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쏟아낸 '막말' 파문에 휩싸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노원갑)가 '정면돌파'를 선택한 모양이다.
김 후보는 5일 오전 7시 44분 자신의 트위터에 선거운동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월계역(남부역)에서 출근인사 중입니다. 쌀쌀함도 풀려가고 있습니다. 움츠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일부에서 일고 있는 사퇴 요구를 거부한 셈이다.
김 후보를 전략공천한 민주당의 침묵도 길어지고 있다. 한명숙 대표가 대전 유세 중 기자들을 만나 "걱정된다"고 한마디 한 게 민주당이 보인 유일한 공식 반응이다. 물론 민주당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당내 분위기는 김 후보가 스스로 사퇴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속앓이만 하고 있다. 당의 핵심 당직자는 "유구무언"이라고 말했다.
"유구무언"... 말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민주당김 후보의 막말 파문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민주당이 머뭇거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당이 나서서 후보 자격을 박탈할 경우 스스로 공천 실패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김 후보의 공천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사천(私薦)' 논란이 벌어지는 등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명숙 대표 등 당 지도부는 17대 총선에서 노원갑에서 당선됐던 정봉주 전 의원의 강력한 요구, 또 그의 팬클럽인 '정봉주와미래권력들'(미권스)을 의식해 전략 공천했다. 그 과정에서 후보에 대한 기본 검증 과정은 생략됐다. 당 지도부가 져야 할 책임이 만만치 않다.
대안 부재도 민주당이 침묵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김 후보가 사퇴하면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후보를 주저앉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를 한 이상 최종 판단은 유권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당 관계자는 "김 후보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후보가 내놓은 반성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김 후보의 과거 발언이 공개되고 새누리당의 공세가 시작되자 김 후보는 3일 12시 15분 "소위 성누리당, 드디어 제게 네거티브를 했는데 실패! 네거티브를 하는 이유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실 겁니다. 격차가 1.4%로 급격하게 줄어드니, 노원에서 부는 정권교체 바람이 무섭죠? 쫄리면 죽으시던가"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노골적인 음담패설과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표현에 대한 자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김 후보는 1시간 30분 후 다시 트위터에 "과거에 했던, 개그고 연기라 해도 바르고 옳지 않은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노인 폄훼 발언까지 공개된 다음 날에는 동영상으로 사과의 뜻을 재차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 공세에 힘 빠진 민주당
그러는 사이 새누리당은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을 희석할 소재로 김 후보의 발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은 "김 후보를 전략공천한 한명숙 민주당 대표에게 어떤 입장인지 밝히기를 촉구한다"고 공세를 취했다.
새누리당 여성 비례대표 후보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김 후보는 대한민국 여성 유권자들에게 이미 모멸감을 안겼고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며 "과연 김 후보가 국민들과 노원갑 주민들 앞에서 국회의원으로서 여성·교육 정책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민주당은 자질이 부족한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은 것에 대해 한명숙 대표가 직접 사죄하고 김 후보를 즉각 사퇴시켜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의 스텝은 자꾸 꼬이고 있다. 과거 새누리당 인사들의 성추문과 막말에 대한 공세에 대응했던 원칙이 당내 후보에게는 무시되면서 힘이 빠졌다. 중앙에서 펼쳐지는 새누리당과의 '고공전'에서 주도권마저 빼앗긴 모습이다.
이날 오전 김유정 선대위 대변인은 논문 표절 문제를 거론하며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부산 사하갑)의 사퇴를 촉구했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전날 김현 선대위 대변인이 내놓은 "새누리당의 본색은 성누리당"이라는 제목의 논평도 마찬가지였다.
혐오감 느낀 여성들, 야권에 악영향 끼치나민주당으로서는 총선 막판 판세에 미칠 악영향도 걱정거리다. 전국적으로 70여 곳이나 되는 초접전 지역이 문제다.
박선숙 사무총장은 여러 번 "정권심판론이 60% 이상인데도 우리 당으로 지지율이 넘어오지 않는다,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은 45%로 나타나는데 우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이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박 총장은 "그 이유는 당이 유권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많이 줬기 때문"이라며 "남은 기간 심판론과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을 민주당 후보 지지율로 흡수해 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선거일까지 일 주일을 남겨두고 지지층 결집에 나서야할 시점에 터진 김 후보의 발언 파문은 다시 한 번 유권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김 후보가 출마한 노원구와 인접 선거구인 중량구, 도봉구는 물론,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수도권 선거전에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김 후보의 발언에 혐오감을 느낀 20~30대 젊은 여성들과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40~50대 주부들은 직접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초접전 지역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꼭 잡아야 할 계층이다.
현재 민주당은 침묵 속에 선거일 전까지 김 후보의 또 다른 막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숨을 죽인 채 사태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제 1당을 노리는 야당의 자세는 아니다. 김용민 후보는 무소속이 아니다. 민주당이 공천을 준 이상 김 후보의 과거에 잘못이 있다면 당이 나서 사과하거나 최소한 입장 표명은 있어야 한다.
녹색당, 유일한 사퇴 요구... "한 석보다 성평등·인권이 잣대 돼야"민주당은 물론 통합진보당 등 야권이 이번 사태에 침묵하는 가운데 이날 녹색당은 "야권의 한 석보다, 성평등과 인권이 정치의 잣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 후보의 사퇴를 권유했다. 진보정당에서 나온 유일한 사퇴 요구였다.
녹색당은 김 후보의 과거 발언에 대해 "성폭력적이고 반인권적 발언"이라며 "공인이 아니더라도 이웃으로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성평등 의식과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김 후보의 사과 동영상은 진지했지만 공인으로서 충분한 성평등,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며 "김 후보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성평등과 인권이 정치의 중요한 잣대임을 보여주는 것이 김 후보가 우리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후보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