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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황태국 황태국은 술 마신 뒤 속풀이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특히 무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뒤 기운이 쪼옥 빠져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흐물거릴 때 쌀밥 한 그릇 말아 죽 먹듯이 후루룩 마시고 나면 마치 원기주사(링거)를 맞고 일어난 것처럼 온몸이 가볍다.
맑은 황태국황태국은 술 마신 뒤 속풀이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특히 무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뒤 기운이 쪼옥 빠져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흐물거릴 때 쌀밥 한 그릇 말아 죽 먹듯이 후루룩 마시고 나면 마치 원기주사(링거)를 맞고 일어난 것처럼 온몸이 가볍다. ⓒ 이종찬

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황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해장국이다. 그렇다고 황태가 해장국으로만 쓰인다는 뜻은 아니다. 황태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황태구이, 황태설렁탕, 황태순두부찌개 등 여러 가지다. 요즘 들어서는 황태강정, 황태메밀냉면 등 예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음식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길손(글쓴이)은 술을 참 좋아한다. 그것도 황태국물처럼 뽀오얀 막걸리라는 약술(?)을. 그렇다고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거나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손발을 발발 떠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오마이뉴스>에 맛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맛객'(김용철)이 그랬던가. 술을 마신 그 다음 날 속풀이를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그래. 술과 해장국은 어쩌면 불(여름)과 물(보양)인지도 모른다. 술이 불이라서 마시고 난 그 다음 날 이른 새벽이면 속에 천불을 일으켜 속을 쓰리게 태운다면 해장국은 물이라서 한 그릇 후루룩 마시면 그 천불을 순식간에 스르르 잠재우니까 말이다. 문제는 술을 마신 뒤 어떤 해장국을 마시느냐에 따라 몸에 깃드는 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 체질에 따라 물론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길손이 치는 으뜸 해장국은 뽀얗게 우러난 황태국이다. 황태국은 술 마신 뒤 속풀이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특히 무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뒤 기운이 쪼옥 빠져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흐물거릴 때 쌀밥 한 그릇 말아 죽 먹듯이 후루룩 마시고 나면 마치 원기 주사(링거)를 맞고 일어난 것처럼 온몸이 가볍다.      

물에 불리는 황태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깊은 뽀오얀 빛이 나는 황태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먼저 황태를 10~20분쯤 물에 불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찢어야 한다
물에 불리는 황태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깊은 뽀오얀 빛이 나는 황태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먼저 황태를 10~20분쯤 물에 불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찢어야 한다 ⓒ 이종찬

잘게 찢은 황태 황태를 물에 불리는 까닭은 그냥 찢으려면 잘 찢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찢다가 손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게 찢은 황태황태를 물에 불리는 까닭은 그냥 찢으려면 잘 찢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찢다가 손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종찬

"와 하필 죄 없는 조선여자만 패야 하나 그 말 아이가"

황태국,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강원도 대관령이나 진부령을 떠올린다. 까닭은 그 곳에서 나는 황태가 우리나라에서 나는 황태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손도 몇 해 앞 이맘때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황태 먹거리촌'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막걸리처럼 뽀오얀 황태국을 먹고 쓰린 속도 스르르 풀고 빠진 기운까지 되살린 때가 있다.
  
그렇다고 강원도까지 갈 필요는 없다. 요즘 가까운 마트에 가도 살이 통통하고 빛이 감돌며 노란색을 진하게 띤 황태가 널려 있다. 황태는 사실 겨울에 내장을 뺀 명태를 얼렸다 녹였다 해서 만든 음식이다. 황태가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도 그 산간지역에 눈이 많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많아 으뜸 황태를 만들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황태는 몸속에 찌든 독을 해독하며 과음으로 인해 피로한 간을 해독하는 것은 물론 원기회복, 혈압조절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그뿐이 아니다. 명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황태는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이어서 여성들 피부피용,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그만이다.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에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까지 선물하는 황태. 길손이 어릴 때 소주를 즐겨 마시던 아버지 아침 해장국으로 늘 밥상 위에 오른 맑은 황태국. 그때 어머니께서 황태국을 끓이는 법은 독특했다. 먼저 잘 마른 황태를 절구통 입구에 올려놓고 빨래방망이로 도리깨질을 하듯이 마구 두들겼다.

참기름에 볶는다 볶는 까닭은 국을 끓일 때 고깃살이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참기름에 볶는다볶는 까닭은 국을 끓일 때 고깃살이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 이종찬

"옛말에 조선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개 패듯이 패야 칸다(한다) 캤지만(했지만) 내 말은 와(왜) 하필 죄 없는 조선여자만 패야 하나 그 말 아이가. 남자든 짐승이든 물괴기(물고기)든 말 안 듣는 거는 요렇게 빨래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패야 정신을 차리고 성질이 살살 부드러워진다카이."

황태국이 상에 오르는 날은 꼭 아버지 해장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밭에서 일하다 고추나 가지, 오이 서리가 너무 심해 누구랑 말다툼을 심하게 했다거나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면 마치 분풀이를 하듯 황태를 마구 두들겨 황태국을 끓이곤 하셨다. 그때 어머니께서 밥상 위에 올리는 황태국은 참기름이 동동 뜨는 뽀얀 국물 속에 갈빛을 띤 노란 황태와 빗겨 쓴 무 몇 토막이 모두였다. 

양념 송송 썬 매운 고추와 대파, 빻은 마늘, 빗겨 쓴 양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맑은 황태국 조리 끝.
양념송송 썬 매운 고추와 대파, 빻은 마늘, 빗겨 쓴 양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맑은 황태국 조리 끝. ⓒ 이종찬

황태국 팔팔 끓인 뒤 중간불에서 15분쯤 더 끓여 국물을 우려낸다
황태국팔팔 끓인 뒤 중간불에서 15분쯤 더 끓여 국물을 우려낸다 ⓒ 이종찬

맑은 황태국, 구수하고 깊은 첫맛에 깔끔한 뒷맛

"아따! 황태 그거 노란 게 때깔 한번 좋네. 저어기 아주머니! 황태 이거 한 봉지 얼마씩 해요?"
"5천 원요."
"왜 그리 비싸요? 천 원만 깎아주시면 안 돼요?"
"그건 대관령에서 날아온 진짜 황태라서 좀 비싸요. 글구, 그거 한 봉지 팔아봐야 5백 원도 채 남지 않는데 천 원씩이나 어떻게 깎아줘요. 그러지 말고 북어포나 사 가세요. 북어포는 한 봉지 3천 원에 드릴게요."
"황태를 어찌 북어포에 비교할 수 있겠어요." 

장대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3일(일) 저녁 5시,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 중랑구 면목시장에 갔다가 건어물을 파는 가게에서 내놓은 황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난 주 내내 모임이 많아 쉬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신 데다 장맛비까지 엄청나게 쏟아져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탓인지 무언가를 넣은 시원한 해장국을 끓여 후루루룩 마시고 싶은 때였다.

비도 오락가락 하고 있고, 사우나에 가서 땀을 엄청 빼고 나와도 풀리지 않는 몸. 지난 주에 너무 무리수를 두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뭘 넣고 해장국을 끓여야 쓰린 속도 풀고, 무거운 몸도 가벼워질까 고민하던 차에 황태가 눈에 띄었으니 이것 저것 따질 겨를이 있었겠는가. 길손이 어릴 때부터 특히 좋아했던 국이 황태국 아니었던가.      

황태 한 봉지를 5천 원 주고 산 길손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황태국을 끓이기 위해 황태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깔끔하면서도 구수하고 뽀오얀 빛이 나는 황태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먼저 황태를 10~20분쯤 물에 불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찢어야 한다. 황태를 물에 불리는 까닭은 그냥 찢으려면 잘 찢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찢다가 손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게 찢은 황태는 해장국을 끓일 냄비에 넣어 참기름을 한 수저 두른 뒤 5분쯤 달달 볶는다. 이렇게 볶는 까닭은 국을 끓일 때 고깃살이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미리 우려낸 멸치 맛국물과 빗겨 쓴 생무를 넣고 센 불에 한소끔 끓인다. 황태국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간불에서 10~15분쯤 더 국물을 우려낸 뒤 송송 썬 매운 고추와 대파, 빻은 마늘, 빗겨 쓴 양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맑은 황태국 조리 끝.

맑은 황태국 길손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맑은 황태국을 아주 좋아했다
맑은 황태국길손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맑은 황태국을 아주 좋아했다 ⓒ 이종찬

입맛에 따라 콩나물, 고춧가루, 두부, 달걀을 넣어도 황태국이 지닌 시원하고도 구수한 맛이 달아나진 않는다. 길손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맑은 황태국을 아주 좋아했다. 맑은 황태국은 첫 맛이 구수하고 깊으면서도 뒷맛이 아주 깔끔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철, 뜨거운 황태국이 싫다면 잘 끓인 황태국을 냉장실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으면 맑은 냉황태국을 즐길 수도 있다.  

"아빠! 이게 무슨 맛 냄새야?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 끓이려고 하는 거야?"
"아니, 오늘은 아빠가 기운이 하도 없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맑은 황태국 끓여 몸보신 좀 하려고 하는데... 이 맑은 황태국도 비오는 날 먹으면 맛이 더욱 좋아. 너도 한 그릇 줄까?"
"쬐끔만 줘 봐.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입에 침이 절로 고여."
"만날 돈가스니 소시지니, 참치캔이니 하는 그런 인스턴트 식품만 먹지 말고 이런 자연 건강식을 자주 먹어야 몸에 좋은 거야. 어때? 너가 좋아하는 매콤한 라면 국물보다 훨씬 맛이 부드럽고 구수하지?"
"응. 아빠 음식 솜씨는 정말 끝내줘. 내일 아침에도 이 국 먹을래."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건강하게-나만의 보양식' 응모 글입니다.



#맑은 황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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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종찬의 <맛이 있는 풍경>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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