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제수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태 당선자(경북 포항남·울릉)는 새누리당을 탈당하겠다고 했다. 당초 탈당할 것이라 알려졌던 문대성 당선자(부산 사하갑)는 입장을 뒤집었다. 하지만, 이들 당선자가 당장 취해야 할 조치는 탈당이 아니라 당선자 자격 사퇴다.
유권자 아닌 박근혜에 충성하라고 국회의원 시켜줬나?문대성 당선자의 경우 논문표절이 문제가 돼 탈당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까지 작성해 놓은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결심을 뒤집었다. 국회의사당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문 당선자를 기자들이 붙잡고 고작 4분 정도 질의응답을 했을 뿐인데, 문 당선자가 국회의원 자격 미달이란 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탈당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문 당선자는 "당연하죠. 박근혜 대표께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제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표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현재 새누리당 대표가 아닐 뿐 아니라, 국회의원은 당 대표와 당에 충성하는 직분이 아니다. 뽑아준 유권자를 대표해 정부의 국정운영을 감시하고 필요한 법을 만드는 자리다. 정당은 비슷한 정책과 이념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인 것이지만, 각 의원이 소속 정당의 당론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당 지도자의 지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 당선자는 자신을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이가 국회의원이 되면 뻔하다. 국회의원 개인의 소신과 지역 유권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박 위원장의 뜻과 당론에 따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임하는 '인간 거수기'가 될 게 뻔하다.
'표절 대상 논문과 문 당선자의 논문이 오·탈자까지도 똑같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문 당선자는 "항상 정확하세요?"라고 되물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자신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는 항변인 동시에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부분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학위 논문을 쓰는 것은 '항상 하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학위 또는 학문적 명예가 걸린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정확하고 꼼꼼히 처리해야 하는 것이 논문이다.
문 당선자가 국정감사에 임한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가 틀린 내용의 자료를 제출했고, 이에 대해 문 당선자가 항의할 경우 담당 공무원이 "항상 정확하세요?"라고 되물으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그 공무원은 "업무와 개인 일을 병행하다보면 그럴 수 있는 부분 아니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다시 논문표절 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문 당선자는 논문표절이 뭔지 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 당선자는 이날 "참고문헌을 달았다면 표절이 아닌 것이냐"고 했는데, 자신이 직접 연구해서 얻은 결론이 아닌 부분에 대해선 각주와 인용을 통해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임을 밝히는 게 논문의 기본이다.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기자에게 "대학원 학기말 연구논문도 문대성처럼 쓰면 F학점"이라고 평가했다.
제수에 성폭력 행한 국회의원? 새누리당 공천에 속은 유권자들
문대성 당선자가 논문표절 의혹과 이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국회의원 자격 미달'을 보여줬다면 김형태 당선자의 경우엔 과거 행위 자체로 자격 미달이다.
김 당선자는 18일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오해를 불식시키고 법적인 문제마저 마무리한 뒤 사랑하는 당과 존경하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김 당선자는 이날 해명자료를 내면서 제수 최아무개씨가 자신과 부모님을 협박해 돈을 뜯어갔다고 주장했다. 김 당선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숨진 동생의 아내인 제수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려 한 상황에 대해 "남녀관계 끝까지는 안 갔다"고 말하는 김 당선자의 육성이 공개된 데에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는 제수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려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런 후보들에 표를 줘 당선시킨 지역구 유권자들일 것이다.
문대성·김형태 당선자 모두 새누리당의 전통적 텃밭인 지역에서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혐의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유권자들이 이들을 당선시킨 것은 새누리당의 공천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을 믿고 표를 줘 당선시켰는데 국회의원 자격 미달자로 드러난 것.
현재 새누리당은 출당을 운운하면서 '뭔가 조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당 소속이건 무소속이건 이런 당선자들이 19대 국회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시민들은 원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먼저 해야할 일은 윤리위 소집, 출당 조치 등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천을 잘못한 데 대해 유권자들에게 사과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의 당선자들이 자진 사퇴하고 보궐선거가 열릴 가능성은 적어보이지만, 그럴 경우 새누리당은 잘못된 공천에 대한 사죄 차원에서라도 해당 지역에 후보를 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