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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딸 하영이가 그린 그림, '아빠가 쓰고 딸이 그리고'
 중2 딸 하영이가 그린 그림, '아빠가 쓰고 딸이 그리고'
ⓒ 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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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넘어갈 즈음, 겨울이었다. '엄마의 부엌'은 찬바람 쌩쌩 거리는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장작불은 아궁이 안에서 활활 거렸고, 난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미 비슷한 이야기를 몇 번씩 들었는데도 엄마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했다. 엄마는 내용을 살짝 바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래서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엄마는 큰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 주머니는 해님 달님, 연오랑과 세오녀, 콩쥐 팥쥐 같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주머니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서 썼다. 그러다가 바닥이 보일랑 말랑하면 그 때부터는 공장을 가동 시켰다. 그 공장은 원재료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무진장 만들어냈다.

그날 엄마의 이야기 공장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아니면 내 호기심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큰 도화지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 도화지에 글자라는 게 쓰여 있었다.

엄마는 도화지를 부엌문에 붙이고는 부지깽이를 들어 한자씩 가리키며 내게 따라 읽으라고 했다. 잠시 후 내가 '기 . 영 . 아 . 놀 . 자'하고 오물거리자 엄마는 살강에 있는 엿단지를 내려 부뚜막에 올려놓고는 엿을 한 숟가락 떠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난 문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문자를 알게 된 후 난 더 이상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보채지 않았다.

문자의 세계는 경이로웠다. 갖가지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 주머니 속에 있던 재미있는 이야기, 가슴을 콩닥 거리게 하는 모험의 세계 같은 것들이 무진장 쌓여 있었다.

난 엄마의 부엌에서 그 이후에도 많은 것을 얻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툭 하면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속이 상했는지 "너 그렇게 머리가 나쁘냐?"며 어린 아들 기를 제대로 꺾어 놓았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눈을 한번 힐끗 흘겼다. 다음 날 엄마의 부엌에 구구단이 붙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렇게도 입에 붙지 않던 구구단이 술술 외워지는 게 아닌가. 난 단 며칠 만에 구구단을 줄줄 외웠고 더 이상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책을 모두 찢고 가출한 적이 있다. '네 뒷바라지 할 힘없으니 대학은 절대 가지 말라'는 서운한 얘기를 아버지에게 들은 직후였다. 난 일 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다짜고짜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아버지는 부아가 잔뜩 치민 목소리로 "자알 생각 했다"고 한마디 던지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엄마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라고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다가 주섬주섬 앞치마와 머리 수건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엄마의 부엌은 고즈넉했다. 장작불은 활활 거렸고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는 장작 타는 소리에 묻혀 희미했다. 엄마의 부엌은 늘 꽉 찬 느낌이었는데, 그 때는 휑한 기운이 감돌았다.

뭘까! 뭐지? 무엇이 빠진 것이지! 부뚜막도 살강도 살강 위 엿단지도 찬장도 그대로인데. 아! 착한 아들이 없었다. 엄마의 부엌을 환하게 해 주던 착한 아들이 없었다. 그 때 엄마의 부엌에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진 못된 아들만 있었다.

엄마의 부엌이 나를 차분하게 해 줬다.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도 펄펄 끓던 반항심도 엄마의 부엌에서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다음 날 아침 엄마의 부엌에서는 다시 장작불이 활활 거렸고 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로 향했다. 그 이후 난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소리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엄마의 부엌에서 옛날이야기를 보채던 일곱 살 꼬마는 이제 여덟 살 아들을 둔 아빠가 됐다. 아빠는 엄마의 부엌에서 듣던 옛날이야기를 일곱 살 아들에게 해 주고 있다. 아들은 아빠가 해 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꿈나라로 향한다.

아버지는 여전하다. 지금도 아들을 서운하게 한다. 까닭 없이 화를 내서 서운하게 하고 까닭 없이 넘어져서 서운하게 한다. 치매다.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아름답게 변해가는 단풍잎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정리하길 바랐건만…….

엄마는 갈대가 됐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홀로 지키던 어느 날, 갑자기 갈대가 돼 버렸다.

"얘, 이젠 진짜 아버지 보내 드려야겠다. 밤에 잠도 안 자고, 갑자기 이상한 소리나 해 대고… 이젠 정말 요양원에 보내 드려야겠다."
"응. 엄마 알았어! 수속 밟을게, 이젠 다른 말 하면 안 돼, 알았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이런 전화를 3년째 받고 있다. 며칠 후면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얘, 아직 수속 밟지 않았지?"
"응, 엄마."
"다행이다. 요즘은 밥도 잘 자시고 잠도 잘 주무신다, 그러니……."
"응. 엄마 알았어, 좀 더 지켜보자는 말이지?"
"그래, 내 맘을 내가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까닭 없이 소리 지를 때는 봬가 나서 요양원으로 보내고 싶다가도 하룻밤 지나면 다시 맘이 바뀌고… 그야말로 내 맘이 갈대다 갈대."

우리 집, 그래 우리 집이 가장 많이 변했다. 부뚜막 위에 살강이 있고 그 위에 엿단지가 놓여 있던 엄마의 부엌은 이젠 없다. 이십 년 전에,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이십 년간 살던 초가집이 헐리면서 사라졌다. 가마솥, 부뚜막, 살강, 찬장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가스레인지, 싱크대, 식탁이 놓여 있다.

엄마의 부엌은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엄마의 부엌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런 게 추억이란 것일까!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허기를 채워 줄 영양소와 같은 것이다. 난 요즘도 지치고 힘들 때면 엄마의 부엌을 기웃거린다. 엄마의 부엌에는 지금도 장작불이 활활 거리고 살강 위에는 엿단지가 다소곳이 놓여 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어머니' 공모글입니다.



태그:#아빠가 쓰고 딸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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