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A 교사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A 교사가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기록한 생활기록부(생기부) 가운데 자기 자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내용을 고쳐달라는 요구였다.
A 교사는 "종합의견을 적어놓고 최종 마감하지도 않았고 교장 결재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학부모가 기록 내용을 알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올해 A 교사처럼 고3 담임을 맡은 이들에게 미리 생기부 내용을 챙겨본 학부모들이 내용 변경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생기부 내용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믿는 학부모들이 대입 수시 전형을 앞두고 교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로 생기부 내용을 변경해주는 사례도 있다"는 게 전교조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종 결재를 받은 내용이 아닌 작성 중인 내용이기 때문에 담임이 임의로 내용을 손봐도 된다"는 것이다.
'종합의견', '진로지도사항' 등은 작업 중에도 볼 수 있다?이런 심상치 않은 사태의 배경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허술한 NEIS 관리체제가 자리 잡고 있는 사실이 4일 확인됐다.
교과부와 NEIS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가 기록한 생활기록부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학부모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담임 교사가 생기부를 마감하거나 교장 결재를 받지도 않았고, 게다가 학부모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기록 내용이 새고 있는 것이다.
확인 결과, 교사가 임의로 작성한 생기부 기록이 NEIS 학부모 서비스를 통해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항목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진로지도사항', '교과특기사항' 등 이전 생기부 조작 논란을 일으킨 사항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에 대해 교과부의 NEIS 관리부서와 KERIS 쪽에서는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취재에 들어가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 시스템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3시간 30분 동안 시간을 끌었다.
교과부-KERIS "종합의견 등은 저장하는 순간 학부모 확인 가능"결국 KERIS의 한 팀장은 "조사를 해보니 교과 성적은 마감 처리 뒤 교장 결재를 받은 다음 '학부모 전송' 버튼을 눌러야 학부모가 볼 수 있지만 종합의견 등은 교사가 기록을 저장하는 순간 학부모가 내용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교과부 중견관리도 "이것은 2006년 NEIS 학부모 서비스 시작 당시부터 그랬던 것"이라면서 "논란이 된다면 생활기록부 담당 부서와 협의해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교사는 "교과 성적은 오히려 점수가 나와 있어 수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교사의 주관이 들어간 나머지 항목에서 최근 생기부 조작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면서 "이것은 교과부의 주먹구구식 NEIS 운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성호 전교조 참교육실 정책국장도 "교사가 작업 중인 생기부 내용을 학부모가 미리 보고 수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학부모의 민원과 청탁 등을 배제할 수 없을 뿐더러 교사의 평가권이 심각하게 위협 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국장은 "생기부 기록은 최종 마감 뒤 완성본을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고 생기부의 신뢰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