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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빅오쇼
화려한 빅오쇼 ⓒ 황주찬

큰애 : (힘차게 깡통을 발로 찹니다) 통! 통! 통!

아빠 : 차지 마!
큰애 : (또 다시 깡통을 찹니다) 통! 통! 통 통!
아빠 : (단호하게) 깡통, 발로 차지 마!
큰애 : 쓰레기통까지 가져가려고요.
아빠 : ...(할 말이 없습니다)

지난 28일 밤입니다. 여수 엑스포(박람회)의 자랑거리인 '빅오 쇼'가 끝났습니다. 빅오 쇼는 레이저, 화염, 안개 등의 효과를 내는 멀티워터스크린 '디오'와 초대형 해상분수 '라군'이 만들어내는 여수 엑스포 최고의 구경거리입니다.

쇼가 끝나자 구름 관중이 무대를 벗어납니다. 텅빈 객석에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와 깡통, 그리고 바닥에 깔고 앉은 신문지며 종이 상자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대를 벗어나는데 큰애가 깡통을 찹니다. 웅장한 무대에 소리가 부딪쳐 널리 울려 퍼집니다. 창피합니다. 큰애에게 깡통을 차지 말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삐죽 튀어나온 입을 하고 큰애가 대답을 합니다.

"쓰레기통에까지 차고 가려고요."

할 말이 없습니다. 일단 혼쭐을 낸 다음 조용히 말했습니다. "쓰레기 치우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대로 두면 된다"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답답한 마음은 씻을 길이 없네요.

여수 엑스포 쓰레기의 절반, 빅오쇼에서 나오는 이유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기는 했는데... 들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기는 했는데... 들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 황주찬

 엉덩이 밑에서 고생했던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공연 끝나니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엉덩이 밑에서 고생했던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공연 끝나니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 황주찬

황금 연휴 이틀째인 27일, 여수 엑스포 입장객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조직위에 따르면, 27일 엑스포 관람객은 11만1131명으로 12일 개막 후 가장 많은 입장객수랍니다. 연휴기간인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18만 명이 다녀갔네요.

27일 현재까지 누적관람객은 74만8129명으로 개막 3주째인 이번 주 중으로 100만 명을 넘길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밤중에 열리는 빅오 쇼를 보겠지요? 하지만 이들이 놓고 간 쓰레기양도 만만치 않습니다.

엑스포장에서 쓰레기 처리를 맡고 있는 황호현 과장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여수세계박람회에서 하루 쏟아지는 쓰레기양은 약 25톤 정도다. 당초 40톤으로 잡았는데 예상보다 적은 양이다. 그런데 빅오 쇼가 열리는 무대 인근에서 나오는 양이 10톤이다. 전체 쓰레기 중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양이 그곳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왜 많은 양의 쓰레기가 유독 빅오 쇼 주변에서 나올까요? 빅오 사업단을 맡고 있는 남재헌 단장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관람객들이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면서 "자체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빅오 쇼는 여수세계박람회에서 단연 인기상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 열리는 화려한 공연을 보려 모여듭니다. 심지어 오후 4시부터 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빅오 쇼에는 1만3000석 규모의 좌석이 있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미리 자리를 잡습니다. 아름다운 쇼를 보기 위해서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요. 이렇게 긴 시간 앉아 있어야 하니 먹을거리가 고민입니다. 저녁식사도 해야 하고 입이 궁금한지라 이것저것 집어넣으며 지겨움을 달래야 하죠. 빅오 쇼 무대 옆에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음식을 산 관람객들은 무대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객석 의자 앞과 뒤에는 패스트푸드를 담은 봉지들이 늘어납니다. 또, 미리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은 맨 바닥에 엉덩이를 대야 합니다. 신문지며 안내문, 그리고 박스가 엉덩이 밑에 깔립니다.

빅오 쇼의 줄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안타깝게도 멋진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고마웠던(?) 물건이 귀찮은 존재가 됩니다.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일이 귀찮아집니다. 그래서 쓰레기양이 많이 나오나 봅니다. 물론 먼 곳에서 구경 온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오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나게 구경한 후, 자리를 떠날 때는 쓰레기는 되가져 가야 하지 않을까요?

힘든 산행 중에도 쓰레기는 버리지 않으려고 무거운 배낭에 쓰레기를 집어넣는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봐왔고 누구나 그렇게 합니다. 박람회장에서는 왜 어려운 걸까요? 아쉬운 점은 빅오 쇼 안내 방송에서도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되가져 가라고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바다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악한 힘. 바다를 오염시키는 기름 등을 모티브로 비정형화된 악마적 이미지입니다.
바다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악한 힘. 바다를 오염시키는 기름 등을 모티브로 비정형화된 악마적 이미지입니다. ⓒ 황주찬

이쯤해서 빅오 쇼 줄거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푸른 바다 위로 다도해가 펼쳐진 여수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놀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죠.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신비한 목소리입니다.

하나는 목소리를 따라 바다의 영혼들이 사는 바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다의 영혼들은 하나에게 인간과 바다의 오랜 사랑과 아픔을 들려줍니다. 그때 파괴의 힘이 나타나 암울한 미래의 바다를 보여줍니다. 오염되고 훼손된, 상처투성이의 바다를 말이죠.

슬퍼하는 하나에게 바다의 영혼은 또 다른 미래를 보여줍니다. 보존과 조화로 아름답게 살아 숨 쉬는 바다! 이 모든 미래는 바로 우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공연 마지막에는 '과연,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까요?'라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여수세계박람회 공식 주제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입니다. 이 구호는 수없이 들어 아예 외웠습니다. 여수세계박람회를 찾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빅오 쇼는 여수 앞바다에서 열립니다. 해상무대를 만들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공연을 봅니다. 감동적인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쓰레기를 들고 오는 게 왜 힘들까요?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나 버리는 분들이나 조금씩 신경 쓰면 박람회 주제에도 딱 들어맞는 행동일 텐데요. 며칠 후에도 아들과 박람회장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때도 아들이 깡통이며 쓰레기를 차고 다니면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쓰레기를 줍습니다. 줍는 사람 따로 버리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습니다. 줍는 사람 따로 버리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 황주찬


#여수세계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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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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