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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 싸이더스 F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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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언니와 나는 친할머니댁으로 보내졌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심하게 학대하셨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께선 집을 나가셨다.

어머니가 그렇게 집을 나간 뒤론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엄마랑 연락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을 하셨고, 자식인 언니와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매질을 하셨다. 갈수록 심해지는 아버지의 무관심과 학대에 상처를 많이 받은 언니와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두 분 다 돌아가신 것이다. 그래서 우린 사랑을 못 받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주문처럼 몇 번이고 되씹으며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소풍 때마다 사 먹은 컵라면... "엄마가 너희 보고싶어 한대"

어릴적 운동회나 소풍 때면 도시락이 없어 컵라면을 사 먹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엄마 안 왔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그렇게 원망도 기억도 사라져 갈 때쯤인 내 나이 열아홉살 때, 생산직으로 취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숙모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난처한 목소리로 '엄마 아들'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언니와 날 너무 보고싶어 한다고…. 숙모는 엄마의 연락처라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뭔가가 심하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그동안 내 원망들은… 엄마의 아들? 내가 어떻게 지냈는데… 왜 이제 와서?'

잊었다고, 엄마라는 사람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쉼없이 나오고 울음이 거칠게 터져나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나는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던 게 아니야. 언니와 나를 잊지 않길 바랬던 것 뿐이야'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놨다가… 겨우 다이얼을 돌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성기 중인 남자아이 목소리에 놀랐지만 뛰는 가슴을 억누르고 억지로 입을 뗐다.

"강○○씨 댁 맞습니까?"
"저희 엄만데요…"


그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숙모에게 들어 알고 있었는데도 실망감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서 수화기를 내려놨다. '엄마는 예전에 우리 엄마가 아니야…' 어떻게 표현이 안 될 정도로 허무함으로 밀려왔다.

"사실은 너희 엄마 눈이 안 보인다... 이제 그만 용서해"

며칠 뒤 만난 숙모는 내게 물었다. 연락해 보았냐고… 그리곤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너희 엄마 눈이 안 보이셔… 우울증 때문에 그 젊은 나이에 치매도 있다더라. 너희 아빠랑 이혼하고 몇 번이나 너희 보러 찾아왔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잘 지내는 애들 앞에 왜 왔냐며 쫓아내는 거 내가 몇 번이나 봤어. 울면서 돌아서는 너희 엄마 얼굴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왜 눈이 멀었는지 아니? 너희 아빠가 너희 엄마 구박을 그렇게 하더니 결국엔 손찌검까지 하더라. 거기에 맞아서 엄마가 눈이 먼 거야… 너희에겐 티를 안 낸 것뿐이야. 자기 손으로 키울 수가 없었겠지… 이제 엄마 용서해. 그리고 엄마가 치매가 있으셔서 어릴때 너희만 기억할 거야."

숙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서럽게 울었다. 뛰는 가슴을 몇 번이나 진정시키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의 목소리….

"여보세요?"
"엄마…미안해요."
"누구세요?"
"저예요… 엄마딸이요."
"내 딸은 아직 어린데… 잘못 전화했나 보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말 할 수 없었다. '저예요… 엄마딸이 이렇게 컸다구요. 제가 몇살인지 아세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세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제가 잘못 전화를 걸었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놨다.

"엄마,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약한 여자였네요… 엄마의 손길, 냄새, 목소리… 다시 보고 다시 느끼고 싶어요. 언니와 날 기억하시는 것 맞죠? 엄마 기억은 눈이 멀었을 때 이미 사라지셨던 건가요? 그동안 얼마나 외로우셨겠어요… 다시 보고싶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를…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엄마…… 제가 용기낼 수 있을까요?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어머니와의 통화 이후 휴가를 내서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사를 가신 후였습니다. 이후 바뀐 연락처와 주소를 알 수 없어 영영 어머니를 뵐 수 없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응모글입니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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