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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혼란할수록 사람들은 고전을 찾는다. 고전이 쓰여진 시대와 지금은 여러가지 조건들이 다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에 겹치는 풍경들이 있고, 옛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던 방식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풀이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어 지금을 설명하는 것은 오래된 인류의 지혜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고전을 읽고 직접 그 안에서 내 상황에 맞는 성찰을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열쇠 꾸러미 안에서 마침내 열쇠구멍에 딱 맞는 한 개의 열쇠를 찾아냈을 때의 희열. 제대로 된 고전 해설이 독자들에게 대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미쳐야 미친다>, <다산의 재발견> 등을 쓴 정민 한양대 교수가 지은 <일침(一鍼)>(김영사 펴냄)은 세상을 바라보는 열쇠를 자처하는 책이다. 동양 고전에 등장하는 보편적인 힘을 간직한 사자성어 100개를 골라 설명하고 그 곁에 인문학자로서의 통찰을 엮었다.

마음을 다잡아주는 100개의 사자성어 풀이

 <일침>
 <일침>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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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이란 책의 제목은 '정문일침'에서 따온 것이다. 사자성어를 통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잃고 방황하는 독자의 마음에 촌철살인의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는 의도다. 고전에 등장하는 구절들을 주제로 100개의 글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1부 '마음의 표정'에서는 청나라 말기 전각가 등석여의 인보에 등장하는 '심한신왕(心閒神旺)'을 소개하며 '정신이 왕성한 것과 마음이 바쁜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일 없는 사람이 마음만 바쁘면 공연한 일을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 속에서 '나는 몸이 하도 바빠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닌가'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2부인 '공부의 칼끝'에서는 선인들의 공부 단련법과 지식 경영법을 다룬다. 순간의 깨달음을 메모로 붙들어 두라는 '묘계질서(妙契疾書)'와 이미지를 유추해서 본질에 도달하라는 '견골상상(見骨想象)이 눈에 들어온다. 견골상상은 코끼리가 더이상 살지 않게 된 중국에서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서 그림을 그리고 산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상상하다'라는 어휘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다.

3부인 '진창의 탄식'과 4부인 '통치의 묘방'에서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을 음미해볼 수 있다. 저자가 2011년의 화두로 꼽기도 했던 '수락석출(水落石出)'은 물이 줄어들자 바위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임기말 권력에 누수가 생기면서 현 정권의 각종 비리와 추태가 드러나고 있는 요즘 곱씹어 볼 만한 일침이다.

'까마귀는 암수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의 '자웅난변(雌雄難辨)'은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많은 옛 지식인들이 혼탁한 세태를 표현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4월과 12월,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각종 헛공약과 이합집산이 난무하는 요즘의 한국 정가에 어울리는 화두이기도 하다.


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김영사(2012)


#정민#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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