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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와 엄마 품에 안긴 영웅호걸(사진 왼쪽부터 태걸, 태웅, 태영, 태호).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할머니와 엄마 품에 안긴 영웅호걸(사진 왼쪽부터 태걸, 태웅, 태영, 태호).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 정혁

충북 음성군 금왕읍 주공아파트 201동 803호. 네쌍둥이로 유명세를 탄 태영·태웅·태호·태걸, '영웅호걸'이 살고 있는 집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나지막한 나무문이 가로 놓여 있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 하도록 한 일종의 보호막이다. 거실 벽에 걸린 큼지막한 웨딩 사진이 신혼부부 집이라는 걸 알려준다.

네쌍둥이 '영웅호걸', 얼굴 보세요

네 쌍둥이의 엄마인 문은정(33)씨를 비롯한 할머니 손옥산(59)씨, '베이비시터' 등 3명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23평 아파트 거실 양 옆으로 아이들의 기저귀가 쌓여 있고 옷가지, 장난감 등으로 빼꼼한 자리조차 찾을 수가 없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거실 바닥은 스펀지 재질의 매트가 깔려 있고, 베란다에는 인형에게 입혀도 좋을 만한 앙증맞은 옷이 말라가고 있다. 집안 전체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 한 느낌이다.

첫째 태영이와 둘째 태웅이는 열심히 바닥을 기고, 태호는 할머니 품에 안겨 있다. 막내 태걸이는 잠을 자고 있다. 둘째와 넷째는 2주 전만 해도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장염이 걸려 지금은 집에서 '요양중'이다. 모두 한 배에서 나왔지만 태영·태웅이는 일란성이고 태호·태걸이는 이란성 쌍둥이다.

 4쌍둥이가 생길 확률은 70만분의 1이다.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하다며 병원에서는 선택유산을 권했다. 그러나 부부는 의사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코 단 한 생명도 포기할 수 없었다.
4쌍둥이가 생길 확률은 70만분의 1이다.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하다며 병원에서는 선택유산을 권했다. 그러나 부부는 의사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코 단 한 생명도 포기할 수 없었다. ⓒ 정혁

네쌍둥이 부모 윤수일(41)·문은정(33)씨는 4년 전 한 병원의 보호사와 간호사로 만나 8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고 부부가 됐다. 결혼 후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 병원 진료를 받은 결과 '난임' 판정을 받았다. 아이를 얻기 위해 3번의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마지막 선택이었던 시험관 시술로 네쌍둥이를 임신했다.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하다며 병원에서는 선택유산을 권했다. 그러나 부부는 의사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생명도 포기할 수 없었다. 문씨가 복용 중이던 자궁 수축 억제제를 바꾸는 사이 자궁이 3㎝가량 열리면서 임신 27주 만인 지난해 5월 11일과 12일 첫째(930g)와 둘째(1㎏)가 태어났다.

 태어날 때 건강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첫째 태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태어날 때 건강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첫째 태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정혁
출산 예정일은 8월 7일이었지만 3개월이나 앞서 세상에 나온 셈이다. 더는 아이가 나오지 못하게 자궁 입구를 묶고 4주를 버텼다. 6월 7일 셋째(1.21㎏)와 넷째(1.39㎏)가 태어나면서 4형제는 극적으로 상봉했다. 70만분의 1이란 확률을 뚫고 네쌍둥이가 태어난 감격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위태로웠다. 가장 먼저 태어난 태영이가 제일 심각했다. 심장 대동맥과 폐동맥을 이어주는 혈관 이상과 탈장으로 2차례 수술을 받았다. 또 미숙아 망막증, 갑상선 호르몬 이상이 생겨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다. 할머니 손씨는 "첫째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보러 갔더니 (아이가) 손가락 같았다"고 회고 했다.

첫째 태영이는 아팠던 지난날을 보상 받으려는 듯 지금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싼단다. 그렇지만 산소 포화도가 정상인에 비해 10% 정도 떨어져 호흡기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 육아 비용은... 헉!

네쌍둥이가 병원을 퇴원할 당시 병원비 3200만 원이 나왔다. 이중 2120만 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했고, 1080만 원은 부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퇴원 후에도 미숙아·바이러스 검사, 감기, 장염 등 병원비가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할머니 손옥산(59)씨가 막내 태걸이를 등에 업고 셋째 태호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할머니 손옥산(59)씨가 막내 태걸이를 등에 업고 셋째 태호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 정혁

호기심 많은 첫째 태영이와 듬직한 둘째 태웅이는 엄마가, 귀염둥이 막내 호걸이는 할머니, 순둥이 셋째 태호는 베이비시터가 육아를 맡고 있다. 아이들 이름이 없을 때 병원에서는 차례대로 1~4번으로 불렀다. 지금은 이름이 있지만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번호를 부른단다.

네쌍둥이는 첫 생일을 앞두고 있다. 오는 5월 11일에는 태영이와 태웅이가, 6월 7일에는 태호와 태걸이가 첫 돌잔치 상을 받는다. 주변 지인과 처가에서 준비했다.

이름을 지을 때도 처가에서 도움을 줬다. 아빠 윤수일씨는 '신화창조'를 제안했고, 외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열혈남아', '춘하추동' 등을 골랐지만 모두가 외할머니 반대했다. 결국 지인의 도움을 받아 '영웅호걸'이 낙점됐다.

엄마 문씨는 인터뷰 시간 동안 "싼 거" "최저"라는 말을 자주 썼다. 경제적인 부분을 말할 때는 얼굴에 그늘이 생겼지만, 아이가 기어와 안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맞췄다.

'영웅호걸'은 하루에 800g 분유 한 통씩을 해치운다. 소비되는 기저귀 양도 만만치 않다. 한 달 생활비 50% 이상이 아이들에게 쓰인다. 가장 저렴한 걸로 쓴다지만 한 달 평균 분유 값만 60만 원이고, 기저귀는 젖지 않은 부분을 잘라 테이프로 붙여 사용해도 45만 원가량 든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 탓에 한 달 도시가스비도 30만 원이 넘기 일쑤다. 지난해 산 옷들은 벌써 입지 못할 정도로 훌쩍 커버렸고, 하루에 2~3번 세탁기를 돌릴 정도로 빨래도 많다.

"나라에서 키워준다고? 한 번 낳아 보세요"

문씨와 할머니 손씨는 "경제적인 문제 생각하면 일을 해야 하는데, 앞이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문씨는 아이들 임신한 뒤 생긴 허리 디스크로 힘들어 하고 있다.

손씨는 "아기가 아프더라도 말을 할 때 아팠으면 좋겠다"며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보면 대신 아프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모두가 앓기 때문에 칭얼거리는 아이 보느라 밤잠 설치는 일이 다반사다. 식사도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먹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거실을 휘젖고 다니는 영웅호걸
거실을 휘젖고 다니는 영웅호걸 ⓒ 정혁

네쌍둥이는 방송과 신문 등 언론에 오르내리며 '스타'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스타의 그것이 아니다. 할머니 손씨와 문씨의 말이다.

"얼굴이 알려진 뒤 보는 사람마다 '정부에서 지원금 많이 나오지 않느냐? 나라에서 다 키워주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낳아서 키워 보라'고 말했어요."
"이번 선거 보니까 출산과 육아, 교육, 의료 등을 나라에서 책임지겠다고 다들 말하는데, 말뿐이지 실천하는 사람 못 봤어요. 당선이 목적 아닌가요?"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병원 가는 일이다. 병원비도 그렇지만 이동수단도 녹록치 않다. 평일에는 교회의 봉고차를 얻어 타지만 일요일에는 이마저도 이용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크면 아이돌 가수 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농담을 건네자 손씨는 "우리 집안이 워낙 음치라 가수는 힘들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네쌍둥이의 엄마인 문은정씨의 마지막 말이 돌아오는 발걸음을 내내 무겁게 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어요. 낳긴 낳았지만...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앞이 캄캄하네요."

 첫째 태영이의 앙증맞은 두 발
첫째 태영이의 앙증맞은 두 발 ⓒ 정혁

 셋째 태걸이 몽고반점.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삼신 할머니가 빨리 나가라고 엉덩이를 찰싹 두들겨서 생긴 멍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셋째 태걸이 몽고반점.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삼신 할머니가 빨리 나가라고 엉덩이를 찰싹 두들겨서 생긴 멍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 정혁


#4쌍둥이#영웅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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