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형사3부장검사)은 23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장진수 전 주무관의 전임자인 김아무개씨, 공인노무사 이아무개씨 등 4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민간인 사찰 의혹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지시 의혹과도 관련된 인물들이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청와대 개입과 장 전 주무관의 폭로를 막기 위한 자금 전달 등의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이날 압수수색을 받은 이영호(포항 구룡포)·이인규(울진 영덕)·이아무개(포항)씨는 대체로 '영포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민간인 사찰의 몸통으로 '영포라인'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먼저 이영호 전 비서관은 스스로 "자료삭제에 관한 한 제가 바로 몸통"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증거인멸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모순된 주장을 폈지만 그의 '호통기자회견' 때문에 그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깊숙이 관여해왔음이 드러났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포항출신 공인노무사인 이아무개씨를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넸다. 이를 두고 "증거인멸 지시 윗선 폭로를 막기 위한 입막음용"이라는 의혹이 일었지만 그는 "선의로 준 것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장 전 주무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예산 중 280만 원을 이 전 비서관(200만 원) 등에게 매달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 2010년 민간인 사찰 의혹 검찰수사 당시 검찰에 한차례 소환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최종석 전 행정관과 함께 그를 무혐의 처리했고, 이후 그는 고향인 포항에서 총선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이 전 비서관은 증거인멸뿐만 아니라 사찰지시 여부도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인규 전 지원관은 2010년 민간인사찰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10개월간 복역한 후 지난해 5월 출소했다. 그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민간인 사찰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최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너무 억울해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청와대 개입 의혹'에는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말문을 닫았다.
최종석 전 행정관 "이른 시일 안에 귀국해 조사받겠다"
큰사진보기
|
▲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 깃발이 비치고 있다. |
ⓒ 유성호 | 관련사진보기 |
또한, 검찰은 이날 장 전 주무관의 전임자인 김아무개씨와 이영호 전 비서관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아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한 이아무개씨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김아무개씨는 지난 2010년 10월 18일 녹음된 '장진수-최종석' 대화록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대화록에 따르면, 그는 "진(경락) 과장님이 다 뒤집어쓰고 가면 안 돼요?"라며 "본인이 (증거인멸) 했던 걸로…"라고 말했다.
증거인멸의 윗선을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에게 몰아가려고 한 것이다. 이는 '청와대 개입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이 없다"며 계속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인 이아무개씨는 지난 2011년 8월 신길역 근처에서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넨 인물이다. 돈을 건넬 당시 그는 장 전 주무관에게 "이영호 비서관이 마련한 것인데 걱정하지 말고 쓰라"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은 최근 이씨에게 2000만 원을 되돌려주었다. 이씨도 포항출신이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에 최종석 전 행정관을 소환 조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안 자체가 워낙 중대하고 확인해야 할 분량이 많아 최 전 행정관을 가능한 한 빨리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 전 행정관도 "이른 시일 안에 귀국해 조사받겠다"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주무관은 "2010년 7월 7일 오전 최 전 행정관이 나에게 (민간인 사찰을 맡았던) 점검1팀의 모든 컴퓨터와 진경락 과장의 컴퓨터를 한강에 버리든 부수든 물리적으로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점에서 최 전 행정관은 이영호 전 비서관과 함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의 윗선 의혹을 풀어줄 핵심인물로 지목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