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1% 대 99%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아니라 1+99=100,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다. 새누리당은 분열이 아닌 화합을 지향한다. 100% 대한민국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만드신 말이다." 조윤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27일 첫 번째 당 중앙선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전한 비공개회의 내용입니다. 또 박 위원장은 "우리의 미래는 반쪽짜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론'입니다. 선뜻, 수긍이 되시나요?
솔직히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우선 대한민국 1%만을 위한 '부자 정당'. 무늬만 바뀐 새누리당의 다른 이름입니다. 99%를 소외시켰던 집권여당으로서의 과거는 어찌하실 겁니까? 이뿐인가요. 당신의 부친께서 불법 강탈한 장물, 정수장학회는 그냥 덮고 미래로 가면 됩니까? 이게 박근혜식 '100% 과거와의 단절'입니까?
박근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의 어제와 오늘
지난 1월, 저는 후배로부터 책 한 권을 읽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책은 1979년 2월 박근혜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가 펴낸 <새마음의 길>입니다. 후배는 제게 "이 책은 박근혜의 생애 첫 책"이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비참했던 99% 민초들의 삶은 쏙 빠진 채 화려했던 박근혜 위원장의 과거만 담긴 책입니다.
이 책에는 박 위원장이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활동하던 1970년대 중·후반 각 학교와 기업 등을 돌아다니며 연설한 연설문이 기록돼 있습니다. 정치연설문의 기록이라고나 할까요? 저자는 박근혜로 찍혀 있지만, 실제 이 글을 모두 박 위원장이 직접 썼을까요? 그건 독자 여러분의 판단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여하간, 누구도 손댄 흔적이 전혀 없는, 아주 깨끗한 33년 전 이 책에는 스물일곱 앳된 퍼스트레이디의 활동이 낡은 영화필름의 한 장면처럼 기록돼 있었습니다.
1978년 10월 28일 남들은 다 띠 두르고 맨손으로 일하는데, 본인만 영국 귀족 스타일의 버버리 차림에 하얀 장갑을 끼고 서 있는 장면이나, 업스타일 머리로 불교계 대표를 영접하는 장면, 또 한국수출산업공단 새 마음 갖기 실천대회를 열고 사람들을 도열시킨 뒤 연단 위에서 박수 치는 장면을 보면, 박 위원장은 정말 그 시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산 사람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사진만 봐도 '레귤러'와 '스페셜'은 딱 분간이 되니까요.
당시 스물일곱의 박근혜 총재는 구국여성봉사단 명의로 '새마음 갖기 운동'을 펼치면서 충·효·예를 강조했습니다. 훗날 구국여성봉사단은 새마음갖기운동본부로 이름이 바뀌지만, 핵심이 되는 '정신순화운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박 위원장은 당시 이 운동에서 국가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슨 일을 맡아 하든지, 항상 충을 마음에 간직하고 충을 최대의 가치로 앞세우며 일할 때, 꿈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현될 수 있다"며 "충은 국가 전체를 복되게 하고, 그 복됨은 우리 전체에 보다 큰 행복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충효 사상은 물질만능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이라며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충효 정신을 '새마음 갖기 운동'의 기초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만 할 수 있는 정신순화운동의 특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고, 여기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 독재의 그늘을 이른바 정신순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영부인 정치와 유신독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의 상징이면 박근혜는 새마음 운동의 상징"이라며 "살벌한 박정희 독재체제하에서도 이른바 '영부인 정치'로는 박근혜가 좋은 일도 많이 했다는 일종의 이미지 정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 교수는 "전두환 시절에도 이순자씨가 새세대 심장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을 했었다"며 "살벌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영부인은 국민들을 위해 아주 따뜻하고 좋은 일을 한다는 식의 미화"라고 비판했지요.
한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이 출간되던 1979년은 한국정치의 암흑기였습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고, 이 사건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파리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했고, 10·26 사태가 났지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심장을 겨눈 해가 바로 1979년입니다. 정말 살벌했던 때지요.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은 박근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의 활동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한겨레>에 털어놓은 구술을 통해 밝힌 1978년 겨울의 어느 날은 이랬습니다.
"광주 북성중학교로 옮겨온 78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교무주임이 '선생님이 보셔야 한다'며 공문을 들고 왔다. 읽어보니 박근혜 당시 구국여성봉사단(훗날 새마음운동본부) 총재가 광주 실내체육관에서 '새마음갖기대회'인지 '새마음중고생연합회 발대식'인지를 하는데 참가자로 내 이름을 지명해 놓은 것이었다. (중략) 나는 공문을 보자마자 가기 싫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교무주임은 이름이 명시된 공문이어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중략) 그렇게 예행연습날이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도서관 직원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했다. 퇴근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행연습에 갔던 직원이 돌아와 '총재님이 오시는 내일은 복장을 곤색이나 검정색 정장을 하고 오라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는 언제 경례를 하고, 언제 자리에 앉는지 등등 예행연습한 내용도 알려주었다. 충효예를 내세운 행사에서 27살의 젊은 총재가 퇴장할 때 환갑을 바라보거나 넘은 교장·교감·교사·교수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서서 90도로 절을 하도록 예행연습했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어땠을까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혹 어떤 분은 이제 와서 33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비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33년 전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박 위원장이 27일 발표한 '4·11 총선 메시지' 때문입니다. 그는 이번 총선을 "과거로 회귀냐" "미래로 전진이냐"로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다수 국민의 뜻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우리는 복지국가와 평화의 '2013년 체제'를 출범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갈지 그 갈림길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이 이 중요한 선거의 길목에서 국민을 매우 헷갈리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면서, 정작 끊어야 할 자신의 과거와는 단절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 위원장은 지난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본인과 관련된 과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 "2005년 이사장직을 그만둔 뒤 재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나만 아니라고 강조한다면, 사람들이 웃습니다.
진심으로 박 위원장이 과거와 단절할 의지가 있다면 그는 정수장학회 문제부터 명확히 매듭지어야 합니다.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된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