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스님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탁발승처럼 5년 동안 전국을 걸으며 빌어먹고 빌어 잘 때도 그랬지만, 불교 종단의 심장부로 들어가 총무원장보다 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렇다. 5월 31일 저녁, 도법스님은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구깃구깃한 명주천(일명 '도법스카프')을 목에 두른 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강연장을 찾았다.
조계종(총무원장 자승스님)은 2년 전 종단 안팎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중재·자문 기구로 '화쟁위원회'를 두었고, 작년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기 위해 총무원장 직속으로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두 기구의 위원장과 본부장을 도법스님이 맡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 문제도 풀고, 불교 내부 문제도 풀어야 하는 임무다.
사실 도법스님은 법란이 일어났을 때마다 호출됐다. 1994년 개혁불사 때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1998년 종단 분규 때는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 남원 실상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지 소방수역이 아니다. 문제가 반복되는 구조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겠다는 작심이다.
도법스님이 '제도권'(조계종단)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의 주변에선 다 반대했다. '왜 자승한테 들어 가냐', 심지어 '도법이 노망났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남들이 뭐라하든, 어쩌면 일관성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욕먹을 각오로, 진보든 보수든 고집하지 말고, "매순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답을 구한다"는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종단 권력)을 활용한다는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도법스님은 그동안 화쟁위원장으로서 봉은사 사태, 4대강 문제, 한진중공업, 쌍용차 사태 등에 개입해 대립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 접점을 찾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조계종 스님들의 '도박 동영상' 파문이 터지자 결사본부장으로서 그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불교계 원로, 수좌, 종단 집행부 등 각 집단의 목소리를 듣고, 또한 재가불자들의 비판도 경청하느라 분주하다.
강연 서두에 '요새 고단하시겠다'고 가볍게 안부를 여쭸더니 돌아온 답은 길었다.
"인생은 원래 고단하고 아파요. 부처도 아프고 고단했어요. 그렇다고 부처는 불안해하지 않았지요. 그게 우리와 다른 점인데 아픔이 없으면 인생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게 진립니다. 그러니 애써 살아야 한다라고 받아들이세요. 그럼 한결 가벼워집니다. 저는 농반진반으로 그래요. 난 자포자기한 인생이다.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까? 씨앗이 썩지 않고 새로운 싹이 납니까? 한 살을 버리지 않고 두 살이 됩니까? 떨어지고 썩고 버리는 아픔이 있어야 생명이 존재합니다. 자꾸 편하고 쉬운 거 얘기하는데 가장 편한게 뭡니까? 눕는 거죠? 계속 누워 있어 보세요. 편안하시겠어요? 쉽고 편안한 인생은 없어요. 다 망상이예요.""굳이 당신이 누구냐 물으면 난 회색분자, 갈짓자 행보 하는 사람"
'도법스님에게 답을 구하다'. 사전에 스님은 강연 주제를 특정하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마음대로 정하란다. 이래저래 수상한 시절, '도법식 갈등 해법'을 귀동냥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그동안 저를 개혁적인 사람이다, 진보적인 사람이다, 사회참여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런 관점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요. 한 사람으로서, 한 출가수행자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런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아 이것이다' 싶은 것을 실천해왔습니다. 굳이 당신이 누구냐 물으면 나는 회색분자이고, 갈짓자 행보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요."이날 강연에서 스님이 가장 반복적으로 언급한 단어는 '실제'였다. 사실이 아닌 이론, 관념, 환상이 우리 삶을 고단하고 칙칙하고 무겁고 힘들게 만든다는 요지다.
"자, 실제를 확인해 봅시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생명이죠. 연인 끼리 입맞춤을 하는데 입이 하나여서 부족하던가요? 예쁜 아들딸을 보는데 눈이 두 개로 부족하던가요? 돈돈돈 해쌌는데 누가 돈을 줄 테니 당신 귀를 달라, 서울대서울대 해쌌는데 누가 당신 자식이 서울대를 들어가는 순간 죽는다 하면 바꾸겠습니까? 아니잖아요. 생명이라는 가치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천금도 권력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르죠. 여기서부터 우리가 길을 잃고 있는 거예요."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가족 관계의 '실제'는 어떨까?
"자식을 낳은 건 부모지요. 그럼 부모를 낳은 건 누굽니까?(청중 답변 "부모의 부모요") 아니, 자식이지요. 부모는 자식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고 억울해 하는데, 착각입니다. 자기 좋아서 낳아놓고선. 아들 갖고 싶었는데 아들 낳았다, 딸 낳고 싶었는데 딸 낳았다 그러면서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자식에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가르치고 하지 않았다면 부모의 인생이 얼마나 심심했겠어요? 이 세상에 희생은 없어요. 다 자기 좋아서 하는 겁니다. 웬수같은 자식이라고 하는데 자식이 죽어버리면 좋겠어요? 아니잖아요. 아내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너무 귀하고 고마운 존재죠. 우리는 죽으나 사나 더불어 살아야 돼요. 생명은 온통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죽기 살기로 다투고 싸워서 이기려고 하죠. 여러분, 더불어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해본 적 있어요?""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 우리를 속게 만든 거죠"한 시간 법문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반박이 이어졌다. 그런 이치를 아는 스님들이 왜 돈과 권력을 놓고 싸우는가 말이다.
"권력과 불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관념이죠. 현실적으로는 존재합니다. 어느 집단이든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돈이 필요하고 인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돈과 권력이 존재합니다. 조계종단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돈과 권력을 잘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종단이 그걸 안 한거죠. 아이들에게 칼을 쥐어준 꼴이 됐죠. 위험하지요."도법스님은 불교에 대한 대중의 상(像)을 지적하며 특히 "성철스님, 법정스님이 만들어낸 '무소유' 환상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다"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처가 살았을 당시 불교는 굉장히 선진적이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일종의 인권선언이거든요. '나의 종자는 양반이고 너의 종자는 상놈이야'라던 시절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말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종교가 더 세속화되어 있어요. 사회에선 양성이 평등하지만 불교에선 비구와 비구니승이 평등한가요? 사회에선 언론자유가 보장되지만 교회에서 목사를 신도가 비판할 수 있나요? 이게 실제입니다.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 우리를 속게 만든 거죠. 무소유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꽃은 향기로 비우고 향기로 충만하다. 나비는 춤으로 비우고 춤으로 충만하다'는 말이 있어요. 꽃이 향기를, 나비가 날갯짓을 독점하지 않고 나눈다는 뜻입니다. 비우고 나누는 게 무소유죠."차제에 도법스님은 이번 사태로 빚어진 불교계 고질적인 돈과 권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고 한다.
"조계종단이라는 총무원장이라는 권력이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터지면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공격하고 방어라는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늘 그래왔지요. 이번에도 그렇게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결사본부가 권력 싸움이 아니라 쇄신하는 방향으로 기조와 중심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가령 돈 문제의 경우, 스님들을 돈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자, 그리고 이걸 제도화하자는 거죠. 그걸 이번에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도법스님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총무원장의 거취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그간의 수십 년 종단 관행에 비춰보자면, 총무원장 사퇴보다 돈 문제에 손을 대는 건 혁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스님들은 수행과 교화에 집중하고, 재정의 운영과 관리는 재가불자(일반신도)들이 하는 구조를 만들어 한국불교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도법스님의 생각이다. 그래서 "여차하면 데모라고 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최대 관심은 쌍용차 사태... 죽음의 행렬 멈추게 해야지"
끝으로 이런 질문도 있었다. "현정부가 저지른 안하무인격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법스님의 답이다. "분노해서 좋으면 분노하십시오. 그런데 분노하는 순간 인생이 피폐해집니다. 왜 이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분노하지 말고 싸우세요. 증오하지 말고 싸우세요."
도법스님은 두 시간 강연이 끝나고 잠시 기자와 차담을 나누면서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다.
"실은 내 최대 관심은 쌍용차 사태야. 벌써 22명이나 죽었잖아.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야지. 그동안 노조가 강력한 투쟁을 했잖아. 그런데도 투쟁력이 약해지고 사회적 관심에서도 멀어졌으면 다른 해법이 나와야 하는데 또 강력히 투쟁을 해서 해법을 찾겠다는 게 말이 돼? 진영 논리를 넘어서 국민의 관점에서 풀어야 되는데…, 그래서 후속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계종에 불이 나버려서…."아쉬움을 뒤로하고 도법스님은 실상사로 내려가는 자정 12시, 백무동행 심야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