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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마트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명절을 돌려주자
대형마트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명절을 돌려주자 ⓒ 김혜원

"설 선물 찾으세요? 홍삼도 있고 커피선물세트도 저렴하고 좋아요."
"고객님, 여기 한우선물세트 좋아요. 한우가격이 내려서 작년보다 저렴해요."

경기가 좋으니 나쁘니 해도 명절은 명절. 모처럼 만날 친척들을 위해 풍족하게 먹을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커다란 카트가 모자랄 만큼 물건이 쌓인다.

"러시아 산 동태에요. 즉석에서 포를 떠드리고 있어요. 원하시는 크기로 떠드리니까 구입하세요."

카트를 밀고 다니기조차 힘들만큼 복잡한 마트 안에서 낯익은 얼굴과 만났다. 마트 생선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웃집 종민이 엄마다.

"어머, 설날 장보러 나오셨구나. 맞아. 차례 지내지요?"
"예. 그럼요. 종민 엄마는 이번 설에도 일하시는 거에요? 맏며느리가?"
"요즘 맏며느리 자리 내놓으라고 시어머니랑 동서들이 불만이 많아요. 일하기 전에는 이틀 전에 내려가서 준비했는데 일 하면서부터는 미리 내려가는 건 꿈도 못 꿔요."
"그럼 언제가세요? 지난번처럼 전날?"
"교대근무를 한다고 해도 동태포 코너에 워낙 손님이 몰려서 아무래도 일찍 내려가긴 어려울 것 같아요. 추석 때처럼 설 전날까지 근무하고 밤에 내려가려구요."

종민이 엄마의 시댁은 경북 상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면단위의 시골이다. 평소에도 3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명절 귀성 때면 거의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바람에 이틀 전에 출발해 명절음식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는 이틀 전은커녕 하루 전에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명절 하루 전날까지 대형마트가 영업을 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민이 엄마는 늘 시어머니와 손아래동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돈을 번다고 해도 맏며느리가 마땅히 해야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시어머니와 동서들에게 떠맡긴다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이 크다. 

대형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남자직원들도 명절 전날까지 바쁜 건 마찬가지다. 명절에는 워낙 일손이 부족해 사무직 직원들과 간부들까지 모두 매장에 나와 비상근무를 하는가하면  밀리는 배송주문을 맞추기 위해 부장들이 자가용으로 배송을 다니는 진풍경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대형마트 근로자도 설날 쉬게 해달라는 온라인 청원
대형마트 근로자도 설날 쉬게 해달라는 온라인 청원 ⓒ 김혜원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마트 근로자들은 명절이 두렵다. 밀려드는 사람들과 폭주하는 주문, 한정된 인력과 과도한 업무량. 거기다가 기다리는 가족들의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하니 이중고, 삼중고가 아닐 수 없다.

대형유통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모 팀장은 벌써 몇 년 전부터 가족들만 고향에 내려 보내고 자신은 명절날 하루는 집에서 쉬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고 한다. 명절 전 며칠간을 잠잘 새 밥 먹을 새도 없이 일을 하고나면 진이 빠져 고향에 내려갈 체력이 되지 않을 뿐 더러 내려간들 잠만 자다 오기 때문에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명절 이산가족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통근로자들에게 명절날 하루 휴무는 평소 며칠의 휴가보다 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나마 하루의 휴일조차 이제는 허락되지 않을듯하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이 소비자의 편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설 연휴 휴무일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기로 했단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설날 당일 날도 급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 편리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의 편리가 유통업계 노동자들에게서 명절을 빼앗을 만큼이나 중요한 것인지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조금 불편을 겪을지라도 종민이 엄마의 하루짜리 며느리노릇과 하루짜리 휴식을 즐기는 모 팀장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 어쩌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유통업계 근로자들도 근로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식이고 며느리이며 누군가의 부모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포털 사이트 아고라에 대형마트 근무자 가족이라는 네티즌이 '마트 근로자도 설날 쉬게 해주세요' 라는 청원을 올렸다.

자칫 내일이 아니라고 무관심 할 수 있으나 대형마트 근로자의 가족들에게는 간절한 청원이 아닐 수 없다. 청원이 받아들여져서 종민이 엄마의 며느리 노릇도 대형마트 모팀장님의 꿀같은 하루 휴식도 허락되길 바란다.


#대형마트근로자#설날휴무#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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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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