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은 신씨 형제들 간의 문제일 뿐이지, 내가 가담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편지가 조작된 사실은 인정하지만 조작에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가짜 편지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았냐는 질문에도 "클린정치위원회에 35명인가 있었는데 누가 보낸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홍 대표가 말한 '신씨 형제'는 김경준씨의 교도소 동료였던 신경화씨(53, 수감중)와 신씨 명의의 가짜편지를 쓴 동생 신명씨(50, 치과의사)를 지칭한다. 당시 대전교도소에 수감중인 형의 명의로 가짜 편지를 쓴 신명씨는 <오마이뉴스>와 5시간에 걸친 세 번의 인터뷰에서 "홍준표가 흔든 편지는 완전 가짜다"면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우리 형이 쓴 것이 아니고 친아버지처럼 알고 지내던 양승덕(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씨의 부탁을 받고 내가 쓴 것이다. 양승덕씨는 그 편지를 이명박 후보의 상임특보였던 김병진(전 경희대 교수, 현 두원공과대학 총장)씨에게 전달했다. 그것이 홍준표에게 간 것이다.""MB 특보라는 김병진 교수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그러나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서 야권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집중 공세를 편 이른바 BBK 의혹을 방어하는 데 앞장섰던 홍준표 대표는 14일 밤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대선 당시 MB 특보는 1천명이 넘는다"면서 "김병진 교수가 특보 명함을 어찌 얻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는 13일
'2007 대선 때 홍준표가 흔든 편지는 조작, 이명박 당선 위한 사기극에 MB 특보 개입' 기사에서 그 가짜 편지에 이명박 대선캠프의 상근특보였던 김병진씨가 개입했고 그 가짜 편지가 최종적으로 홍준표 위원장의 손에 들어가 정치공작에 활용되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10.26 재보궐 선거 지원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홍준표 대표와 14일 밤에 전화통화한 일문일답이다.
- 13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2007 대선 때 홍준표가 흔든 편지는 조작, 이명박 당선 위한 사기극에 MB 특보 개입' 기사를 보셨나. "그 얘긴 어제밤에 '나꼼수'(라디오 팟캐스트 '나는꼼수다')에서 다 했다(홍준표 대표는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13일 밤에 '나꼼수'에 출연했다-편집자). '나꼼수'에서 정봉주(전 의원)가 그 기사를 프린트해 주면서 물어보기에 다 얘기했다. 그런데 (기사에서) 팩트가 틀린 것이 우선, 그 편지가 BBK 의혹 공세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획입국 편지 조작은 신씨 형제들 간의 문제일 뿐이지, 내가 가담한 것이 아니다."
신명씨의 형 신경화씨는 국내에서 강도상해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되어 범죄인 인도 요청에 의해 한국으로 송환되기 전에 LA교도소에서 수감됐다. 그곳에서 때마침 국내에서 코스닥 상장회사인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 돈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돼 교소도로 온 김경준을 만나 1년 가까이 함께한 인연이 있다. 그런데 신경화씨는 공교롭게 대선이 있던 2007년 10월에 한국으로 송환되었고, 김씨는 한 달 뒤인 11월에 송환되었다.
신명씨는 당시 형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평소 의지해온 양승덕씨가 지시한 대로 대선 한 달 전에 가짜 편지를 썼다면서, 대선 1주일 전에 홍준표 당시 클린정치위원장이 여권의 '김경준 기획입국 공작'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며 그 편지를 흔드는 것을 보고 그 편지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신명씨는 나중에 그 배후에 김병진 당시 대선캠프 상임특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승덕씨를 통해 김병진 특보에게 건네진 가짜편지가 어떻게 홍준표 위원장의 손에 들리게 되었는지는 홍 대표 스스로가 밝혀야 할 대목이다.
"클린정치위가 35명인데 누가 보낸 것인지는 기억 안 나"- 그 편지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았나."클린정치위원회에 35명인가 있었는데 누가 보낸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대선 1주일을 남겨두고 정신이 없을 때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편지가 한 장 내 책상에 올라와 있기에 읽어보니 편지에 '큰집'이 나오고 '청와대'가 나와서 '김경준 기획입국'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가짜편지에는 청와대를 암시하는 '큰집'이라는 표현은 나오지만 '청와대'라는 표현은 안 나온다. 편지에는 다만 "나의 동지 경준에게…자네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고, 또 미친놈 소리만 듣게 되었다네"라고 돼 있다. '큰집'이라는 표현으로 청와대와 여권을 암시한 것이다.
홍준표 위원장이 흔든 편지는 완전 가짜였다. 특히 가짜 편지를 쓴 신명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그 편지를 쓰라고 지시한 양승덕씨가 '편지 내용은 한나라당 캠프 법률팀에서 8번 검토하고 해서 보낸 거니까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그랬다"고 밝혔다. 가짜 편지의 문구 하나하나를 한나라당에서 법률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다.
- '가짜 편지'인지 의심해 보지 않았나."그때 내가 했던 첫마디가 '수형자니까 감형을 조건으로 쓴 것일 거다'고 그랬다. (그러나) 신빙성을 확인하지 못해서 수사 의뢰한 것이다. 행위가 불확실해서 (진위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고 수사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박준선이가 수사의뢰를 했다."
홍 대표가 말한 박준선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대선 당시 클린정치위원회의 법률지원단(단장 이범래) 팀장을 지낸 국회의원이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문제가 된 강용석 의원도 당시 변호사로서 클린정치위 법률지원단 소속 팀장 중의 한 명이었다.
"겉봉투 없는 편지만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편지의 겉봉투는 확인했는가."겉봉투 없는 편지만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육필로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수사의뢰 하면서 하나는 복사해 놓고 검찰에 보냈다."
- 가짜편지를 가지고 고소했다가 허위임이 드러나면 무고죄가 성립하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 수사 의뢰를 한 것 아닌가."제보에 신빙성이 있으면 고소고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사의뢰했다. 선거 때는 고소고발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아마 대선기간에 수사의뢰한 것은 그것 한 건 뿐일 것이다."
- 필적을 감정하면 가짜편지임이 쉽게 드러났을 텐데."필적감정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러면 선거 다 끝나버리 게? 그때를 한번 생각해봐라. 그때 보도를 찾아봐라. BBK 의혹과 관련, 여당의 김종률 의원과 박영선 의원 등이 하루에도 6~7번씩 공방전을 벌여 거기에 대응하기도 바쁜데 일일이 그런 것(필적) 체크 못한다."
- 당시 은진수 BBK팀장이 가짜편지 사건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닌가."은진수는 역할을 안 줬다. 당시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말썽이 좀 있었다. 은진수가 공을 독점하기 위해 개인플레이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내가 '진수는 가능한 한 관여시키지 말라'고 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은진수 변호사는 대선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 네거티브대책단 BBK팀장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으로 기용되었으나 지난 5월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를 벌인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편지는 누구한테 받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 편지를 누가 건넸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는가.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편지인데 "이거 책상 위에 누가 올렸지?"라고 물어보지 않았나."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 그때는 아침이면 보고서가 수십 장 올라와 있다. 일일이 누가 올린 건지 물어보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기에 보니 수형자가 쓴 것이더라. 그래서 아마 틀림없이 감형을 조건으로 쓴 것이지 싶어 검찰에 수사의뢰하라고 한 것이다."
- 양승덕 실장과 김병진 교수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가."나중에 교무처장(경희대 행정대학원 교무처장을 지낸 양승덕 실장을 지칭-편집자)인가 하는 사람 이름을 들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김병진이도 모른다. 지난 대선 당시 MB 특보는 1천명이 넘는다. 그러니 자기 특보가 누군지 MB도 모른다. 이회창 후보 때는 특보가 전국에 3천명이 넘었다. 어지간하면 특보 명함 다 준다. 김병진이 특보 명함을 어찌 얻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 편지가 공작에 의한 것이라면 그 편지를 흔든 당사자로서 책임져야 하지 않나. "'나꼼수'에서도 얘기했지만, 만약 공작적 요소가 있다거나 법적으로 잘못된 게 있다면 책 임을 지겠다. 그런데 신명씨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했는데 자기들이 뭐가 떳떳하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편, 신명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연루돼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너무 힘들었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나와 우리 형 같은 보통 사람들을 동원하는 공작정치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홍준표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홍 대표가 지난 3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과자가 양형이나 감해달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양형도 감형해주지 않으니까 전과자 가족들이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홍 대표를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