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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주 오래 전 여름 이맘 때마다 제주도 애월읍 금성마을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오일장에서 사온 꿩 한 마리를 푹 고아 엿을 만들어 큰 손자인 내게 한 그릇씩 먹여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바닷가 마을에서 평생 해녀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할아버지가 6.25전쟁 중에 3남매를 두고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셨기에 할머니는 홀로 생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말마다 할머니 댁을 찾는 것을 일종의 효도로 여겼고 방학이면 할머니와 지낸 날도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물질해서 갓 캐온 싱싱한 전복으로 죽을 끊여주거나 각종 생선으로 맛난 음식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음식은 제주의 자연산 꿩고기를 푹 고아 만든 엿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꿩 엿을 한 솥 만드셨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서 두 그릇은 먹어야 흡족해 하셨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양 손으로 들기도 무거울 정도로 큰 그릇에 담아 주셨습니다. 할머니가 담아 준 꿩 엿을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일주일 내내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놀다가 할머니 집으로 와 달짝지근한 꿩 엿 한 사발을 먹고는 기분 좋게 잠을 자곤 했습니다.

해녀 일을 오래 하신 할머니는 항상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셨고 '뇌신'이라는 약을 계속 드셨습니다. 할머니는 오히려 물속에 있을 때가 몸이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물질을 말려도 물질을 쉬지 않은 할머니. 가끔 뉴스에서 파도에 휩쓸려 해녀들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가슴이 쪼그라들어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비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오후 할머니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물질을 나섰다가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동네 주민이 떠다니는 할머니 몸을 발견해 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겼지만 할머니는 이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내가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결혼해서 증손주 보는 것을 기대하고 계셨는데 그 소원을 이뤄드리기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아직도 할머니가 큰 솥에서 엿을 고아 한 사발 퍼주시던 광경이 생생합니다. 그 때의 맛과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가 더 그립고 가슴이 애립니다.

요즘에는 꿩 엿 말고 간단하게 더위를 풀어주는 국을 즐겨 마십니다. 예전에는 시원한 선풍기나 에이컨이 없어 후끈 후끈한 무더위와 갈증을 날려버릴 비장의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서민적이면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더위와 갈증을 풀어줄 음식이 제주에 있습니다.
 보양식
보양식 ⓒ 송승헌

 보양식
보양식 ⓒ 송승헌

지금도 여름이면 하루에도 몇 그릇씩 이 국을 먹는데 육지에서 온 친구들이 이 국을 맛보면 정말 맛있고 시원하다고 합니다. 정작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면 놀라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시원한 냉수나 얼음 띄운 냉수에 제주 텃밭에서 키운 오이를 잘잘하게 채 썰어넣고 여기에 맛된장을 풀어넣어 저은 뒤 밥이랑 먹으면 속의 답답함이 확 풀리고 더위를 이길 힘이 생겨납니다.  비법은 간단하지만 먹어보는 분마다 그 맛과 효과에 놀랍니다. 이 국은 밥 없이 그냥 마셔도 좋습니다. 

예전에는 제주에 야생 꿩이 많아 농작물에 해를 입혔는데 요즘은 개체 수가 줄어 쉽게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겨울철에만 꿩사냥이 허용되기 때문에 더욱 야생꿩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꿩은 과격해서 닭이나 오리처럼 사육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에서 꿩요리는 비싼 음식으로 여겨져서 서민은 쉽게 맛보지 못합니다.대신 남녀노소 쉽게 만들어 한 사발 마시고 나면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제주산 오이냉국(생 된장국)을 권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건강하게.. 나만의 보양식'에 응모합니다.



#보양식#제주꿩엿#제주 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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