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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전거는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 <기자 말>

 자전거는 기본 틀을 유지한 채 계속 발전 중이다. 앞으로 어떤 자전거가 나올 지 알 수 있다. 최근 열린 서울바이크쇼에서 선보인 기마형 자전거. 두 발을 동시에 돌리거나 한 발만 돌릴 수 있다.
자전거는 기본 틀을 유지한 채 계속 발전 중이다. 앞으로 어떤 자전거가 나올 지 알 수 있다. 최근 열린 서울바이크쇼에서 선보인 기마형 자전거. 두 발을 동시에 돌리거나 한 발만 돌릴 수 있다. ⓒ 김대홍

자전거는 낡은, 또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통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자전거는 만들어질 때부터 과학의 산물이었으며 이후에도 끊임없이 성능 개량 중이다.

자전거는 인간동력이 얼마나 빠르고 자유로운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자신의 두 다리 또는 소나 말에 의존해서 움직이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됐다. 내리막길에선 그 전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를 냈으며, 짐 또한 놀라울 정도로 실었다.

자전거가 낡아 보이는 건 대량생산 대량소비, 속도전이라는 트렌드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이 인간동력이라는 점 또한 석유를 주로 쓰는 흐름에 맞지 않다.

이런 트렌드에 걸맞은 수단은 자동차다. 거꾸로 북유럽과 독일, 일본에선 자전거가 인기다. 이들 나라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속도전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했고, 그 해답을 자전거에서 찾는다. 따라서 자전거가 자동차에 비해 낡았다는 건 오해에 가깝다.

자전거는 현대 문명에 많은 영감을 줘, 비행기나 자동차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와 최초의 자동차 등이 만들어지는 데 자전거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일제강점기 발명왕으로 불린 사람들 가운데는 자전거 수리공들이 많았다. 그들은 손재주가 탁월했고 아이디어가 많았다. 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드는가 하면, 성능이 훨씬 좋은 자전거를 내놓아 주목을 받곤 했다.

100년 전과 비교해 자전거의 기본 형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부품과 재질은 계속 좋아진다. 요즘 고급자전거는 비행기나 우주선에 쓰이는 재질을 이용해 강도는 높이고 무게는 줄인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갖가지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고, 네비게이션 기능이 접목된 자전거는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

자전거를 추억의 물건, 낭만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빚어낸 고정관념이다. 과학의 시대를 이끈 자전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전거점포 주인 라이트형제, 비행기를 만들다

 자전거는 좌우균형을 이루면서 나아간다. 자전거포를 운영했던 라이트형제는 자전거 균형원리를 잘 탐구해 비행기를 날게 하는데 성공한다.
자전거는 좌우균형을 이루면서 나아간다. 자전거포를 운영했던 라이트형제는 자전거 균형원리를 잘 탐구해 비행기를 날게 하는데 성공한다. ⓒ 창공으로(2006)

라이트형제는 교회신문을 발행하는 아버지 영향을 받아 1889년 4면짜리 주간지를 발행했다. 엄연한 상업지였으나 다른 일간지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이내 신문발행을 그만 둔 형제들은 인쇄업을 하면서 종종 친구들 자전거를 고쳐주곤 했다. 자전거 타기를 무척 좋아하던 형제는 곧 동네 사람들로부터 '솜씨 좋은 자전거 수리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그 무렵 미국에선 자전거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언론은 자전거 열풍이라고 표현했다. 시대 흐름에 맞춰 1892년 형제는 인쇄소 대신 자전거 상회를 열었다. 장사는 두 사람 실력에 힘입어 네 군데나 가게를 둘 정도로 번성했다. 처음에 단순히 자전거만 고쳐주던 형제는 자전거를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형제는 부품을 직접 만들어 팔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헌 자전거가 라이트형제 가게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근사한 자전거로 바뀌어 나왔다.

형제는 1903년 세계에서 최초로 비행을 했으며, 1905년에는 최초로 실용적인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다. 형제는 비행기가 뜨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수라는 점을 깨달았고, 좌우균형을 맞춰 나아가는 자전거를 주목해 결국 비행기를 띄우는데 성공했다.

비행기 뿐만 아니다. 자전거에 엔진을 달거나 뚜껑을 씌우는 형태로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즉 인간동력으로 움직이는 건 자전거, 기계동력으로 움직이는 건 자동차나 오토바이였다.

자동차용 가솔린 내연기관은 1883년 독일 다임러(Gottlieb W.Daimler)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엔진은 1885년 자전거에 달려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로 이어졌다.

1886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 특허증을 받은 벤츠 자동차엔 자전거용 핸들이 달려 있었다. 다임러사와 벤츠사는 1926년 합병하면서 메르세데스 벤츠로 이름을 바꾸었다.(참고 :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자전거포 점원 출신이다. 혼다는 자전거에 엔진을 단 자전거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1937년 피스톤링(Piston rings)을 생산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혼다는 하마마스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자전거에 50cc 2기통 엔진을 달아 드림(Dream, 1948)을 만들어 냈다.

초창기 여러 발명가들은 자전거를 통해 영감을 얻고, 사업가들은 자전거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았다.

조선 또한 이 흐름에 동참했으니 자전거 기술자들이 맹활약한다. 최덕윤은 무연탄 연소기를 발명한다.(1925년) 당시 조선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쓰던 연료는 나무였다. 나무를 베어 밥을 하고 물을 끓였으니 나무가 남아날 새가 없었다. 곳곳이 민둥산으로 변했고, 여름이면 산에서 흙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연탄 연소기는 조선 연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져 주목을 받았다. 최덕윤의 직업은 자전거수리업자였다.

1931년엔 자전거포를 하는 박봉춘이 솜타는 기계인 타면기(=솜틀기)를 만들었다. 당시는 기적의 섬유라 불리던 나일론(1935년 발명)이 나오기 전이다. 박봉춘이 만든 타면기는 기존 제품보다 능률이 1.5배 정도 앞섰고 사용시 소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앉아서 할 수 있고 두 명이 쓸 수 있어 이점이 많았다. 타면기는 바퀴를 돌리는 형태로 페달을 돌려 바퀴를 돌리는 자전거와 비슷하다. 자전거 구조에 능통한 박봉춘은 타면기를 만드는 데 꽤 유리했다.

1934년 홍성유는 자전거 부품을 이용해 송풍기(送風機)를 만들었다. 프로펠러 가운데 심 부분을 자전거 휠을 이용해 만들었다. 한 바퀴를 돌린 뒤 손을 놓아도 계속 돌아가는 방식. 자전거 페달을 몇 번 돌리다 멈춰도 가속력 때문에 계속 돌아가는 원리를 응용했다.

이처럼 자전거 작동방식은 각종 생활용품에 스며들었다.

자전거 쪽에서도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나왔다. 1932년 나온 공기안장이 대표적. 지금도 그렇지만 줄곧 자전거 안장용 완충장치는 용수철이었다. 발명자는 용수철 대신 공기튜브로 바꿔 제작비용을 줄이면서 완충효과를 높였다. 이후 공기튜브안장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다른 결함이 발견됐거나 기존 자전거업계가 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1934년 나온 자전거용 짐받이는 독특했다. 당시는 자전거가 화물용으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짐을 많이 싣고 다녔다. 문제는 도난 문제. 자전거 뒤에 실린 짐만 들고 튀는 도둑들이 많았다. 발명자는 짐받이에 열쇠를 달아 잠그게 만들었다.

같은 해 김진성이 만든 신식 자전거는 지금 봐도 놀라운 기술을 달았다. 펌프를 몸통에 넣어 언제든지 바람을 넣을 수 있게 했고, 타이어는 펑크를 막을 수 있게 특수 제작했다. 속력 또한 기존 자전거의 2배 이상으로 높였다.

자전거 발명붐 가운데 사기사건도 벌어졌다. 이른바 박평신의 수상자전거(水上自轉車) 발명 사건.(1940년) 박이 특허등록 후 부자가 되면 이익을 나누자면서 돈을 받은 것. 물론 이 자전거는 거짓이었고 돈을 받은 뒤 발명가는 사라졌다. 만약 이 발명이 사실이었다면 대박가능성은 있었다. 당시 한강에 다리라곤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광진교 셋 뿐이었고, 그나마 한강철교는 사람이 다닐 수 없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 했고 그마저 끊어지기 일쑤였다. 수상자전거가 있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어쨌든 박은 시대 요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자전거에 보조의자를 달아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 오래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보조의자를 달고 자전거에 아이를 많이 태웠다.
자전거에 보조의자를 달아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 오래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보조의자를 달고 자전거에 아이를 많이 태웠다. ⓒ 김대홍

1933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자전거 배승구(陪乘具, 자전거용 보조의자)는 조선의 자전거 문화를 크게 바꿨다. 이전까지 자전거는 한 사람만 탈 수 있는 1인 교통수단이었다. 장에 가거나 산책을 갈 때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배승구가 나오면서 이 고민이 단번에 해결됐다. 정부에선 어린애를 태울 수 있도록 자전거 규칙을 바꾸었다. 이 자전거용 배승구는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었다.

이 자전거용 배승구에 관해서는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외가에 놀러 가면 외삼촌이 모는 자전거 뒤에 타고 읍내에 놀러가곤 했다. 어찌나 신나던지. 나보다 더 어린애들은 배승구를 단 자전거를 탔는데, 그 또한 신나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으니 꽤 큰 나이였는데도 괜히 그 배승구를 타고 싶어 곁눈질을 보냈다.

그 당시엔 배승구를 탄 자전거가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데리고 읍내에 나가는 이들이 많았고, 시골에선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 자전거였다. 지하철은 당연히 없었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은 마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외가가 있던 동네에 버스가 들어온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외가는 전라남도 나주, 강원도나 경상북도같은 첩첩산중이 아니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전국엔 대중교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얼마나 많았을까.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었고, 그 먼 거리를 아이를 업고 갈 순 없었으니 자전거 배승구란 참 편리한 도구였다.

지금은 배승구를 단 자전거를 보기도 힘들거니와, 그런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려면 '그 위험한 걸…'하면서 모두들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까.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자전거 작동원리인 인간동력, 좀 더 발전시킨다면...

지금은 생소해져버렸지만 '인간동력'은 석유 이전까지 가장 널리 쓰인 에너지원이었다. 사람은 짐을 지거나 가마를 날랐으며, 수레를 끌었다. 수원성을 쌓을 때 쓰인 거중기 또한 사람이 움직였다. 인류의 수많은 시간 동안 인간동력은 가장 널리 쓰인 에너지 자원이었다.

인간동력 에너지를 석유 에너지가 대신하면서 '인간동력=구시대'라는 낙인이 지워졌지만, 선진국에선 인간동력을 이용한 대안 에너지 개발 사례들이 생각 외로 많다. 책 '인간동력, 당신이 에너지다'(유진규, 김영사, 2008)를 보면 잘 나온다.

책엔 다양한 인간동력 교통수단이 나온다. 사람들이 마주보고 앉아서 페달을 돌리면서 시내를 이동하는 네덜란드의 '자전거카페', 사람의 다리 힘만으로 움직이는 샌프란시스코의 '14인용 자전거버스', 요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보트', 네 사람이 노 젓듯이 핸들을 움직이면 평지에서도 50km/h를 내는 '휴먼카' 등은 신선하기만 하다.

"사람힘이 그렇지 뭐…"라고 치부하기엔 인간동력이 만들 가능성은 꽤 매력적이다. 책을 보면 그동안 우리는 인간동력을 너무 몰랐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차단당해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전거 작동원리를 잘만 이용하면 비용을 줄이면서 굉장히 효과적인 장치를 만들 수 있다. 대표 예가 2010년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수상한 건물 옆 벽면 자전거 주차장이다.

 사람 힘만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주차장. 뉴욕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건축가 안지용·이상화씨가 디자인했다.  2010년 서울디자인올림픽 수상작.
사람 힘만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주차장. 뉴욕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건축가 안지용·이상화씨가 디자인했다. 2010년 서울디자인올림픽 수상작. ⓒ manifesto architecture

건물 벽 옆에 타원형 거치대가 달려 있어 자전거를 매달고 페달을 밟으면 주차장 거치대가 돌아간다. 그렇게 한 대씩 돌리며 최대 30여 대까지 주차할 수 있다. 30여 대를 주차하는 동안 전기는 전혀 쓰지 않는다.

게다가 주차장 공간 또한 거의 쓸모없이 방치된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을 활용해 '최소 크기와 최소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자전거 정신을 잘 실용한다. 이 아이디어는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도 전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통신기기 회사인 노키아는 2010년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시속 6km 이상만 되면 충전이 된다. 시속 10km로 10분만 달리면 28분간이나 통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도 좋다. 자전거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전기를 만들어내니 이보다 보람있고 친환경적인 에너지가 어디 있을까 싶다.

'친환경, 저에너지'가 새로운 시대의 대세라면 자전거는 확실히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그 가운데에는 수천수만 가지로 응용가능한 자전거 원리가 내재돼 있다.

지금은 비록 자동차 시대지만, 앞으로 도심에서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더 편리하게 다닐 날도 멀지 않았다. 더 가볍고 더 빠르며 주차하기도 더 좋은 자전거, 게다가 유지비는 거의 들지 않는 자전거가 탄생한다면 말이다.

더 이상 1톤 가까운 무거운 쇳덩이를 몰고 다니며 불평하기에 지쳤다면 다른 세상을 꿈꿔볼 일이다. 필요한 건 자전거를 탈 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과 인식 바꾸기.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결국 적게 쓰고 적게 버리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자전거 타기 좋은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자전거#자전거발명#인간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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