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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두께, 묵직한 주제
 
지역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을 때 놀랐다. 책의 두께가 너무 얇았기 때문이다. " 세상에 본문이 20쪽짜리 책이라니." 이건 책이라기 보다는 팜플렛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내용도 그랬다. " 오호. 이 얼마만에 보는 선전 선동 팜플렛이란 말인고?". " 또 제목이 얼마나 촌스러운고,  '분노하라' 라니 ... "
 
책의 분량이 적고 내용도 선동적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만 보기에는 이 책이 가진 무게가 가볍지 않다. 책의 주제가 담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가 그랬고 저자의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다.
 
똑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누가 주장하는가에 따라 그 파급력은 달라진다. 만약 웬만한 다른 사람이 20쪽 짜리의 선동글을 썼다면 출판이나 되었을까. 어찌어찌 하여 출판이 된다 하더라도 200만 부 이상 팔리고 수십 개의 나라에서 번역되는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 했으리라. 이런 결함(? 어쩌면 결함)을 가지고도 이 책이 올해 전 세계 지성계를 강타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이다. 저자가 스테판 에셀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스테판 에셀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내가 흥미롭다는 이유는 몇가지 있는데 우선 저자의 나이 때문이다. 그의 나이는 95세이다. 와우 ! 정말 와우! 다.
 
1917년생 이니까 우리 나이로 95세가 된다.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다. 아니, 나이라 하기도 좀 그렇다. '연세'라고 해야 하겠지. 일단 보통사람들은 이 나이까지 살아있기가 힘들 것이다. 또 살아 계신다 해도 말 그대로 생존하는 정도이지 멀쩡한 정신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책을 펴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다. 이 분이다.
 
이 분은 나이로만 우리를 놀라게 하는게 아니다. 이 분이 살아온 이력이 말 그대로 드라마다. 극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작가들도 '훅' 갈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분이다.  여기서 그분의 95년을 미주알 고주알 다 나열 할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정말 간단하게만 요약해 보겠다.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인 인생
 
우선 출생부터 보자.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작가였고 화가였다. 아버지도 작가였고 번역가였다. 부모의 영향으로 문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자랄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는 독일인이고 그도 독일에서 태어났다. 오리지널 독일인이란 뜻이다.
 
그런 그의 가족이 7년 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그들은 그곳이 마음에 들어 계속 정착하기로 한다. 나아가 저자가 20살이 되자 아예 프랑스인으로 귀화해 버린다.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그 때는 마침 히틀러가 일으킨 2차대전이 발발한 즈음이다.  그러다 보니 저자는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하게 된다.  음,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독일인이 프랑스로 귀화하여 고국이었던 독일과 싸우는 셈이다. 한국적 시각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심한 나라다.  저자의 이런 선택을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의 인생에서 또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드골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하여 본격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1944년 누군가의 밀고로 독일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버린다.
 
체포후 그는, 원래 고국이었던 독인 군인들에게서 취조 받고 고문 받는다. 그리고 사형을 언도받아 독일의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진다. 교수형을 당하기 하루전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같은 수용소 안에서 자신과 닮은 프랑스인이 장티푸스로 사망하는 일이 생긴다. 저자는 이 프랑스인의 신분과 바꿔치기해서 사형집행으로부터 살아남는다. 그 뒤로는 부득이 이름을 바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서 수형생활을 해 나간다.
 
그 후 다른 수용소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회계부서에 배치되지만 탈출한다. 하지만 다시 잡혀 끌려온다. 이번에는 무기를 생산하는 수용소로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탈출을 시도해서 이번에는 성공한다. 탈출후 마침내 연합군에 합류하게 된다.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르고 마침내 독일이 연합군에게 패한다. 다행히 그는 그간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높게 평가받게 된다. 그 공을 인정받아 외교관이 되어 국제연합(유엔)에 근무한다. 또다시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이 그곳 생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곳에서 세계사에 커다란 의미를 남기게 되는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참가한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유엔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하는 것과 같은 외교관 활동과 사회활동을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인'이 되었을 때, 그도 남들처럼 은퇴를 한다.
 
하지만 그의 은퇴는 완전한 그만둠이 아니었다. 은퇴 후 그는 또 한번의 커다란 인생의 전환을 한다. 오히려 은퇴 전 보다 더 활발하게 사회적 비판활동을 활발히 펼쳐 나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여전히 레지스탕스(저항)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의 눈에는 갈수록 세계가 더 양극화 되고 빈부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른바 '세계화' 와 '시장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활동을 펼친다.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해서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95세인 지금까지.
 
여기 까지다. 요약하고 요약했건만 저자의 인생을 적다 보니 숨이 차다. 책에 대한 후기를 적는 다는 게 저자의 인생요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서 책 내용에 대해서 짧게 라도 이야기 하고 넘어가야 겠다.
 
화를 내고도 장수하는 비결?
 
책 본문이야 앞에서 말한 것처럼 20쪽 밖에 안되는 짧은 글이기에 길게 설명 할 것도 없다. 책 제목 그대로 '분노하라' 는 것이다. 분노, 즉 화를 내라는 글인데 이게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의 온갖 매체는 '화를 내지 마라'는 말과 글로 넘쳐 나고 있으니 말이다. 
 
'일소일소 일노일노' 한다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한 번 늙어진다는데  누가 요새 성을 내겠는가. 더군다나 노안보다는 동안이 대접받는 이런 시대에 말이다.
그래서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들도 대부분 화를 가라앉히는 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화 안내고 이기는 법 등등을 이야기한 책들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자는 화를 내라고 한다. 저자가 화를 내고도 95세까지 장수하고 있으니 일단 귀를 기울여 볼 필요는 있을것 같다. 저자의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냥 분노 하라는게 아니라 '공분'을 하라는 이야기다. 아하, 사사로운 이익과 관련해서 성을 내라는 것이 아니었다.  회적인 문제에-마땅히 발언을 해야할 상황에 참여하고 주장하라는 말이었다. 달리 말하면 저항하란 말인 게다.
 
하지만 요즘처럼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 세태에 공분을 하라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청년들에게 말한다. 참여하거나 분노하지 않고는 청년세대의 미래는 없다고 .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좇아 경쟁을 이렇게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더 할 것입니다.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참여하고 분노하여야 합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 청년들이여 이제 총대를 넘겨 받으라. 분노하라!"
 
자, 이쯤 하고 다시 책에서 빠져나와 보자. 역시 예상대로 책은 좀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무거운 주제의 책이 한국에서도 제법 많이 팔렸다고 한다. 뜻밖이다. " 주식을 사라", " 부자가 되라" 고 하지도 않는 책이 많이 팔리다니. 한국의 독자들도 사회에 대해 많이 분노하고 있는 건가?
 
프랑스 노익장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멀리 한국에도 울림을 줬다는 얘기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공감이 있었던 걸까. 우리 사회에 대해 너무 비관 할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책 하나의 판매량만 보고 희망이니 어쩌니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팔리고 읽힌 만큼의 희망을 품어보고 싶다.
 
끝으로 저자의 인터뷰 글을 떠올려 본다. 앞으로 좋아하게 될 글귀 같다.
 
" 길게 보면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이건 저처럼 나이 많은 노인이 지니는 특권이지요. 저는 여전히 인간을 신뢰 합니다. 물론 바람직한 것이 다 실현되려면 아직도 멀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70억 인류의 두뇌가 있고 줄곧 이어지는 인류의 흐름이 있으니, 현재와 다른 무언가를 할수 있는 방도가 있는 셈이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2011)


태그:#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레지스탕스,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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