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나기 대여섯 시간 전,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 고문을 뵀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힘겨운 호흡으로 죽음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그의 파리한 손에는 묵주가 감겨 있었다.
김 고문의 기사회생을 빌기 위한 묵주였겠지만, 김 고문 삶 자체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갈구한 '묵주'였다. 그는 그 일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떠맡았다.
김 고문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그를 핍박한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한나라당의 '간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응은 무척 소극적이다.
김 고문이 별세한 지 불과 3시간 뒤인 30일 오전 8시 30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재로 한나라당 공식 비대위 회의가 열렸지만 박 위원장은 물론, 4명의 현역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비대위원 중 어느 누구도 조의를 표한다는 의례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다. 김 고문의 별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일을 챙겨줄 당 내 '어른'이 없어서였을까.
박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서야 "깊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공식회의에서 '김근태 별세' 언급도 안 해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뒤에야 황영철 당 대변인의 공식논평이 나왔다. 황 대변인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마음 깊은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한 뒤 "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시절, 민주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 대변인은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낸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고 고인을 기렸다.
또 황 대변인은 "여야, 정치이념을 떠나 고 김근태 상임고문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하고, 또 높이 사야 할 것"이라며 "김근태 상임고문은 짧은 생을 마감하셨지만, 그가 민주화를 위해 흘린 땀과 피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의문이 든다. 당 대변인이 고인이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한국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걸 인정하고 그의 뜻을 기렸음에도 왜 박 위원장은 공식적인 언급이 없는 것일까.
결국 "박 위원장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 고문은 1965년 서울대에 입학한 이후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줄기차게 저항하다 탄압받은 핵심 인물이다.
때문에 공식적인 발언을 하기 어려운 것인가.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대권 후보로 분류되는 인물이자, 현재 그 당의 '얼굴'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자행된 독재와 국가폭력, 그리고 인권유린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응어리를 풀어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한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줄곧 이를 외면해왔고, 김 고문의 별세에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위원장이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된다 해도 통합이나 화합을 그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정권 문제' 풀 책무 있어 김 고문의 별세는 박 위원장에게는 이런 해묵은 과제를 풀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만나기도 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때와 비슷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시 여당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표한다"는 당 대변인 논평을 발표했었다.
박 위원장과 김 고문은 약 10년간 국회에 함께 있었다. 우리 정서상 이 정도 관계만으로도 조문하기에 충분하지만, 그가 실제 김 고문의 빈소를 찾을지도 불분명하다. 박 위원장 쪽 인사는 "오늘은 국회 본회의도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26세의 나이로 한나라당 비대위원을 맡아 화제가 된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는 30일 오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 원장의) 맞수로서 박근혜 위원장에게 꼭 필요한 것 딱 한 가지만 골라달라"는 질문에 "박 위원장께서 넘어야 될 것들이 있지 않느냐, 아무래도 전직 대통령의 따님이시고 그래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오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예를 들면 정수장학회 의혹이라든지 이런 것들이요?"라는 질문에 "국민들이 아직까지 거기에 대해 해소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이라며 "비대위의 가장 큰 원칙이 '신속성'과 '오픈' 이런 건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대표님도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정수장학회 뿐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얽힌 여러 문제들을 신속히 해결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