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위원장의 꼼꼼한 선택은 어떤 매듭을 지어낼까.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정희 시대의 추악한 과거들을 일벌백계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주변 반응은 일단 '안심'입니다. 그와 함께 국정원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합리적이고 깔끔한 분"이라고 안 위원장을 추켜세웠습니다.
안 위원장은 9일 오후 첫 번째 비례공심위 회의에서 "너무나 막중한 소임을 맡게 돼서 여러 가지로 걱정이 앞선다"며 "지금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민주당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파악해서 한 치의 신뢰를 잃는 일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안 위원장은 '시대의 요구'와 '역사의 흐름'을 강조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착된 '87년 체제'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의 등은 오히려 더 퇴보하거나 어려워져 2012년 총·대선을 통해 '2013년 체제'를 완성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비례대표 공천심사'를 하겠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또한 안 위원장은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어느 정도까지 해결할지 모르지만 한미FTA 비롯해서 얽혀 있는 경제적 어려움, 재벌들의 문제 등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여러 가지 엉킨 실타래 푸는 일을 하는데 어느 정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의원들과 더불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역구 후보 공천심사를 했던 '강철규 공심위'가 초반에 비리혐의 등 문제가 있음에도 전현직 486 정치인들을 무더기 단수 공천하는 등 여러 가지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오히려 '안병욱 비례공심위'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더 커지는 형국이기도 합니다. 기실, 낙제점 수준의 민주통합당의 위상을 안병욱 공심위가 얼마나 끌어올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중요한 관전포인트이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지역 공심위'로 실점을 한 민주통합당이 '비례 공심위'로 득점 포인트를 늘려 어느 정도나 새누리당을 압도할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기도 합니다.
안병욱 공심위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낼까한 진보학자는 "죽 쑤고 있는 민주통합당이 비례대표 공심위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려면 최소한 내부 폭동이 일어나는 수준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데 과연 이번 공심위에서 그걸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비관론을 폈습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위원회에서 안 위원장과 함께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과단성이 없는 분이라 민주통합당의 요구를 결단력 있게 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강철규 위원장이나 안 위원장이나 모두 외부세력이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의 이러저러한 부탁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비례공심위 면면을 보니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조건은 '강철규 공심위'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대쪽같이 과감하게 결단해서 국민들이 보기에 아주 흡족할만한 수준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집단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하도 나눠먹기 한다는 비판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비례공심위에는 적어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들이 자기 사람을 끼워 넣으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명망가들이 많이 포함된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만화가 박재동씨와 시인 안도현씨 등이 그 대표적 인사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강철규 공심위'에 친노와 486 정치인들이 대거 포진됐다면, 이번 '안병욱 공심위'에는 과거에 시민사회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주로 많이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여연대에서 오랫동안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연금 전문가'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안병욱 비례공심위'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 그는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절대로 나눠먹기가 통하지 않는 공천심사를 하겠다"며 "누가 봐도 객관적이고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분들을 최대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현장에서 2013년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인물이 누구인가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복지국가를 외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정책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비례공심위'는 우리 국민들에게 구체적 희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정치'를 해낼 인물들을 찾아내는데 힘을 쓰지 않을까 전망됩니다. 과거처럼 소수자 배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공공의 관점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진보'를 찾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노력이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요? 민주통합당은 영원히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안병욱 비례공심위'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