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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책을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다녀왔다. 집에서 우체국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기분 좋게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중간에서 비를 만났지만 내 손엔 우산이 들려져 있었다. 옷도 모자가 달린 등산복 차림이어서 조금 젖어도 개의치 않았다. 신경이 쓰인 것은 책이었다. 나는 책이 젖지 않도록 품 속 깊숙이 책을 껴안은 채 우체국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무슨 신성한 것을 품안에 모시고 가는 그런 형국이 되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입가에는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그 웃음이 우체국을 나와 우산을 받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남아 있었던지 문을 열어주던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좋은 일? 그런 거 없는데. 근데 왜?"
"응, 그냥. 기분이 좋아보여서."
"그래? 기분이 좋긴 해."
"왜 기분이 좋은 건데?"
"그냥. 걸어갔다 와서 그런가? 아니면 우체국에 다녀와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당신 어제도 우체국에 다녀왔잖아?"


그랬다. 전날 우체국에 간 것도 지인에게 책을 부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말 책을 낸 뒤에 나는 벌써 다섯 번도 넘게 우체국에 다녀왔다. 지인들에게 책을 부칠 거면 한꺼번에 부칠 일이지 왜 생각날 때마다 띄엄띄엄 우체국에 간 것일까? 그건 내가 평소 주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성 싶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특히 걸어서 우체국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말이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차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습성이 생겼을 테지만, 택시나 버스를 타야할 상황에서도 나는 걷기를 고집한다. 하루에 한 시간 반 남짓 걷는다. 두 시간 넘게 걸을 때도 많다. 그러다보니 걷는 거야 굳이 애써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우체국에 가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 일이 생겨주어야 가는 건데 그 일을 하루에 다 해치워버리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내가 초임교사시절에 자주 찾아간 곳도 우체국이었다. 그때까지 만해도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터라 지인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문방구에서 편지지와 봉투를 산 뒤에 직접 손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야 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주변에 빨간 우체통이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우체국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걸어서 우체국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무렵에 길들어진 습성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왜 가까운 우체통을 놔두고 우체국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자청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당시 내가 얼치기 문학도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교사가 된 이후의 일이었다. 교단을 밟은 지 3년째 되던 해 담임을 맡았는데 심심하면 사고가 터졌다. 대개는 절도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성인용 야동을 물리도록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터라 솟구치는 관능을 채우기 위해서는 시청각 장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관능의 노예가 되기 쉽다. 그리고 관능에 항복하는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공부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시였다. 시를 잘 쓰지도 못하고 시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은연중에 내가 문학도라는 자의식이 싹터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생일을 맞이한 제자들에게 그들의 삶은 소재로 한 생일시를 써서 선물해주기 시작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작고 고마운 장치가 되어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생일시를 써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헌데 어떻게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우선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이야 자판을 두들겨 전자우편으로 발송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편지를 써서 직접 손에 쥐어 주거나, 아니면 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집어넣어야 했다. 지금도 빨간 우체통을 보면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무시로 연애편지를 보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들여다봄의 목적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일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주기를 바랐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끝내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상위 몇 프로에게만 그들의 인간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부여해주는 잘못된 교육풍토와 학교의 잘못이었다. 타고난 성품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따듯한 눈길을 보내는 것도 문제였다. 그 시선 밖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올해 1학년 여자반 담임을 맡았다. 우리 반이 보건경영과라선지 장래 희망을 간호사라고 적은 아이들이 많았다. 지난 3월 6일, 첫 생일의 주인공이 된 민영이도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보통의 경우는 보름가량 편지를 주고받은 뒤에 생일시를 써주게 되어 있는데 민영이는 생일이 너무 빨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틀 사이에 세 통이나 편지(전자우편)를 주고받아 생일날 시를 선물로 전해줄 수 있었다. 입학식 날, 편지를 쓰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준 민영이가 참 고맙고 미쁘다. 민영이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빈다.

낮고 아름다운 꿈

강민영! 네 번호가 1번이다 보니 
입학식 날 우린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
너의 이름이 화면에 떠오르는 순간
네가 내 왼쪽에 앉아 있어서 그랬는지
왼쪽 가슴이 더 콩닥콩닥했던 것 같구나    


바로 그 다음 날
메일함을 열어보니 반가운 편지가 와 있었지
"아, 우리 민영이가 약속을 지켰구나!"
나는 입이 귀에 달린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한 글자 한 글자 네 편지를 아껴가며 읽어보았지

네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
난 너에게 물었지
어떤 간호사가 되길 원하느냐고
오래 전, 내 꿈이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하자
꿈과 직업은 다른 거라며
어떤 교사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누군가 내게 물었던 것처럼

넌 간호사가 되면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구나


행여 그 꿈이 너무 높고 멀어
무지개를 잡는 일처럼 여겨지거든   
이런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

환자에게 친절한 간호사가 되는 것
아픈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주는 것
꿈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그 낮고 아름다운 꿈도 함께 꾸어보렴. 


2012년 3월 6일
사랑하는 민영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지 <새가정>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천효산고 #빨간 우체통#시와 편지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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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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