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 두 번째 행선지는 대구경북과 울산입니다. [편집자말] |
무더운 어느 날 오후, 낯선 발신번호가 뜨며 전화가 웽~.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는 놀라운 언어 적응력을 가진 대구 출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 왈, "'대구10미(味)' 중 다른 지역 사람들한테 내세울 만한 맛있는 음식과, 솔직히 맛없는 음식에 대해 기사를 써주세요."
오! 대구 음식? 주제는 좋다만 거기에 부합할 만한 것이 있을라나? 저기요, 저 지금껏 대구 음식 먹어왔고 해먹어도 봤지만, 맛있다는 음식 거론하기가 쪼매 애매한데 어쩌죠? 이거 뭐 하나마나한 게임 아닌가요?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네요. 게다가 편집기자님 역시, 솔직히 대구에는 맛있는 게 없다고 얘기한 후 말을 시작하기에 조금 마음은 놓였지만.
대구 음식이 어떠냐 하면, 양념이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그래서 눈 감고 먹으면 맛이 다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다진 마늘이랑 대파랑 고춧가루 우걱우걱 씹고 있는 거랑 비슷한데,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을라나요? 아마도 지독한 '향토 사랑'을 가진 분들은 뭐라고 막 고함지르며 달려올지 모르지만, 각자의 의견을 말하려고 만든 <오마이뉴스>니까 상관없겠죠?
제가 만들어서 먹는 음식이야 만드는 노고와 만들면서 이것저것 지나가는 생각들이 모여서 음식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다 보니 맛이 있건 없건 자화자찬하는 거지만, 사먹는 건 '내 돈 내고 내가 사먹는데 이걸 음식이라고 내놨나?' 하고 눈을 치뜨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맛집이라고 이름 높은 곳에서도 그건 예외가 없더군요. '맛없는 맛집'이 분명 존재했고, 더구나 '모범음식점' 마크 단 곳이 맛없는 경우는 더 더 더 많았거든요. 하여간 지금껏 먹어온 것 중에 그나마 덜 민망스럽고 손님 보기에 덜 부끄러운 대구 음식으로 한 상 그득 시켜봤으니 이리들 들어와보이소~.
매콤한 불고기 양념과 담백한 복어의 만남, 복어불고기이게 뭐냐면 '복어불고기'라는 음식이라예. 자, 콩나물이 타기 전에 젓가락으로 휙휙 저어서 복어랑 듬뿍 집어서 한 입 드셔보이소. 조금 매콤한가요? 불고기 양념을 복어에 응용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아구찜하고 굉장히 흡사한 맛이죠.
부드럽고 담백한 복어에 대구 사람 식성에 맞춰서 고추씨와 고춧가루, 파, 마늘 같은 향신채소를 팍팍 넣어 센 불에다 자작하게 볶아낸 것인데, 콩나물을 수북하게 넣어서 찐 아구찜과 재료와 조리법이 아주 비슷해요.
잘 손질해서 살코기만 발라낸 복어를 한 번 쪄내고, 이것을 매콤한 양념장에 다시 살짝 볶은 후, 손님상에 올려서 뭉근히 데워가며 먹는 음식이죠. 두툼하게 잘라낸 복어와 가느다란 무공해 콩나물 줄기를 통해 아삭한 식감과 촉촉한 소스맛을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단품으로도 먹을 수 있지만 코스 요리로 시키면 밑반찬과 복어껍질무침 같은 것을 가져다 줍니다. 고구마를 삶아서 설탕에 조린 것과 각종 나물을 심심하게 무친 것들과 새콤한 복어껍질이 담긴 접시들을 죽 늘어놓고 몇 젓가락 먹고 있으면, 복어불고기가 김을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채로 등장한답니다.
복어불고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아주 단순해요. 콩나물과 복어가 재료의 전부지만 너무 이것저것 채소를 넣어봐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는 건 뻔한 사실이죠. 복어의 맛이 워낙 밋밋한데 향이 강한 채소를 넣어봐야 주객전도가 될 뿐이니까요.
조금 맵다 싶으면 얼음 살살 뜬 동치미 국물을 후룩 마시거나 새콤달콤한 복어껍질무침도 한 입 먹어보세요. 꼬들꼬들하니 입안에서 탱글거리는 식감이 복어불고기의 '화한' 느낌을 잠시 가시게 해줄 거예요. 게다가 주메뉴라 해도 될 만큼 맛있기도 하고요.
대구 사람 입맛 사로잡는 '대구10미' 중에도 으뜸복어불고기가 탄생한 지는 약 20년 정도 되었어요. 대구의 맛집이 포진해 있는 수성못 '들안길'의 유명한 복어가게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이제는 대구의 몇몇 복어요리 체인점에서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가족 메뉴의 대명사이자, 주말이면 흔히 즐기는 외식 메뉴로 자리잡았죠. 그리고 대구를 알리는 10가지 음식인 '대구10미(味)'에 등극한 음식이기도 하고요.
대구10미에 속하는 음식으로는 복어불고기 말고도 ▲ 동인동의 매콤한 '찜갈비' ▲ 달성군 다사 지역 논에서 잡은 메기를 쑥갓, 버섯과 함께 맵고 얼큰하게 끓여낸 '논메기매운탕' ▲ 수성못에서 시작해 유명했지만 이제는 대구 어느 동네서건 먹을 수 있는 쫄깃하고 담백한 '막창구이' ▲ 밥과 국이 따로 나온다 해서 이름 붙여진 '따로국밥' ▲ 교동시장의 얇고 단순한 '납작만두' ▲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서 반죽을 만든 후 밀대로 밀어 면을 뽑고 멸치국물로만 맛을 낸 '누른국수' ▲ 생고기를 뭉텅뭉텅하게 잘라서 육회와 다르게 씹는 맛이 있는 '뭉티기' ▲ 우동면과 채소를 중화식 양념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 '야끼우동' ▲ 오징어나 소라 같은 해물을 배와 무 등의 과일과 채소로 매콤하게 무쳐낸 '반고개무침회'가 있습니다.
전부 역사가 오래된 음식은 아니고, 근래에 만들어진 것도 많아요. 논메기매운탕의 경우는 논에서 기르던 메기를 어떻게 처치할까 궁리하다가 IMF 무렵에 매운탕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인기를 끌면서 '할매메기매운탕'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어요. 뭉티기 같은 경우도 대구 동성로의 어느 식당에서 팔던 고기 스타일이 특이한 이름과 함께 '맛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구 대표음식의 하나가 되었답니다.
지금 소개해드리는 복어불고기도 2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졌지만 대구10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메뉴가 되어서 지금은 서울 등지에도 체인점이 있다고 하더군요. 복어가 피부에도 좋고 어린이나 노인들의 뼈 건강에도 좋다는 영양학적 근거, 철판에다 둘둘 볶아서 다같이 떠먹는 한국 식문화와 어우러져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고추씨가 들어 있어서 매콤하고, 녹말을 풀어 넣어서 진득한 양념이 촉촉하게 배어있는 게 특징이죠. 뼈를 잘 손질해서 만든 복어를 입안에 넣으면 그 볼륨감이 입 속 가득 느껴져서 굉장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요. 혀끝에 아릿하게 스치는 매콤함과 부드러움 때문에 인기가 많습니다.
불고기 양념에 볶아먹는 밥... 이게 정말 별미복어불고기의 장점은 복어의 뼈를 일일이 다 발라내고 살코기만 사용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여성이나 아이들이 먹을 거라면 양념을 조금 약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복어수육 같은 음식은 담백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져 복어의 향이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반면, 복어불고기는 맛이 강한 양념에 복어의 풍미가 가려져서 복어의 본래 맛을 잘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긴 합니다. 하지만 은근한 매콤함이 그립다면 먹어볼 만한 음식이죠. 최근에는 양념을 다소 약하게 해서 복어 특유의 풍미도 살리면서 콩나물이 가진 식감도 반영하려는 식당도 많아졌어요.
벌써 다 드셨어요? 하긴 2인상 차림인데 양이 좀 적긴 하네요. 어느 가게를 가든 양이 진짜 너무 적어서 간에 기별도 안 간다니까요. 이 점은 조금 시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격을 좀 더 올리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든가, 아니면 좀 더 양을 늘여서 박리다매를 노리든가요. 배가 아직 안 찼다 느끼시는 분들은 남은 양념에 볶은 밥으로 그 부족함을 좀 메울 수가 있어요.
아! 그새 밥 다 볶아져서 나왔네요. 꼭 '골드링'을 두른 피자 한 판 같네요. 볶음밥 둘레에 계란 노른자를 둘러서 내오니까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죠? 계란은 프라이팬의 미열로도 자연히 익으니까 밥이랑 같이 떠먹으면 되는 거죠.
사실 오늘의 메인 요리를 이 볶음밥으로 해도 될 만큼 이게 정말 별미네요. 따뜻하고 고소한데다 김과 들기름 향이 훅 지나가고, 파가 살캉살캉 씹히는 것이 풍미가 아주 그만이군요. 게다가 양념이 촉촉히 밥 속에 배어서 간도 딱 맞고요.
복어불고기의 경우는 만 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고, 코스 요리는 3만 원대부터 시작합니다. 인원 수에 맞춰서 주문할 수 있는 방식이죠. 코스 메뉴일 경우 복어껍질무침, 복어맑은탕이 추가되고, 가격에 따라서 튀김이 추가되기도 해요.
다만 이 음식은 담백한 맛이 최고의 자랑인 복어에 강한 양념을 추가했기 때문에 소스와 고기의 맛이 서로 겉도는 것이 흠이에요. 그래서 고기는 좀 싱겁고 콩나물에만 양념이 잔뜩 밴 경우가 다반사죠. 가게 밖 간판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쓰여 있고 단체장에게서 받은 맛집 표창장까지 걸려 있지만 이런 사소한 맛의 차이를 극복할 노력은 안 하나 보군요.
우악스럽지만 정 깊은 '대구 사람'을 닮은 음식들자, 맛있게 드셨나요? 대구 음식들은 예의를 갖추어서 먹어야 하는 음식도 아니고, 몇 첩 반상 차림이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음식도 전혀 아니랍니다. 그저 역사와 사회환경과 함께 발달해온 것들인데, 대다수가 '한 그릇' 음식이란 것이 특징입니다.
대구 사람들은 서민적이고 투박하면서 매운 맛을 느끼게 하는 음식, 보기 좋은 것보단 먹었을 때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음식을 더 선호합니다. 어느 뒷골목 이름 없는 식당에서 가게 밖에다 무쇠솥을 내놓고 끓여주는 그런 풍경이 어울릴 법한 음식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러니 음식 관광을 오시는 내·외국인 눈에는 별로 성에 차지 않는 음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의 역사와 문화나 사람을 알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대구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게 됐는지를 음미하는 동안 이미 반 그릇쯤의 허기는 메우고 가는 셈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남은 반 그릇의 허기는 직접 그 음식들을 드시는 동안 느끼는 감정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겉보기엔 퉁명스럽고 우악스러워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이 깊고 의리도 강한 대구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닮은 음식들을 맛보고 싶다면 대구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