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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는 왜 결혼 안한 남녀들을 짝 지어 주지 못해 안달인 걸까. SBS <짝>의 한 장면.
 우리 사회는 왜 결혼 안한 남녀들을 짝 지어 주지 못해 안달인 걸까. SBS <짝>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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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용건인 즉슨 여성운동가, 소위 '드센 여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을 써달라는 거였다. 어떻게 기사를 쓰면 좋을지 <오마이뉴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기자가 말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은심 기자님도 결혼하셨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시댁과의 어려움이나..."
"네? 저 결혼 안 했는데요."
"아...... 네 죄송합니다."

순간 어색한 정적이 몇 초간 흐른 뒤,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전화는 무사히 끝났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요것이야말로 기삿감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든 사람은 적당히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결혼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 이거야말로 고정관념 중에 대표적인 고정관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종종 이런 전화를 받는다. 아이들 영어책 광고나 교육보험 광고, 혹은 신용카드 광고 등 으레 결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상품광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때마다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상대방은 적잖이 당황해서 거듭 사과하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다. 마치 커다란 약점을 들춰내기라도 한 것처럼 대단히 실례했다는 상대방의 사과를 받을 때마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서른 다섯을 넘어가는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회식자리에서 '짝짓기'... 요럴 땐 남편 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노처녀가 결혼 못해 안달난 건 아니랍니다.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
 세상의 모든 노처녀가 결혼 못해 안달난 건 아니랍니다.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
서른 다섯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것은 성격이 아주 지랄 맞든지, 지 주제는 생각도 않고 눈만 머리 꼭대기에 붙어있든지, 예쁜 척하고 튕기다가 호시절을 다 보냈다든지, 아무튼 어딘가 큰 하자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당황하는 상대방에 대해 반쯤은 짜증스럽고 반쯤은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부러 더 무뚝뚝하게 구는 경우가 많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에도 두세 번쯤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결혼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아니요, 결혼 안 했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하고 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20대일 때는 "애인은 있어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고 나니 가끔 연민 어린 시선을 받을 때는 있지만 애인 운운하는 질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약 애인이 있다면 30대 중반이 넘어서도 결혼도 안 하고 저러고 있겠느냐고 지레짐작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아직 시집도 안 간 주제에 저렇게 애 둘 낳은 것 마냥 펑퍼짐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여자가 무슨 애인까지 있겠느냐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은근슬쩍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거나 '올해는 결혼해야지' 같은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아주 점잖은 편에 속하고, 노골적으로 미혼남녀 엮어주기라도 할라치면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멘탈붕괴)'이 일어날 지경이다.

 모골이 송연했던 회식의 추억. 결혼 안한 남녀들을 짝짓기하려는 상사 덕분에 '멘붕' 임계치까지 갔다.
 모골이 송연했던 회식의 추억. 결혼 안한 남녀들을 짝짓기하려는 상사 덕분에 '멘붕' 임계치까지 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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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소스라쳤던 경험은, 회식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거나하게 술이 취했을 때 높으신 분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자리에 있는 미혼남녀를 불러 세워서 짝짓기를 해준 일이다. 결혼 안 한 사람 손 들어보라는 말에 울며 겨자먹기로 쭈빗쭈빗 나선 나는, 나만큼 어쩔 줄 몰라하며 '썩소'를 띠고 있는 남자분 옆에 앉아서 몇 번 술을 권하며 억지로 말을 붙여야 했다. 이때야말로 얼마나 바짝 약이 오르던지, 나도 이럴 때는 그 흔한 남편 하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안 하면 어른이 아니다?... 무서운 아줌마들

게다가 약 오르는 일은 또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결혼 안 하면 어른이 아니다'며 서른 다섯이 넘어가는 나를 은근슬쩍 애 취급하는 것이다. 나보다 네 살 정도 아래인 대학 후배가 있는데, 아직도 학번서열이 짱짱한 대학에서 네 살 아래 후배는 까마득한 애 취급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 후배도 서른이 넘어가는 처지이고 서로 늙어가다 보니 적당히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정어정 시간을 뭉갠 나와 달리, 남들처럼 바지런하게 결혼해서 이제 아이까지 낳은 후배가 어느새 나를 애 취급하고 있다. 내가 어설프게 아기를 안고 있을라치면 쯧쯧 혀를 차며 아가씨들은 저래서 안 된다는 둥, 본인은 애까지 낳아본 아줌마라서 무서운 게 없다는 둥 할 때마다 은근 짜증이 치받곤 한다.

이 후배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이가 가져다 주던 인생의 새로운 경이로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애를 낳기 전과 낳은 후는 인생이 180도 달라지고, 애를 낳은 경험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나. 가끔 산후우울증을 앓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친구마저도 아이 키우는 의미를 애써 강조할 때면, 내가 뭐 어쨌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물론 나도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워도 인생이 달라진다는데, 하물며 사람을 키우는 데 어찌 인생이 예전 같을 수 있으리....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여는 것이고 다른 말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넘은 것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줄 수도 있고 같이 기뻐해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그 강을 건너기 싫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를 억지로 물가에 세워서 배를 타라고, 남들도 다 그렇게 했고 너도 그래야 되는 거라고 종용할 권리가 있나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10년 넘은 애인 있어요... 하지만 결혼은 싫거든

 남자는 근처에도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이래도 10년 넘은 남자친구 있어요. 모태솔로의 대명사 '오나미'
 남자는 근처에도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이래도 10년 넘은 남자친구 있어요. 모태솔로의 대명사 '오나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남자는 근처에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모태솔로'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성애자'이냐 '동성애자'이냐 묻기 보다는, 오히려 '무성애자'가 아니냐고 놀려먹는 친구들도 많다.

고백하건대 나는 10년이 되어가는 오래된 애인이 있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그만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나며 완곡히 혹은 간곡히 권유하고 있음에도, 나는 당분간은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거창하게 가부장적인 결혼제도에 정치적 반기를 든다거나, 평생 꼿꼿하게 독신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현재로서는 결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있어서이다. 아직도 나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래서 다른 데 쓸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이가 좀 더 들거나 혹은 다른 계기가 생기면 결혼이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세상에 결혼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너무 큰 욕심일까? 결혼은 어쩔 수 없이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내가 결혼한 많은 친구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듯이, 내 친구들이 내가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을 존중해주길 바란다.


#결혼 권하는 사회#비혼#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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