

만남시 전하지 못했던 재활에 관한 당부 몇가지

 

1. 원활한 의사소통 수단을 하루속히 마련하십시오.

 

언어구사가 안되는 K형은 현재 가족들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부인 정도만 K형의 입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상황이더군요. 저는 하루 속히 쌍방간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도록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가족에게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자신의 현재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사소한 것까지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휴대폰도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시도해 보고 본인이 힘들어 해서 그만두신 것 같은데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자판을 하나하나 누르며 글자를 입력하다 보면 뇌의 활동을 늘리게 되고 가족 외에 그간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과 연락이 가능한 수단이 생기게 되면서 환자본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부수적인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던 제 경우에도 사고 후 상당 기간 휴대폰이 없어 아내의 휴대폰이 세상과 저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독립해서 혼자 입원생활을 하면서 휴대폰을 마련하게 됐고, 처음에는 휴대폰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낯설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주고받으며 비로서 저의 존재감을 확실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K형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환자도 노력해서 휴대폰 문자로 능숙하게 소통하는 사람을 저는 실제 보았고 지금도 그사람과 문자를 통해 많은 대화를 합니다.

 

기본적인 언어구사를 못하는 K형에게 더 절실하다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번 그러겠지만 환자가 힘들어 하고 못 견뎌하는 것으로 쉽게 포기하시지 마시길 빕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1. 쌍방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2. 여가시간 틈틈이 잠자는 K형의 인식을 깨우기 위해 3. 환자 스스로가 본인의 존재감을 확실히 가지도록 하기 위해 휴대폰을 마련하여 활용하시길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2. 실제 현실에서 본인에게 역할을 주어라

 

재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실복귀라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번 병원의 허락을 받고 외박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외박하는 기회를 통해 현실 복귀를 하나하나 준비하는 데 활용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물건을 구입하고 잔돈이 남으면 모아두었다가 헤어져 사는 딸이 오면 돼지저금통에 넣게 하는 게 요즘 제게 생긴 큰 즐거움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사고 전 그렇게 하는 게 K형의 큰 즐거움이었다고 부인이 이야기하자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K형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사소한 것까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입원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업전선에 뛰어든 아내를 대신해 토요일이면 오전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집으로 이동해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에서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와 함께 놀아주는 게 제가 현실에서 맡은 최초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사소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저에 대한 존재감을 크게 가질 수 있었고 재활에 몰입하는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파를 써는 역할을 맡기든지, 설거지를 하게 한다든지 하나의 역할을 맡기고 철저하게 그 일은 K형의 몫으로 미루게 되면 건강할 때 아내를 위해 동전을 모으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런 것들이 재활에 대한 동기를 자극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3. 일과후의 여가시간을 활용해라

 

사고 전 K형이 컴퓨터 관련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입원생활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철저히 활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식사와 수면시간 외에는 병실에 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치료시간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 저녁식사 후 여가시간을 철저히 활용하시면 큰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뇌 손상환자들은 누구나 밸런스 기능의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모든 재활운동은 운동기능의 이상이 생긴 쪽의 운동기능 향상을 위한 것입니다. 방문 시에 잠깐 말씀한 것처럼 손가락, 손목, 어깨, 오금, 발목 부위를 중점적으로 자극해주고 운동해주면 게 큰 효과를 보게 될 겁니다. 물론 저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리라 사료되지만 손가락을 자극하고 운동해 주면 입 주변의 근육들이 자극됨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입원했을 때 언어치료 5개월 하고는 따로 언어치료는 받지 않고도 자가 재활을 하며 언어기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자가 재활을 하며 제게 맞는 운동을 수없이 찾으며 그게 제게 효과적인 운동인지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운동을 했을 때 편마비가 있는 왼쪽 뺨과 입주변의 근육에 느껴지는 자극으로 판단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털에서 '손가락 체조'를 검색해서 시도해 보십시오. 매일 규칙적으로 횟수를 정해놓고 꾸준히 하게 되면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말씀드린 손가락 마찰시키기, 손목 돌리기 등도 마찬가지지요. 대화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될 정도로 하시면 큰 효과가 올 것이고 이는 결국 언어기능의 향상도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환자 스스로 어느 자세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니 꾸준히, 규칙적으로만 하시면 큰 효과를 보시게 될 겁니다. 지금 가장 큰 애로인 언어기능의 향상에 특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 위기상황 속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고 견뎌 나온 믿음과 사랑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인의 신뢰와 사랑이 K형의 재활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유일하고 강력한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노트북을 가져다가 타자연습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 일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세상과 단절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인터넷의 매체 특성을 잘 이용해 적극적으로 각 분야에 의견을 개진하게 하는 은일 장기적으로 볼 때 상당히 중요합니다. 타자연습을 통해 자유롭지 못한 손가락 기능을 향상시키다 보면 언어기능의 개선도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재활을 하시다 보면 병원치료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3년간 병원치료를 받은 후 제가 내린 결론은 병원치료는 방어적이고 장애상태를 약간 호전시켜 가장 기초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그 치료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병원치료를 통해서는 각 분야의 치료사들을 십분 활용해 재활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진력해 독자적인 운동이 가능하고, 재활에 대한 개념이 정립된 후에는 과감히 자가 재활로 전환하시는 게 효과적입니다.

 

재활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눈에 띄게 기능이 향상된 부분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앞서가게 되는데 어느 한 부위의 기능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모든 부위의 기능이 결코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번 그걸 확인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속절없이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굽이굽이 인내를 가지고 나가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양이나 횟수보다는 정확한 자세가 중요함을 늘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몸의 전 근육을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운동을 여러 자세로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해온 저도 요즘에도 조금만 자세를 바꿔보면 전혀 다른 자극이 오는 처녀림 같은 근육의 자극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로서, 갑작스런 K형의 사고로 인해 시급히 수습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앞에 한 상황 속에서도 남편의 의식회복을 믿고 회복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K형 부인의 침착성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내내 궁금했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경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이겨낸 K형의 생명력, 그런 남편의 소생을 굳게 믿고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온 부인의 그 힘의 원동력은 결국 짙게 드리웠던 죽음의 장막까지도 걷어낸 두 분의 아름다운 '사랑'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돌아오는 열차의 차창을 거세게 때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지금 K형이 가지고 있는 장애도 결국은 두 분의 사랑의 힘으로 반드시 극복하실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 K형에게 했던 말대로 이제 우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를 훌훌 털고 '외상 후 성장'을 이루어 새로운 인생을 엮어나갑시다. 이 여름을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재활에 임하시길 응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사고를 당했음에도 공통의 부상과 무의식의 터널을 지난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호남의 전주에서 부산을 방문하여 함께 장애를 극복할것을 약속하다.


#외상후 성장#재활에 관한 팁#미만성 축삭#메드윌 병원#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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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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