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5년 여름 <오마이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연재만화가 있었다. '꽃분엄마의 서울살이'. 대학원을 다니는 남편과 어린 딸의 생계를 책임지는 당찬 여성이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시작되는 고단한 서울 이야기. 그 자신 서민이라는 이름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그려나가던 그 이야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추억하고, 가슴 아파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있다.

연재 50회 마지막 꼭지, 가족들 생계를 위해 학습지 외판원으로 시작했던 꽃분엄마가 고군분투하여 지점장 발령을 받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붕붕아트 대표 이은하 2005년 오미이뉴스에 연재된 만화 '꽃분엄마 서울살이'의 주인공이자 만화 스토리를 썼던 이은하 대표
▲ 붕붕아트 대표 이은하 2005년 오미이뉴스에 연재된 만화 '꽃분엄마 서울살이'의 주인공이자 만화 스토리를 썼던 이은하 대표
ⓒ 이은하

관련사진보기


한참 후에 안 사실이었다. 그 꽃분엄마가 내 대학동기였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연재가 끝나고 4년 뒤였다. 시골에 내려가 살던 내게 이십여 년 만에 연락을 해 온 대학동기가 꽃분이라는 딸을 데리고 온 날 비로소 나는 내 앞에 있는 꽃분엄마가 바로 그 꽃분엄마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내 질문이란 게 이거였다.

"정말 딸 이름이 '꽃분'이였던 것이야?"

아무튼 그 꽃분엄마와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지게 되었고, 지점장으로 있어야 할 꽃분엄마가 지금은 저소득층 아이들의 문화적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만화차(일명 '붕붕카')를 기획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화 창작교실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잘 아는 처지에 좀 쑥스러울 법한 일이지만 서면 인터뷰 형식을 빌려 꽃분엄마의 현재 모습과,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로 기획한 만화차 일명 '붕붕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인터뷰 들어간다.

"투병 중인 언니 돌보며 눈물로 기획서 썼던 기억이 여전히 아프다"

- 먼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시라.
"벌써 6년이 지났다. <오마이뉴스>에 '꽃분엄마의 서울살이'라는 만화를 연재했었는데 그 때 스토리를 쓰고 실제 만화 속 주인공이었던 꽃분엄마 이은하가 바로 나다. 만약 그 만화가 큰상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제가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좀 큰 상을 받고 보니 '아 내가 재주가 있나보다' 착각하고 이 판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되었던 '꽃분엄마의 서울살이'는 그 다음해 한겨레 출판에서 '꽃분엄마 파이팅'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고, 한국만화가협회와 일간스포츠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후원하는 '2006하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세 작품 중 하나로 상을 받았다.

- 그럼 그때 그 연재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되었던 지점장은?
"결국 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상이 나를 본격적인 만화 스토리 작가로 이끌었다."

- 붕붕아트 대표를 맡고 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회사인가?
"올해 3월에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2011년 지식서비스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이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기왕 시작하는 거 검증도 받고 싶었고 입술 굳게 깨물면서 기획서를 썼다. 그때 친언니가 투병 중이었고, 거의 임종을 앞둔 힘겨운 상황이어서 매일 언니를 돌보며 눈물로 기획서 썼던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나이 많은 아줌마가 아이디어 톡톡 튀는 청년들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54대 1의 결쟁률을 뚫고 어린이 만화 부분에서 최종 선정되었다.

꽃분엄마의 서울살이를 그렸던 만화가 동생과 가진 거 탈탈 털어 법인사업자 내고, 사무실 내고 그렇게 시작했다."
 
- '붕붕카'라는 만화차가 독특하다. 어떤 차이고 어떻게 기획되었나?
"만화차 '붕붕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획된 아이템으로 알고 있다. 대개 만화가 탄생하는 건 만화가가 혼자 혹은 몇 명이 골방에서 엉덩이 종기 나도록 붙이고 앉아 미간에 빗금치고 창작 작업을 하는데, 이제 조금은 그 골방을 벗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과 소통하고 독자인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들도 창작하는 기회를 주자 이런 발상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눠주면 내 몫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나눠준 만큼 우리 몫이 훨씬 커지고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결국 나눠 준다고 하지만 받는 것이 더 크다."

어린이 만화창작교실 수업 장면 현직 만화가와 어린이들의 만화창작 수업장면
▲ 어린이 만화창작교실 수업 장면 현직 만화가와 어린이들의 만화창작 수업장면
ⓒ 이은하

관련사진보기


- 붕붕카는 어디를 달려가고 누구와 만나는가?
"지방이나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 어린이들은 서울 어린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 예술을 직접 접하고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서울 등지의 문화 예술을 적극 향유하는 어린이들이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니 지방이 많고 대상은 대부분 소외계층 어린이들이다."

- 대상지역과 대상은 어떻게 선정되나?
"붕붕 아트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동안은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찾아 다녔다. 주로 지역의 저소득층 어린이 공부방을 찾아 우리가 먼저 연락하여 다녔고, 그렇게 가다 보면 그 공부방에서 다른 공부방을 연결해 주는 방식이었다."

- 만화 창작교실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15명 정도 되는 공부방에 갈 때 만화가 4명과 함께 움직이다. 물론 한 작가가 20명까지 앉혀 놓고 수업을 할 수도 있지만 어린이들의 창작을 돕는 일이라서 소수를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와 작가가 처음 만났을 땐 마음 열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한다. 작가들이 미리 준비한 네 컷 만화 말풍선에 아이들이 써 보도록 한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인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걷잡을 수 없는 칭찬으로 으쓱해진 아이들은 대개 수업에 몰입하는 경지에 이른다."

어린이 만화창작 수업 작품 붕붕카와 만난 어린이가 만화 창작교실에 참여하여 만든 작품
▲ 어린이 만화창작 수업 작품 붕붕카와 만난 어린이가 만화 창작교실에 참여하여 만든 작품
ⓒ 이은하

관련사진보기


- 만화라는 게 아이들 반응을 끌어내는데 도움이 되겠다.
"아이들이 미술수업은 많이 하는데 만화수업은 생소해서인지 은근히 기대도 많이 하고 재미있어 한다. 4학년 이상 고학년들을 중심으로 수업하는데 저학년 아이들이 문밖에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힘은 들지만 저학년 아이들도 이제는 참여 시킨다."

- 소외계층 아이들을 주로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어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풍족한 현대 사회 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제약과 편견,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움츠리며 살아가야만 하는 어린이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깝다는 표현도 모자랄 지경이다. 문화적으로도 이미 세상은 부익부 빈익빈이 분명한데 그게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는 현실을 항상 참담하게 목격한다.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붕붕카로 찾아가는 만화 창작 활동이 그런 아이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문화적 감수성을 찾아내고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심어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한다."

"우면산 무너져 내릴 때... 내 목숨은 건졌지만 붕붕카는 사라졌다"

만화차 '붕붕카' 2011년 여름, 제작되고 한 달 만에 우면산 사태로 폐차 된 붕붕아트의 야심작 '붕붕카'
▲ 만화차 '붕붕카' 2011년 여름, 제작되고 한 달 만에 우면산 사태로 폐차 된 붕붕아트의 야심작 '붕붕카'
ⓒ 이은하

관련사진보기


- 붕붕카는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나?
"음… 하늘도 무심하시다. 회사가 우면산 아래 있다. 올 여름에 차도 거기 있었다. 태풍으로 우면산이 무너져 내릴 때 차가 휩쓸렸다. 차를 구하러 나가다 나도 죽을 위기를 넘겼다. 바로 내 옆에서 사람이 죽었다. 끔찍했다. 내 목숨은 건졌지만 붕붕카는 사라졌다."  

- 만화로 그린 붕붕카를 봤다. 아이들에게는 무척 신기해 보일만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우와~ 하는 감탄사부터 시작한다. 이것저것 신기해서 만져 보고, 차 속에 들어가서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일단 동기부여는 확실히 된다. 만화창작교실은 작가와 아이들과의 교감이 무척 중요하다. 사전 스킨십이 중요한데 붕붕카 한 대면 다른 말이 필요없다. 스킨십은 그냥 그걸로 끝이나 이후는 일사천리라고 보면 된다."

- 붕붕카의 외형은 주문제작 방식으로 돈도 많이 들어간 차였을 텐데 안타깝다. 다시 만들어 전국을 누비면서 아이들과 만나야 하지 않나?
"돈이 없다. 여기저기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여의치는 않다. 우선은 되는대로 승용차로 다니고 있다. 하지만 붕붕카는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반은 해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붕붕카를 되살려 낼 계획이다."

- 붕붕아트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만화 기획 및 출판, 전시 기획, 벽화 그리기, 홍보 만화, 일러스트 제작, 어린이 만화 축제등 만화를 통한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는 일들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붕붕아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한다."

내 시골살이가 만으로 5년을 넘었다. 시골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이는 아이들이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 말이다. 시골은 돈도 없지만 문화도 거의 절멸된 곳이다. 모든게 돈으로 계량되는 세상이라 돈도 문화도 도시로만 모인다. 부부노동을 하는 농촌 현실에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문화적 환경이 거의 전무한 곳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을 보내야 한다. 도시의 가난한 동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육도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러움이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세상도 아닌데 이른 나이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차별 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어른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어른이 되거나 혹은 그런 어른들이 더 잘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이라도 열어줘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내 친구 꽃분엄마의 분투기는 반드시 해피엔딩이 되어야 한다. 2007년 한겨레 출판을 통해 그녀가 만든 책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꽃분엄마 파이팅!"


#꽃분엄마#붕붕아트#붕붕카#어린이 만화창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