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 중에 '벨로드롬 일제 검거'라는 것이 있다. 1942년 7월 16일, 파리에 살던 유대인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연행되어서 인근의 사이클 경기장으로 끌려간 사건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그 실내 경기장에서 며칠 동안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서 가스실로 직행했다. 이때 연행된 유대인들의 숫자가 1만 3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만 명이 넘는 숫자도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을 연행한 경찰들이 모두 프랑스 경찰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유대인과 인사를 나누고 지냈을 경찰들이 잔인한 사형집행관으로 변해서 방문한 셈이다.
이 일제 검거를 피해서, 또는 이송 중에 도망쳐서 살아남은 유대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많다.
살아 남았다는 사실은 기뻐해야 할 일이겠지만, 혼자 목숨을 건졌다는 죄책감과 절망감 속에서 그리고 살인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 속에서 어떻게 삶을 유지할까. 살아도 산 것이 아닐만큼 고통스러운 날들이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비밀 벽장에 동생 숨기고, 나치에 끌려간 10살 소녀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타티아나 드 로즈네 저, 문학동네 펴냄)는 이 일제 검거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검거가 있던 날 밤, 열 살의 소녀 사라도 부모와 함께 경찰들에게 끌려간다. 사라에게는 네 살짜리 남동생 미셸이 있다.
미셸은 경찰의 눈을 피해서 비밀 벽장으로 몸을 숨기고, 사라는 벽장 문을 밖에서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다. 사라는 며칠 후면 자신이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나중에 꼭 꺼내줄게'라고 지키지 못할 약속의 말을 남기고 만다.
그로부터 60년 뒤에 프랑스 남성과 결혼해서 파리에 살고있는 미국인 여기자가 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45세의 줄리아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벨로드롬 검거 60주년을 맞아서 특집기사를 기획하는데, 줄리아가 그것을 담당하게 되었다.
벨로드롬 사건은 일반 프랑스인들도 잘 모르는 과거의 일이다. 하물며 그것을 미국인인 줄리아가 알고 있을리 없다. 줄리아는 역사공부를 하는 심정으로 사전조사를 시작하고 생존자와 목격자를 찾아 다닌다. 관련 협회와 조직을 방문해서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60년 전의 일이니만큼 쉽지가 않다. 유대인들이 갇혀있던 경기장은 오래 전에 헐렸고, 당시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에 줄리아는 남편 집안이 과거에 이 검거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만다.
60년 후에 소녀를 추적하는 한 기자과거를 파헤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잔인한 일이다. 벨로드롬 검거사건처럼 민감한 문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치가 아닌 프랑스 경찰들이 직접 유대인을 체포했으니, 수십 년 뒤의 프랑스 인들이 이 사건을 그다지 거론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벨로드롬 사건은 시간이 지난 뒤에 비밀처럼 변해 버렸다. 과거 속에 묻힌 이야기,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줄리아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 사건에 집착한다. 기자 특유의 직업의식 때문일 수도 있고, 남편 집안의 과거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간에 줄리아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작품 속에서 한 인물은 줄리아에게 말한다. 가끔은 과거를 되돌아보기가 힘겨울 때도 있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힘든 일이라고. 줄리아도 갈등한다.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충격적인 사실을, 단지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밝혀야 할까. 이제와서 진실을 알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과거를 파헤친다는 것은 낯설고 어두운 방안으로 혼자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독을 품은 뱀이 기어다니고 있을지 아니면 보석상자가 있을지. 어느 쪽이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숨겨진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 이은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