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법적인 문제마저 마무리한 뒤 사랑하는 당과 존경하는 박근혜 위원장에게로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지난 18일 제수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태 새누리당 당선자(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가 탈당을 선언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접하곤 '북향재배(北向再拜)'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사약을 받아 생을 마감할 직전에도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던 북향재배. 그러나 김형태 당선자의 탈당의 변에는 정작 있어야할 국민과 지역 유권자에 대한 사과의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오직 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만 있었을 뿐이다.
김 당선자가 이날 한 행동은 사과가 아니라 구애였고 충성 맹세였다. 죽어가면서도 절대자에게 절(拜)로서 구애를 표현해야 했던 북향재배의 현대판일 뿐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운영 방식과 박근혜 위원장이 갖는 절대적인 힘을 감안한다면 이런 행동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국민의 심판보다 절대자의 판단이 더 우선인 듯한 지금의 구조에서 절대자에게 절절한 구애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문대성 버티기 단초, 애초 박근혜가 만들어줬다
문대성 부산 사하갑 당선자도 김형태 당선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초 18일께 탈당할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돌연 탈당의사를 번복했다. 하지만 이후 새누리당은 문대성 당선자에게 탈당을 권했고, 그는 탈당 번복 이틀만인 20일, 국민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그 시각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역시 문 당선자의 탈당의 변에도 '당과 정권 재창출' 때문이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을 뿐, 국민과 유권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탈당을 번복하며 문 당선자가 내뱉은 "박근혜 위원장님도 국민대 심사를 기다리자고 하셨는데,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은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공분보다 더 크게 화를 낸 건 박근혜 위원장과 측근들이었다. 그들은 문 당선자가 박근혜 위원장의 이름을 팔아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박근혜 위원장의 이름에 누가 되니까 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애초 문대성 당선자가 버티기를 할 수 있도록 단초를 만들어 준 것은 박근혜 위원장이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지난 16일 새누리당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대학에 맡기거나 법적공방으로 가면 결론이 날 것이고 그에 따라 당규에 따라 조치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 확인이 되면 그에 따라 당이 조치할 것이니까 되풀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대학의 결정을 지켜보자는 당 내 절대 권력자의 말에,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호응하는 건 1인 지배체제가 공고한 정당에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애매한 신호를 보내놓고 여론의 추이를 관망해왔던 새누리당 보신주의였다. 아울러 문대성 당선자의 탈당 번복 후 박근혜 위원장에게 물귀신 작전을 쓰는 것이라며 출당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소집한 것 또한 논문 표절의 부도덕성을 심판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감히 박근혜 위원장을 물고 늘어지냐는 노여움의 발로였다.
탈당했으니, 상관 없다는 새누리당...그러나
박근혜 위원장의 권위주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이번만이 아니다. 대화보다는 지시, 양방향 소통보다는 일방적 전달이 더 친숙했던 정치 행태는 새누리당이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질서 위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히려 구 한나라당보다 더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일부 보도처럼 측근들에게도 발신번호 표시 제한 상태로 전화를 할 만큼 스스로 절대권력을 추구해왔던 박근혜 위원장. 그런 그가 권력자의 신호를 잘못 읽어 누를 끼친 문대성 당선자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김형태, 문대성 두 당선자의 문제에 있어서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위원장은 사과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국민과 그들을 뽑아 주었던 유권자가 돼야 한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인과관계와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채 당과 박근혜 위원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탈당한다는 그들의 변명은 사죄라기보다는 권력자에 대한 충성맹세다. 절대권력과 내쳐지는 자의 비굴함, 그 어디서도 국민에 대한 절절한 사죄는 찾아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근혜 위원장을 대권을 향한 행보를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다. 대선후보 예비등록일인 23일에는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몰표를 준 강원도를 찾아 총선공약 실천본부 출범식에 참석해 총선 승리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또 같은 날 불거진 MB 최측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과 관련해선 "법대로, 예외 없이 처리해야"라고 선을 그으면서 '탈MB'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박근혜 위원장은 대선행보를 재촉하기에 앞서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를 공천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 했어야 했다. (결국 박근혜 위원장은 25일 KBS 라디오연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아울러 탈당했으니까 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새누리당의 자세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그들에겐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될 충분한 결격사유가 있었음에도 공천해 후보로 내세운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또 이들의 손을 잡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것은 다름 아닌 박근혜 위원장이었다.
문대성 당선자의 논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교수가 표절이 200% 확실하다고 말했던 8일에도 새누리당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은 "아직 결과를 모른다, 결과가 나오면 얘기하자"며 기자들을 돌려 세웠다. 같은 날 박근혜 위원장은 논문 표절은 침묵한 채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을 두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랄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야당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김형태·문대성 당선자가 단죄를 받아야 한다면, 그들을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워 당선하게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물론 두 사람의 탈당을 유도하고 내쳐서 박근혜 위원장의 정치적 부담을 덜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국회에 남아 있는 한 새누리당은 성범죄자, 논문 표절자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누리당이 할 일은 이들을 당 밖으로 내치는 게 아니라 국회에서 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것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새누리당의 가치 기준?
19대 총선에 나온 대다수 새누리당 후보들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박근혜라는 이름을 팔았다.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적임자임을 자처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김형태·문대성 후보도 비전을 제시하고 검증을 받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기보다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측면이 강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박근혜 위원장의 힘을 활용한 전술이었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그 변명 자체가 이번 총선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대선 참모 꾸리기를 자인하는 꼴이니까 말이다.
김형태·문대성 당선자가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새누리당에서는 민주적인 운영원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밖에서의 검증 요구마저 음해나 공격으로 받아 들였다. 두 당선자가 시한폭탄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론이었다. 결국 폭탄은 터졌고 새누리당의 대응은 빨랐다. 그러나 올바른 수습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 사람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운영되는 새누리당의 모습에서는 쇄신의 의지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21세기 선진 일류국가를 창조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당헌·당규보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새누리당의 가치 기준이 된 듯이다. 내쳐진 두 당선자의 박향재배(朴向再拜)는 새누리당의 전근대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