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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는 우럭요리만 보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우럭회'에 '우럭 맑은탕', 오늘 아침에는 '우럭 미역국', 그리고 점심에는 '우럭회무침'까지. 고급생선인 우럭이 어제 오늘 우리 집 식탁에는 질리도록 올라온 것입니다.

그것도 양식이 아닌 비싸다고 소문난 자연산 입니다. 마리 수로는 13마리, 크기도 '개우럭' 이라고 칭하는 45cm급에서부터 작은 것도 30cm가 넘습니다. 총 무게를 달아보니 8kg남짓. 물론 돈을 주고 사온 것도 얻어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 집 큰아들하고 어제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한 대가로 바다에서 잡아온 수확물이었지요. 물론 어부는 아니고 바다낚시를 통해 잡아 올린 우럭과 놀래미로 어제 오늘 점심까지 풍성한 우럭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중노동(?)을 통해 잡아서 낚시 배 물칸에 넣어 놓은 우럭과 놀래미
 아들과 함께 중노동(?)을 통해 잡아서 낚시 배 물칸에 넣어 놓은 우럭과 놀래미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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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지났을 법 한데 도통 말을 안 듣는 큰 아들

"에구구... 우리 그 귀엽던 아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렇게 고집불통이고 도통 말 안 듣는 아들만 남은 거냐..."

이 소리는 다름 아닌 덩치가 벌써 엄마 키는 훌쩍 넘어서고 아빠와 어금버금해진 중학교 3학년생인 큰 아들 정민이한테 하는 아내의 푸념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모범생이기만 했던 아들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내 선에서는 도대체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라고 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빨리 학원 가라고 하면 '알았어!'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오니 아내는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 때문에 진력을 내곤 합니다. 사춘기는 지났을 것 같은데 이거는 어떻게 된 게 날이 갈수록 점점 반항적이고 억세지니 아내가 급기야는 큰 아들 교육은 제가 알아서 하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곤 합니다.

아내의 신경질이 극에 달했던 것은 지난 달입니다. 바로 3학년 1학기말 고사를 치르면서였지요. 지난 4월인가 중간고사 기간에는 제법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 같더니만 중간고사 마치자마자 나사 풀린 뭣처럼 학교 갔다 오면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즐기고 있으니 아내도 어지간히 속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기말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부진하자 아내가 저에게 선언을 했던 거지요. 자기는 더 이상 도저히 정민이를 콘트롤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빠가 알아서 콘트롤 하라는 겁니다. 아내를 살살 달래면서 아들하고 한번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답니다. 그걸 핑계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서는 23일 바다낚시를 아들하고 저하고 단 둘이서만 가기로 한 것이지요.

새벽 4시에 나선 조행길...아들하고 오랜만에 깊숙한 대화

집에서 1시간 거리인 영흥도에서 출발하는 우럭 낚시를 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답니다. 5시에 영흥도에 도착해 승선명부에 이름을 적어 넣고 정원 14명인 '경영호'에 승선해 기다리다 보니 곧 바로 출발하더군요. 배에는 단체출조팀이 12명이 타고 있었고 다른 손님은 저희 부자뿐 입니다.

단체출조팀은 삼성동에 있는 모 공기업 조우회 분들이더군요. 어쨌든 저는 아내와 약속한 소기의 성과(?)를 얻기 위해 가는 승용차 안에서부터 출조지에 이르기까지 배안에서도 아들과 짬짬이 대화를 시도했답니다.  

"아들아, 좋아하는 여자 친구는 있냐?"
"아직은 없는데."
"음." (속으로, 역시 내가 시도한 대화소재가 상투적인가?)

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낚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까지는 역시나 대화가 맴을 도는 것 같더군요. 결과적으로는 사적인 부분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지만 낚시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오후 무렵에는 제법 깊숙한 대화(?)를 나누는 데까지 성공했답니다.

그 결과로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상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하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9시 반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만 하고 있기에 점잖게 주먹을 꼭 말아 쥐고 머리 위에서 휘휘 저으면서(?) 조용하게 한마디 했답니다.

"아들아, 어째 어제 말한 것하고 행동하고 다른 것 같다. 컴퓨터를 시작한 게 1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말이다."
"예, 아빠. 3분만 더 하다 그만두고 공부할게요."

그렇습니다. 역시나 아이들 교육은 당근과 채찍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요. 당근은 2학기 중간고사를 잘 보면 10월에 바다낚시를 데려 가겠다는 약속을 한 거였고 채찍은 공부 제대로 안 하면 다시는 바다낚시 안 데려간다는 엄포였지요.
 
하루종일 잡아 올린 자연산 우럭 무게가 '10kg'

영흥항에서 1시간 반 이상을 24노트에 가까운 속력으로 질주한 후 도착한 어장. 울도 근방이라고 합니다. 안개 때문에 백 미터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그저 낚시 포인트에 도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아침 6시 40분경부터 시작한 낚시는 초보자들이 우럭을 걸어내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불과 20분도 안되어 40cm가 넘는 개우럭급으로 4수 정도가 단체 출조 조우회 회원들 중 특히 초보자들이 걸어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낚시대 감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거야 하는 표정속에 반신반의하던 그 분들은 마침내 묵직하게 고기가 올라오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더군요. 하지만 오전 조황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내 입질이 전혀 없더니만 오전 내내 잠잠했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조황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큰 아들 막 시작할 때 30cm급 놀래미 한 마리 달랑 잡더니 그 다음에는 영소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또 다시 한 시간 이상을 낚시에 열중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급기야 우리 큰 아들, '고기들도 방학을 맞아 다들 어디 놀러 간 거 같은데요'라는 불만 섞인 말을 하기에 이르렀답니다. 

하지만 고기가 나오는 것은 한순간이었지요. 지루하기도 하고 팔도 아파서 '이 짓거리를 계속해야 하나'하고 고민하고 있을 즈음, 몇 차례의 소나기 입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이 두 번씩이나 '쌍걸이'이라고 표현하는 한 번에 두 마리를 계속해서 걸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낚시를 마무리 할 즈음인 오후 4시경 마리 수를 헤아려 보니 제가 7마리를 그리고 정민이가 8마리를 잡아 올렸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잡은 우럭의 무게를 재보니 8kg이 넘는 것 같습니다. 한 마리는 낚시하던 중간에 새참으로 썰어 먹었으니 남아 있는 것은 마리 수로는 14마리이지만 피를 뺀 상태인데도 8kg가 넘으니 실제 무게로는 거의 10kg에 육박했던 것 같습니다. 

  40cm급 대형 놀래미를 포함해 개우럭등 총 15마리를 잡았답니다.
 40cm급 대형 놀래미를 포함해 개우럭등 총 15마리를 잡았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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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맛있게 요리를 해먹을 시간!

우럭낚시를 갔을 경우 서너 마리 정도를 잡은 후 집으로 가져왔을 때에는 그냥 회로 떠먹거나 초밥을 만들고 회를 뜨고 남은 부분은 '맑은 탕'을 끓여 먹으면 되지만 어느 정도 마리 수를 잡아왔을 경우 그 처리가 문제가 되더군요.

하루 이틀이 지났을 경우 매운탕 용으로 다듬어서 냉동실 깊숙한 곳에 넣어 둘 수밖에요. 하지만 냉동실에 넣어둔 우럭은 몇 달을 지나도 매운탕 감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결국에는 냉동실 정리할 때 버리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는 했습니다.

우럭을 활용한 요리를 생각해 보니 의외로 많더군요. 우선은 어제 저녁 집에 돌아와 샤워하기 전에 세 마리를 썰어서 회로 다듬고 맑은탕을 끓여서 저녁을 해결했답니다. 그래도 냉장실 안에는 우럭이 가득합니다.

아침에 궁리를 하다 생각난 게 바로 '우럭회무침'입니다. 우럭을 이용한 회 무침을 주 메뉴로 전국 체인망을 갖추고 있던 식당에서 몇 차례 식사를 한 경험이 있는데, 거기에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고는 남아있는 우럭과 놀래미를 '회무침'으로 만들 생각을 했던 거지요.

뭐, 만드는 거야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회무침에 다만 특이한 게 깻잎에 날치알 그리고 쌈장 약간을 곁들인 후 그 위에 초장과 양배추로 버무려진 회무침을 싸서 먹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미역국에 우럭이 들어가 있던 경험을 되살려 곧바로 재현에 들어갔답니다. 아침은 '우럭 미역국', 아니 정확히는 '개우럭을 이용한 미역국'입니다. 한술 떠 보니 보양식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회무침용으로 다듬고 남아 있는 우럭 대가리와 뼈만 10여 개 들어갔으니 그 영양가치는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색깔. 처음 끓이고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뽀얗더니만 나중에는 거무튀튀한 빛깔이 나더군요.

우럭 맑은 탕을 끓이게 되면 사골국물처럼 뽀얀 국물이 일품인데 쇠고기 미역국을 끓일 때처럼 물에 불린 미역에 참기름을 넣고 볶은 후 그 다음에 다듬은 우럭을 넣고 끓이다 보니 그런 색깔이 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어떻습니까. 제 입에서는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점심 때에는 '우럭회무침'을 준비했답니다. 마트에서 사온 깻잎을 먼저 깨끗하게 씻고 그 위에 날치알과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약간의 양념을 가미한 양념장을 조금 얹어 접시에 담아 놓으니 모양새가 그럴 듯 합니다.

우럭회무침 방법은 간단하게 해치웠습니다. 미리 썰어 놓은 우럭회에 청양고추 파 다진 마늘 깨 초장 등을 넣고 버무렸기 때문입니다. 간을 보니 삼삼한 게 맛이 제법 나는 것 같습니다.

식탁에 오른 우럭회무침에 대해 맛 감별사인 우리 집 둘째 아들 정연이의 손길이 바쁩니다. 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우럭회무침'은 자기 입맛에 맞는 것 같습니다. 뭐 제 입맛에도 맞는 걸 보니 '우럭회무침' 우리집 별미 요리로 추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우럭회무침' 입니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우럭회무침' 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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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미역국' 그리고 '우럭회무침' 두 가지 음식 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밖에서 사 먹었던 것보다 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야 물론 싱싱한 재료를 듬뿍 넣었다는 것이겠고, 거기에 더해 바다 위에서 12시간 이상을 중노동(?)한 후 얻은 노력의 산물이였기에 더 맛나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큰 아들이 또 다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쥔 채 머리 위에서 휘휘 저으면서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습니다.

"아들아, 공부는 언제 할 거냐?"
"응! 바로 갈 거야" 

에구구 당근과 채찍을 겸했던 진솔한 대화의 효과가 하루를 못 넘기는 거야. 정말 그런거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럭 선상낚시#영흥도#우럭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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