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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막 달기
현수막 달기 ⓒ 변창기

3월 28일 밤 10시 아는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로 직장생활하다가 지금은 울산시 동구의회 의원을 하고 있는 황보씨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노동운동을 같이 해와서 잘 알고 지냅니다. 그는 선거운동 현수막 설치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근데 왜 이 밤중에 현수막을 다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궁금하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상, 그 상황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가보니 진보신당 소속 김원배라는 시의원 후보 사무실이었습니다(4월 11일 울산 동구는 시의원 보궐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함께 치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래요? 왜 밤 12시에 현수막을 달아요?"

황보씨는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면서 수없이 그래 왔다 합니다.

"내일부터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잖아요. 오늘 밤 12시가 되면 나가서 함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나."

저는 참 궁금했습니다. 왜 선거용 현수막을 밤 12시에 다는 걸까요?

현수막 설치 때문에 실랑이... 그 이유는?

밤 11시 30분이 되자 사무실에 대기중이던 분들이 현수막과 줄을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도 따라 가보았습니다. 남목에 세 곳에 현수막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 곳으로 나뉘어 흩어졌습니다. 그 중 저는 남목에서 주전 넘어가는 큰 길 삼거리로 따라 가보았습니다.

차량이 시내에서 방어진 쪽으로 가는 방향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맹하니 서 있었습니다. 속으로 '저사람이 야밤에 저기 왜 서 있지?'하며 지켜 보는데 젊은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현수막 선점을 위해
현수막 선점을 위해 ⓒ 변창기

"여긴 우리가 현수막 걸려고 지키고 있는데요."

같이 간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 젊은 남자는 "안효대 국회의원 후보(새누리당) 사무실에서 나왔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같이 간 일행은 길가에 서 있는 기둥에 올라가 현수막을 설치하려고 준비했습니다. 12시 땡, 하면 먼저 설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수막 설치 자리를 선점하려고 이 야밤에 잠도 안 자고 나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원배 시의원 후보 지지자들이 설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젊은 그 남자는 계속해서 우리가 선점했으니 달지 말라고 했습니다. 김원배 후보 지지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당신네 땅이냐"면서 계속 설치 준비를 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후 건장한 청년 5명이 왔습니다. 그 중 덩치가 큰 사람이 삿대질하며 "우리가 먼저 선점한 자리"임을 강조했습니다. 김원배 후보 쪽은 이미 현수막을 준비해 간 상태로, 안효대 후보 선거 운동원은 그냥 몸만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쪽과 이쪽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효대 후보 선거 운동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대학생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듯이 나이든 김원배 후보 선거 운동원에게 욕을 하며 다른 곳으로 가라 했습니다.

김원배 후보 선거 운동원도 이에 질세라 같이 욕을 하며 맞섰습니다. 안효대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입니다. 김원배는 진보신당 시의원 후보입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정치성 때문인지 서로 으르렁 거리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김원배 후보 선거 운동원의 부탁으로 가본 거지만 현수막 거는 장소까지도 민감하게 여기는 거 보니, 후보자에겐 현수막 하나 다는 것까지 매우 중요한가 봅니다.

그렇게 실랑이가 계속되고 몸싸움이 일기 직전 안효대 후보 쪽에서 다른 누군가 또 왔습니다. 그 사람은 점잖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이 이야기 하자 청년들은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아마도 선대본에서 지위가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 운동원 이라고 밝힌 젊은이들. 대학교 다닌다 했다.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 운동원 이라고 밝힌 젊은이들. 대학교 다닌다 했다. ⓒ 변창기

이쪽과 저쪽이 한참 이야기하더니 김원배 후보 현수막은 높은 곳에, 안효대 후보 현수막은 그 아래 거는 것으로 협의되었습니다. 밤 12시가 되자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악수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현수막 하나는 남목 마을 길에다 달고 하나는 현대중공업 서부문이란 곳에 달러 갔습니다. 시간을 보니 29일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서부문이란 곳에 가니 이미 다른 후보 쪽에서 현수막을 설치하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같이 간 후보 선거운동원은 "좋은 자리 빼았겼다"면서 아쉬워 했습니다. 그분들은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여기저기 그나마 괜찮은 다른 자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무와 다른 기둥을 지목하고 거기다 현수막을 설치했습니다.

"내일 아침 6시 30분까지 서부문으로 나오세요. 우린 서부문에서 선거 출정식을 갖습니다."

선대본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서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목에 무소속 시의원 이성규 후보 사무실이 보였습니다. 아직 불이 켜져 있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 후보 선대본 사무국장이 중학교 동기라 수고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선거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자리에서 잠들어 있고 친구는 책상에 앉아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야, 여기는 왜 현수막 안 달아? 다른 후보는 여기 저기 현수막 달려고 야단이던데."

친구는 차 한 잔 먹고 가라면서 사정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선거엔 여러가지 규정이 있나 봅니다. 현수막 설치한다는 내용과 아침에 선거운동을 어떤 사람이 모여서 한다는 내용에 대해 선관위에 올려야 하는가 봅니다.

"서류 준비 다해서 클릭했는데 갑자기 버퍼링에 걸려 버리잖아. 다시 점검해서 올렸는데 6시 10분이야. 10분 지났는데 안 받아 준데. 내일 아침에 선관위 문 열면 다시 하래. 그래서 내일 9시 선관위 문 열면 다시 서류 올리고 허락을 받아야 해. 그래서 우린 내일 아침 선거전도 못 해. 현수막도 다 준비해 놨는데 이렇게 돼서 후보에게 미안해 죽겠어."

이성규 후보는 무소속이고 당에서 하는 선거운동보다 힘들게 진행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나도 가서 자야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수 있어서 더 있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선거 시기에 엄청 피곤할 거 같습니다. 모두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누군가는 당선될 것이고 누군가는 낙선할 것입니다.

울산 동구는 시의원 보궐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합니다. 시의원 후보는 3명이 나왔고 국회의원 후보는 모두 5명이 나와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당선 한 번 되어 보려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 주민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알 수 없지만 나처럼 서민,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좋은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피곤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진보신당 소속 김원배 시의원 후보 쪽이 선점에 성공
진보신당 소속 김원배 시의원 후보 쪽이 선점에 성공 ⓒ 변창기

덧붙이는 글 | 변창기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 입니다.



#울산 동구#안효대#진보신당#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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