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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운전기사는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들의 일감은 길에서 나온다.
대리운전기사는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들의 일감은 길에서 나온다. ⓒ 윤성원

"대리운전 기사를 위한 휴게소를 만든다고요? 됐어요, 그냥 법이나 좀 만들어 주세요."

지난 19일 밤, 경기도 안산에서 만난 대리운전기사 이아무개(49)씨의 말이다. 얼마 전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리운전 기사들을 찾아 "대리운전 기사들을 위한 휴게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이씨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되물었다.

"휴게소 있으면 대리기사들이 좀 편해질까요? 시간이 곧 돈인 사람들인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휴게소보다 더 급한 것은 대리기사들이 기본적인 보호 안에서 일 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2011년 현재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대리기사는 약 1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0만 명에 이르는 대리기사를 보호하는 법은 아직 없다. 따라서 대리기사들을 위한 권익보장이나 기본적인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날 만난 대리기사들은 하나 같이 "대리운전과 관련한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립하는 업체... "대리운전 업체의 고객은 손님이 아닌 기사"

다른 대리기사 윤아무개(52)씨 역시 "관련 법 마련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택시의 경우 요금을 내지 않는 손님이 있으면 경찰서에 가면 바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대리운전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법이 없기 때문에 요금 문제로 경찰서에 가도 경찰들이 이 문제는 '민사'라며 좋게 끝내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민원 전화를 통해 문의한 결과 "개인 간 금전 거래는 민사가 원칙이기 때문에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아예 돈을 지불할 생각 없이 대리운전을 불렀다면 사기죄가 성립되지만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돈을 지불할 생각을 하지 않고 대리를 부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 때문에 대리운전 요금시비가 사기죄로 성립되어 형사사건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덧붙였다.

또 택시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택시는 타는 것 자체가 택시영업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기죄 등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전과 대구에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노조가 설립되어 있다. 대구의 경우 노조설립신고필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업체들은 노조 설립자들을 해임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노조와 교섭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날 만난 기사들은 대리운전 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리운전업체와 프로그램업체의 '횡포'를 꼽았다.

현재 대리운전 기사들이 업체에 지불하는 배차 수수료는 평균 20%, 1만5000원 짜리 '콜'을 뛰면 3000원을 고스란히 업체에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배차 수수료 역시 중구난방이다.

대체적으로 20%선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업체에서는 25% 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지역 내 대리운전 업체끼리의 담함으로 일제히 수수료를 인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윤아무개씨는 이런 현상에 "대리운전 업체의 고객은 대리를 부르는 손님이 아니라 대리기사"라고 말했다. 그는 "수수료 20%에 보험료가 한 달에 6만 원이고 또 프로그램 이용료도 1만 5000원씩 내야한다"며 "지역마다 프로그램이 다 다르기 때문에 2-3개 정도 사용하면 중개업체와 프로그램업체에 내는 비용만 한 달 50만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가 기사들을 많이 모집하는 것도 기사들에게 '고정적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업체에 항의..."그럼 우리 콜 타지마세요"

 대리기사의 휴대전화는 쉴 틈이 없다. 계속 딩동딩동 소리를 내며 숨가쁘게 움직인다.
대리기사의 휴대전화는 쉴 틈이 없다. 계속 딩동딩동 소리를 내며 숨가쁘게 움직인다. ⓒ 윤성원

윤씨는 또 배차를 취소할 때 발생하는 벌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 접수한 배차를 취소하면 약 500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데 이 벌금을 가져가는 쪽이 공정하지 않다는 게 기사들의 의견이다.

그는 "콜을 취소했을 때 내는 벌금을 취소한 콜을 '수습한 기사'가 가져간다면 수긍할 수 있지만 일부 업체는 수습한 기사에게 주지 않고 프로그램 업체가 챙긴다"며 꼬집었다.

그는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콜을 취소하는데 100명의 기사가 있다면 업체는 하루 10만 원을 벌금으로 수익을 얻고, 한 달이면 300만 원을 앉은 자리에서 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낀 기사들은 프로그램 업체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이는 철저히 '을'의 입장인 대리기사들에게 불리할 뿐이다.

윤씨는 "프로그램 업체에 부당함을 호소해봤자 돌아오는 답변은 '그럼 우리 콜 타지마라'는 말 뿐이었다"며 "프로그램 업체에서 내 PDA로 들어오는 콜을 막아버리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프로그램 업체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리운전업체는 대체적으로 기사들에게 월 6만 원의 보험료를 받고 있다. 대리운전보험을 기사 개인이 직접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에 위탁해서 가입하는 체제이다.

그렇지만 기사들은 본인이 낸 보험료 중 얼마가 보험회사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보험회사와 대리운전업체 모두 기사에게 보험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수도권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업체에 보험료 납입 구조를 문의한 결과 "기사마다 나이도 다르고 운전 경력도 다르기 때문에 보험료가 다 다르다"며 보험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 보험료를 납부하는 대리기사에게는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내부규정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내가 낸 보험료 얼마인지 나도 몰라"... 업체 중간 차익 의혹

대리운전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에 문의한 결과 "보통 업체에서 가입하는 보험은 3만 원대 보험"이라며 "우리는 대리운전 기사가 아닌 업체와 거래를 하기 때문에 기사에게 직접 보험료를 고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와 윤씨는 "대부분의 업체가 기사들에게 일괄적으로 보험료 6만 원을 받아가는 데 보험사의 말을 들어보면 업체에서 적어도 2~3만 원의 차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도 업체에 위탁하여 보험을 가입하는 것은 양호한 상태다. 일부 업체는 보험 자체를 가입하지 않고 '업체 내 상조회'를 꾸려 보험을 대체하고 있다. 이 경우 사망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날 경우에는 대리기사가 온전히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날 만난 대리운전기사들은 "대리기사들을 위한 기본적인 보호 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아무개씨는 "대리운전은 이미 하나의 '운수업'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법을 비롯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아무개씨 역시 "관련 법 조항이 생겨서 택시나 버스기사들처럼 일종의 교육도 진행되어 대리기사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리운전#대리기사#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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