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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샨 바자르 향수가게 주인. 자기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매너가 일류 향수가게 부럽지 않았다.
카샨 바자르 향수가게 주인. 자기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매너가 일류 향수가게 부럽지 않았다. ⓒ 김은주

카샨 바자르는 마음에 드는 바자르였습니다. 혼잡하지 않으면서 있을 건 다 있는 중급 정도의 시장인 카샨 바자르는 현지인의 삶을 구경하기에 좋은 시장이었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기념품 가게도 간혹 보이지만 대부분은 현지인을 위한 시장이었습니다. 실타래, 여러 가지 색깔의 향신료, 밀가루, 육고기, 옷, 신발, 간식거리 등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건 맛있는 빵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기나 밥을 싸먹는 난과 달리 카샨에서 팔았던 빵은 두께가 좀 두꺼우면서 촉촉하고 생강 맛이 나는 빵이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푸짐한 빵이 가격도 쌌습니다. 한 조각에 우리 돈으로 250원 정도 했는데 한 개면 세 명이서 먹을 수 있는 양이었지요. 가능하다면 많이 사서 갖고 다니면서 오래도록 먹고 싶었지만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순박한 빵은 아쉽게도 유통기한이 짧았습니다. 그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어슬렁어슬렁 바자르를 구경했습니다.

카샨 바자르에서 쿠키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이란은 쿠키가 참 싼 편이었습니다.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긴 쿠키가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밖에 안 했습니다. 쿠키는 양도 푸짐하지만 맛도 좋았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이란 쿠키는 이란식 홍차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이란에서 구입했던 걸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달았습니다. 짜고 매운 음식문화를 가진 우린 단맛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란에서는 짜고 매운 걸 못 먹으니 대신 단 것에 집착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실제 이란 사람들은 정말 달게 먹는 편이었습니다. 차 한 모금에 설탕 한 덩어리씩 먹을 정도로 설탕 소비량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맛있는 쿠키와 맛있는 빵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카샨 바자르는 아주 기억에 남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카샨 바자르를 기억에 남게 하는 건 장미 오일을 무더기로 구입한 향수가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향수가게는 카샨 바자르에서 이질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실타래를 아무렇게나 놓고 팔고, 피가 고인 고기가게 옆에서 향수가게는 참으로 럭셔리했습니다. 향수라는 테마 자체가 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이란인에게서 향수는 생필품이므로 슈퍼마켓처럼 시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가 여행선물을 사기 위해 들린 향수가게는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주인이었습니다. 아저씨 또한 시장보다는 백화점 향수가게가 어울릴 정도로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국 여자 손님들이 떼로 몰려들었지만 편안하고 세련된 태도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사실 난 장미 오일을 꼭 사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선물을 사기는 해야 하지만 꼭 장미 오일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집에서 선물을 다량 구매했습니다. 여행이 끝나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하고, 테헤란 바자르에서 선물을 구입할 생각이었는데 우연찮게 이곳에서 선물을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향수가게 주인장의 상술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페르시아 상인의 진가를 보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장미 오일은 10밀리리터에 10달러 정도 했습니다. 비싼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미 오일 50밀리리터를 뽑는 데 장미 1톤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미 반은 넘어가 있었습니다. 장미 오일 한 방울을 내 몸에 뿌리면 장미밭에서 뒹군 것처럼 장미향에 취하게 될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향수병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조잡했습니다. 참기름을 담아서 파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이 보였고, 크기도 너무 작았습니다. 손가락처럼 생긴 병이 영 마뜩찮았습니다. 그래서 장미 밭에서 뒹구는 상상을 했음에도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카샨 바자르 향수가게서 산 향수. 큰 병이 10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이고, 작은 병 두 개는 우리 집 아이들이 선물로 받은 것이다. 병 모양은 신통찮았지만 장미 오일 질은  좋아서 우리나라에 와서도 잘 사용했다.
카샨 바자르 향수가게서 산 향수. 큰 병이 10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이고, 작은 병 두 개는 우리 집 아이들이 선물로 받은 것이다. 병 모양은 신통찮았지만 장미 오일 질은 좋아서 우리나라에 와서도 잘 사용했다. ⓒ 김은주


페르시아 상인은 결코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장미 오일을 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옷에 아무 데나 뿌려주는 줄 알았는데 그는 우리에게 팔을 위로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겨드랑이에 장미 오일을 뿌려주었습니다.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외간 남자 앞에서 겨드랑이를 내놓는 일이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우리들에게 장미 오일을 뿌려주었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주로 장미 오일을 겨드랑이에 뿌리는 모양이었습니다.

겨드랑이에 장미 오일을 뿌리고 나자 정말 장미밭을 뒹구는 것처럼 향기로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땀냄새 나는 여자가 아니라 장미향을 가진 여자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모든 냄새는 장미향에 묻혀 버리고 난 마치 장미꽃처럼 장미향을 가진 여자로 재탄생했던 것입니다.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고집이 센 여자였습니다. 충동구매는 절대로 안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장미 오일을 산다면 그건 충동구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원래 내 목적은 떠나기 직전 테헤란 바자르에서 선물을 구입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난 주인장의 상술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주인장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 비싼 오일을 선물한 것입니다. 한 병에 3천 토만이나 하는 것을 우리 애들 각자에게 준 것이지요. 물론 그는 나를 설득하게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순수했습니다. 대부분의 이란 사람들처럼 그도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들에게 오일 작은 병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우리 애들이 선물을 받는 모습을 보고 다른 일행들도 자기들도 많이 샀으니까 끼워 달라고 졸랐지만 그는 완고했습니다. 많이 샀으니까 끼워준다는 개념은 없는 듯했습니다. 물건은 제 값을 받고 파는 것이니까 물건을 파는 데 있어 손님이 왕이라던가 하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자신은 좋은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그걸 내주는 것이니까 조금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오일 한 병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오일 작은 걸 공짜로 받았다는 부채감도 있었지만 상인으로서 자기 물건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의 집에서 오일을 대량 구매했습니다. 충동구매를 했지만 후회 같은 건 없었습니다. 자신의 오일에 대한 향수가게 주인의 자부심 때문에 나 또한 그 오일을 그 어떤 향수보다도 귀하게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오히려 좋은 물건을 구매한 것 같은 뿌듯함까지 느꼈습니다. 작고 조잡한 병이 그 자부심을 상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페르시아 상인이라면 화교와 더불어 소문난 장사꾼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향수가게 주인에게서 장사를 잘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우선은 물건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좋은 물건을 갖고 있어야겠지요. 그래야 자신의 물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다음으로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덤으로 자신의 물건을 주는 것은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물건을 선물하는 것은 물건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물건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신뢰성과 감동, 쉬운 말이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본질은 드러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장사를 잘하고 싶다면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게 먼저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장사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수양하라는 말을 체득한 경험이었습니다.


#장미오일#향수가게#카샨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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