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교원대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진혁 피디
한국교원대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진혁 피디 ⓒ 차현아

"김연아를 만나본 적이 없는데, 김연아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BS의 <지식채널e>를 만든 김진혁 피디는 지난 30일 늦은 저녁, 한국교원대학교 강연회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를 알게 된 건, 언론을 통해서다. 그럼, 우리가 이야기를 전해 듣는 언론은, 전적으로 김연아에 대한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일까?

 

"언론은 고의적으로, 혹은 악의적으로 자기의 이해관계에 의해 행동합니다."

 

이해관계에 의해 언론들이 김연아가 실재한다고 말하니까 우리는 김연아의 존재에 대해 믿는 것뿐이라고 김진혁 피디는 말한다.

 

"물론 김연아가 없는 사람일 리는 없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김연아를 인지하는 상황에서 존재 자체를 속이는 건 힘드니까요. 하지만 김연아를 세상에 예쁘게 보이게 만든 것은 언론이고, 다른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과 다르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만든 것 또한 언론이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지배한다. 이렇게 말하는 김진혁 피디도 <지식채널e>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만든 사람이다. 2005년 가을 처음 그가 선보였던 <지식채널e>는 2012년 현재 E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지식채널e>는 역설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프레임이다. 즉,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는 여러 프레임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인 셈이다.

 

"<지식채널e> 뜬 이유, 시대정신 바뀐 덕도 있어"

 

<지식채널e>는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사실 <지식채널e>는 처음에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SB(Station Break,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광고가 아닌 형태로 짧게 들어가는 것으로, 모금 운동 캠페인 영상 등이 이에 속한다)이었습니다. EBS라는 교육 채널 이미지도 살리면서도, 채널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게 재미도 살릴 수 있는 영상을 고안했죠."

 

김진혁 피디는 어떻게 하면 지식을 참신한 형태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지식의 가치를 강조하면 공익광고가 돼버릴 것이고, 그렇다고 가치를 아예 빼버리면 지식이 아무 의미도 없어지니까요. 고민이 많았죠."

 

<지식채널e>가 첫 번째 방송에서 다뤘던 주제는 '1초'다. EBS 내의 다른 프로그램 자료로 소장되었던 고속카메라로 촬영된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 빗방울이 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장면 등을 가져다 편집을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고속카메라 촬영이 흔치 않았어요. 그래서 당시만 해도 슬로우 모션 영상이 굉장히 눈길을 끌었죠. 1초를 주제로 했으니까, 슬로우 모션으로 찍힌 1초의 순간들을 다 모아놓으니까 재밌긴 했어요. 근데,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라는 의문이 나 스스로도 들더라고요. 신기하지만 의미가 있는 영상이 아니었어요."

 

확고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의미'는 끌어내야 했다.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와 함께 '1초'와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를 뒤졌다. 그 때 김진혁 피디의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이 있었다.

 

'우주의 시간 150억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간 시간은 1초'.

 

"언뜻 보면 이 문장은 굉장히 몰가치해 보이죠. 근데 다시 읽어보세요. 뭔가 메시지가 있어요. '시간을 아껴쓰자'처럼 공익광고 메시지도 아니고,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다를 수 있죠."

 

<지식채널e>의 출발은 이 문장에서 비롯됐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지식채널e>가 빵 떴죠."

 

<지식채널e>가 세상에 선을 보인 지 한 달이 지나고 난 뒤 일이었다.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에 대해 김진혁 피디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정신이 바뀐 덕도 있었어요. 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절대적인 방향으로만 나가지 않게 된 거죠. 전체적인 하나의 방향보다는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해지고, 이게 생각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도 점점 확대된 거구요. 주입식 지식 전달이 아닌,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지식채널이 먹혀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된 셈이죠."

 

'몰랐다는 것을 몰랐다', 지식으로부터 소외된 것들

 

<지식채널e>에서 다룬 내용들은 주로 '소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마 <지식채널e>를 보면, 여러분들이 언뜻 알고는 있었지만 진실은 몰랐던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혹은 아예 모르던 지식일 수도 있고, 알고 있던 것과 정반대의 사실을 담고 있는 지식도 있습니다. 일종의 소외된 지식들이죠."

 

소외된 지식이란 무엇일까? 김진혁 피디는 '몰랐다'와 '몰랐다는 것을 몰랐다'의 차이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를 알아요?'라는 질문에 대해 '몰랐다'와 '몰랐다는 것을 몰랐다'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첫 번째 대답은 '스페인어의 존재 자체는 알지만 스페인어를 쓸 줄 몰랐다'라는 의미로 설명할 수 있어요. 두 번째 대답은 '스페인어 존재 자체도 몰랐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대답과 같은 경우가 '지식으로부터 소외'된 현상을 보여준다고 김진혁 피디는 말한다. 김진혁 피디는 '몰랐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느낀 경험을 설명했다.

 

"'미래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좋은 일 하시는 분을 섭외해서 촬영한 적이 있어요.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 노숙자 분들을 도와주는 주인공과 이런저런 영상을 찍던 차에 그 분이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들어가시더라구요. 저는 그 안이 그냥 고교 야구경기가 있는 운동장인줄 알았죠. 근데 그 안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대형버스들이 한 절반 정도 주차되어 있고, 걸인같은 사람들이 잔뜩 있더라구요. 주인공이 그 사람들 쪽으로 가더니,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너 또 자살하려하면 안 돼'라고요."

 

김진혁 피디는 나중에 그 주인공으로부터 그곳이 '풍물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 풍물시장이었지, 시장 같은 모습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고 물건은 장맛비에 젖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청계천 변에서 한 달에 약 100만 원을 벌며 근근히 삶을 이어가던 상인들이었다. 하루아침에 청계천변 자신들의 상점이 강제로 철거되고 난 후 노점상으로 전락해 하루에 천원 버는 것을 위안 삼는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경찰과 직원이 강제철거에 동원됐고, 철거하던 날 시내에서 투석전이 벌어졌는데도 언론은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진혁 피디는 그날 찍은 영상을 이용하여 <지식채널e>에서 '잊혀진 대한민국 1부 철거민편'을 만들었다.

 

"언론, 의제 설정하며 권력 가져... 우리의 역할은 '프레임 인지'"

 

김진혁 피디는 청량리 철거민의 사례를 대표적으로 '누락된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언론은 사회 의제를 설정하면서 권력을 갖죠. 청량리 철거민은 의제에서 제외됐어요.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해 우리가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언론은 의제를 고의든 악의든, 혹은 실수든 언어로서 프레임을 만들고 우리는 그에 따라가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그냥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프레임에 놀아나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런 프레임의 작동 방식을 '인지'하고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 머릿속에 객관적으로 들어오는 몰가치적 사실은 없음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 김진혁 피디가 말하는 언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이다.

 

<지식채널e>는 시청자들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거창하게 진실을 알려서 세상을 바꾸려기보단,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변화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한다.

 

"'생각의 근육'을 기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에요. <지식채널e>는 여러분들의 근육을 뽑아주는 트레이너입니다. 아주 섹시하게 말이죠."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진혁 피디#지식채널E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