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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저주인형의 앞면 (이름의 가운데 글자는 필자가 편집할 때 지웠음)
첫번째 저주인형의 앞면 (이름의 가운데 글자는 필자가 편집할 때 지웠음) ⓒ 이승철

"아니, 저게 뭐지? 인형 같기도 하고…."

11월18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동에 있는 오동공원 산책 중 배드민턴장으로 내려가는 숲길이었다. 아주 호젓한 샛길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 길 위에도 낙엽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길가 낙엽 위에 여기저기 놓여 있는 세 개의 어른 손바닥 만 한 종이인형들이 눈길을 붙잡았다.

인형을 발견한 순간 왠지 섬뜩한 느낌이랄까, 인형모양이었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가가 살펴보았다. 종이상자용 두꺼운 종이를 사람모양으로 오려 만든 인형은 목 부분이 여러 가지 색실로 칭칭 감겨있는 것이 아닌가. 섬뜩한 느낌을 준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첫번째 저주인형의 뒷면
첫번째 저주인형의 뒷면 ⓒ 이승철

인형을 손으로 집어 들고 살펴보았다. 그런데 섬뜩한 느낌은 색실로 감은 목 부분만이 아니었다. 사람 모양으로 오려 만든 종이에는 역시 사람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 부위에는 눈과 코, 그리고 입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또 있었다. 얼굴에 볼펜으로 쓴 듯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임0자 1958, 8, 8, 김00 1964, 8, 8" 이름과 생년월일이었다.

그리고 가슴 부위에도 글씨가 쓰여 있었다. "살인범 감옥에 처넣으시오, 지역사리" 지역사리는 징역살이를 잘 못 쓴 것 같았다. 저주의 글. 저주인형이 분명했다. 뒷면에도 역시 사람모양의 그림이 거꾸로 그려져 있었다. 근처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인형도 비슷했다. 저주의 글이 모두 몸통 부위에 쓰여 있는 것만 다를 뿐 필체도 같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또 하나의 인형까지. 모두 목을 색실로 칭칭 감아놓은 것이 역시 섬뜩한 모습이었다.

 두번재 저주인형은 저주글이 몸통부위에 쓰여 있다
두번재 저주인형은 저주글이 몸통부위에 쓰여 있다 ⓒ 이승철

누가 만들어 이곳에 놓아두었을까? 조선시대도 아니고 인류가 우주여행을 하는 최첨단 아이티 시대에 전근대적인 주술적 저주인형을 만들어 공원 숲길에 놓아 둔 사람이 있다니,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만들어 숲 속 길옆에 놓아 둔 것은 분명히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주의 대상은 1958년생 임00씨와 1964년생 김00씨였다.

그들을 '살인범'이라고 칭하고 징역살이를 시켜야한다고 저주하는 저주인형, 대체 무슨 사연과 원한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짐작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언가 깊은 원한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주인형을 만들어 숲속에 놓아둘 리가 없지 않은가.

 나무 밑에 놓여 있는 세번째 저주인형
나무 밑에 놓여 있는 세번째 저주인형 ⓒ 이승철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저주인형 사건은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를 시기질투하고 미워하던 장희빈이 만들었던 저주인형 사건이다. 장희빈은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놓고 짚으로 만든 인현왕후 인형에 수많은 바늘을 꽃아 저주함으로서 인형왕후를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자신도 폐위당하고 사약을 마시고 죽었지만….

그러나 그 사건도 과연 실제로 그런 저주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목에 색실을 칭칭 감아놓고 저주의 글을 써서 '저주의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실제로 저주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저주를 하는 사람이나 저주를 받는 사람이나 무언가 잘 못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물질만능주의와 무한경쟁사회 세상살이가 너무 각박해서일까? 참 무서운 세상이다.


#저주인형#오동공원#장희빈#인현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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