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포카라는 네팔 제3의 도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락나가르'라는 네팔 제2의 도시를 알지 못한다. 비락나가르는 인도 접경의 교역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포카라는 해발 800미터가 넘는다. 그곳에서 20년을 살면서 과일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람과 무네쉬어는 우기가 되면 고향에 가서 농삿일을 해야 한다.

람과 무네쉬어 말들이 짐을 지고 가는 길을 람과 타루가 비켜주고 있다.
람과 무네쉬어말들이 짐을 지고 가는 길을 람과 타루가 비켜주고 있다. ⓒ 김형효

람이 걷고 있다. 람이 걷고 있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로만틱해 보이는 산길이나 그에게는 생존을 여는 길이다.
람이 걷고 있다.람이 걷고 있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로만틱해 보이는 산길이나 그에게는 생존을 여는 길이다. ⓒ 김형효

그들은 해발 2500미터에서 800미터 사이 험하고 먼 길을 슬리퍼를 신고 오가며 과일 장사를 한다. 그들이 한 달 동안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리 대단한 돈이 아니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네팔에서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그래도 생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고향 농토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먹고 사는 데 그만그만하다고 했다. 높은 산을 넘고 넘어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에 총10,000루피 정도다.

그 돈으로 포카라에 자신들이 얻어놓은 가게에 세를 내고 숙소에 세를 내고 나면 5000루피 정도 남는다고 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5000루피 정도 되는 돈으로 20년을 이어왔다며 웃는다. 그 웃음 속에도 애잔함보다 맑고 밝은 티없는 웃음이 넘친다. 그 작은 돈이 자식들의 미래를 놓는 징검다리가 된다며 여유롭게 말하는 그들을 대하며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욕심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들이란 생각을 한다.

나는 네팔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성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너무나 쉽게 성자를 떠올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네팔 사람들 이면에서 분명 그런 모습을 본다. 언제쯤 나도 그들처럼 맑고 티없이 밝은 웃음을 가질 수 있을까? 람과 무네쉬어도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그늘은 없었다. 오히려 자긍심과 활기가 넘쳤다.

슬리퍼를 신은 트레커? 슬리퍼를 신고 달리듯 걷는 그들이 불안불안하다. 그들의 말로는 땀냄새 때문에 슬리퍼를 신는다고 한다.
슬리퍼를 신은 트레커?슬리퍼를 신고 달리듯 걷는 그들이 불안불안하다. 그들의 말로는 땀냄새 때문에 슬리퍼를 신는다고 한다. ⓒ 김형효

람은 8남매의 아버지, 무네쉬어는 4남매의 아버지다. 람의 두 자녀는 이미 결혼을 하여 손자 둘과 소녀 둘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하며 람의 입가에는 잔잔한 웃음이 비쳐졌다. 아버지의 마음, 할아버지의 사랑이 깃든 웃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발 2100미터 데우랄리에서 담푸스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 멀리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네팔의 하늘은 정직하다. 눈에 보이는 먹구름은 여지없이 잔비라도 내려준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헉헉거렸다. 담푸스에 도착했을 때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담푸스에서 페디까지 두 시간을 걸어야 한다.

잠시 후 장대비가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페디까지 장대비를 맞으며 걸었다. 가끔은 잘 정돈된 돌계단과 돌담으로 둘러쌓인 마을을 걷기도 하고 흙탕물이 넘치는 길을 걷기도 했다. 페디에 도착한 후 도로가에 찌아 가게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찌아를 마신 후 포카라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두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미 10시간을 걸은 상태지만 두 시간 정도 더 걸으면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함께 걷기로 했다. 그러나 그 두 시간은 네 시간이 걸리는 또 다른 장정이었다.

빗속을 걷는 과일장수 장대비를 맞으며 길을 가는 과일장수 람과 무네쉬어
빗속을 걷는 과일장수장대비를 맞으며 길을 가는 과일장수 람과 무네쉬어 ⓒ 김형효

장대비 속을 걸어온 젖은 등산화 두 시간을 넘게 빗속을 걷고 난 후 고어텍스도 무의미해진 나의 등산화와 등산복이다.
장대비 속을 걸어온 젖은 등산화두 시간을 넘게 빗속을 걷고 난 후 고어텍스도 무의미해진 나의 등산화와 등산복이다. ⓒ 김형효

페디까지 두 시간의 장대비를 맞고 걸을 때 내가 본 그들은 여지없는 신화 속의 성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묵묵히, 고개를 수그린 채 길고 긴 여정을 슬리퍼를 신은 채 걷는 그들의 모습에는 그 어떤 근심도 비쳐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걷는 일뿐 그 무엇을 위한다거나 그 어떤 세속적인 것들과의 연계망도 없다는 것처럼 걷기에만 열중했다. 그런 그들이 가끔씩 나의 느린 걸음을 확인해 주는 눈빛은 대단한 시혜로 느껴졌다.

물론 그 길에서 나도 그들처럼 잠시 동안이지만, 모든 근심의 찌꺼기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들과 장대비를 맞으며 함께 걸으며 그때 본 막대가 그들의 나침반 같았다. 그들이 맨 막대와 광주리, 그들이 손에 쥐고 땅을 짚고 가는 막대는 달랐다. 어쩌면 그 막대는 그들을 지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막대를 짚고 걸음을 옮겨 디딜 때 모습은 흡사 캥거루가 땅을 짚고 튀어 오르는 느낌과도 같았다. 축지법을 쓰는 사람처럼 서늘하게 온화한 풍모로 걸음을 느리게 옮겨 딛는 듯 보였지만 조금 한 눈을 팔고 있으면 금세 그들과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그렇게 걷고 걸어 포카라에는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두 사람의 성자를 만난 기쁨으로 대신한다. 언젠가 다시 담푸스를 찾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포카라 근교에서 나는 그들과 멀어졌다. 그리고 작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어쩌면 만나며 서로 주고받았던 티없이 맑고 밝은 웃음은 모든 인사를 대신한 일은 아닐까? 그들의 안녕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람 타루와 무네쉬어 타루#네팔 산중 과일 장수#슬리퍼를 신은 트레커?#포카라, 담푸스, 데우랄리#김형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