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이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부정경선으로 시작됐던 파동이 이번에는 애국가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주주의 원칙 문제에서 종북 논란으로 급기야 애국가 논쟁까지 문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아무튼 이번에 나는 이석기 의원 덕분에 애국가에 대한 오래된 의문 하나를 풀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애국가가 과연 우리나라의 국가(國歌)가 맞는지에 대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 중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종북주의에 물든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가졌던 애국가에 대한 의문 애국가에 대한 의문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선물해준 '새국사사전'이라는 사전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 때는 한자로 써져 있어서 잘 몰랐는데, 책꽂이에서 옛 책을 찾아 확인해보니 이홍직 박사가 편저했고 일신각에서 출간된 사전이었다. 초등학생이 접할 수 있는 국사에 대한 내용은 빠지지 않고 설명이 되어 있는 이 국사 사전은 어린 시절 나의 보물이었다. 역사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것만 뒤지면 다 알 수 있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네이버 지식인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전이었다.
치기 어린 애국심에 충만했던 초등학생 시절 언젠가 애국가에 관심이 생겨 이 사전을 들춰봤다. 그런데 모든 의문을 풀어주던 국사 사전이 이날만큼은 나에게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그것은 사전에 나오는 애국가에 대한 설명 중에 있는 한 단어 때문이었다.
"안익태 작곡, 작사자 미상. 16소절로 간결하고도 장중하며, 일제 침략기에는 스코틀랜드의 민요곡 올드랑 사인의 가락에 맞추어 불렀으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 국가(國歌)에 대용, 현재에 이르렀다."초등학생 때 나는 참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사전에 나오는 '국가(國歌)에 대용'이라는 말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대용이라니 그럼 국가(國歌)가 아니고 국가(國歌) 대신에 사용한다는 말인데, 우리나라에는 국가(國歌)가 없다는 말인가? 그럼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라는 말인가?
별 걸 다 궁금해 하는 초등학생이었으되 탐구정신은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선생님과 공부 잘하는 학생 몇몇에게 물어봤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애국가에 대한 궁금증은 잊혀져 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2012년을 사는 오늘날의 사전들은 애국가를 우리나라 국가로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네이버 검색을 돌려봤다. 네이버 지식 사전에서 '국가(國歌)' 혹은 '애국가' 항목을 찾아봤더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눈에 띈다.
"다만, 나라에서 국가로 제정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즉, 애국가라 할지라도 나라에서 국가로 준용하면 국가의 구실을 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로 제정된 곡은 없고, 다만 안익태(安益泰)가 작곡한 「애국가」가 국가로 준용되고 있다." 굳이 정리하자면 애국가가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라는 성문법적 근거는 상당히 미약한 편이다.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비난하기 위하여 보수 언론에서 법적 근거로 2010년에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것은 애국가가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함량 미달일뿐더러 오히려 논리적으로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국민의례 규정으로 애국가가 공식 국가(國歌)임을 주장하는 것의 법적·논리적 문제점으로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법률 체계상 국회에서 만든 법률보다 하위의 개념인 규정을 근거로 한다는 것이 첫째요, 둘째로는 규정의 제정 시기가 2010년이라서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아 국가(國歌)로서 공식화 기간을 축소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마지막으로 규정의 내용상으로 국민의례의 절차로 애국가를 부르도록 한 것이 곧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를 명문화했다고 보기에는 미약한 측면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정치 이념을 떠나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법적 근거는 관습 헌법 내지 관습법에 근거한 해석이다. 애국가는 성문법으로 국가(國歌)라고 규정되지는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국가(國歌)로 인식되어 왔고 정부 수립 이후 공식 행사에서 불러오면서 국가(國歌)라는 법적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외국의 국가(國歌) 중에서도 성문법적인 근거 없이 관습적으로 인정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유 대한민국과 한참 거리가 멀었던 국기에 대한 맹세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번 애국가 논쟁을 간접적으로 유발한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대표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유시민 전 대표는 지난 5월 10일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당시 당의 공식 행사에 애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였다. 애국가에 대한 이석기 의원의 언급도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 전 대표는 2003년 5월에 대학신문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면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야구 시합하는데 왜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는 뭐냐"며 "애국은 내면적 가치인데 주권자로 하여금 공개 장소에서 국가 상징물에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가 논쟁 끝에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당시 유시민 전 대표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구분하여 맹세문을 비판하였음을 강조했다.
유시민 전 대표가 한발 물러서면서 사과를 하긴 했지만, 당시에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것을 강요하는 문장이 자유 대한민국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늘 읊어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서 그렇지, 뉴라이트 주장에 의해서도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하라는 것은 극히 전근대적인 발상이었다. 여기에 '몸과 마음'까지 바치라는 맹세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거의 완벽한 전체주의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힘을 얻어서인지 2007년에 국기에 대한 맹세는 참여정부 말기에 전체주의적인 냄새를 많이 순치시키는 방향으로 개정이 되었다. '조국과 민족' 대신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여전히 '충성'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있는 것이 못내 걸리기는 하였지만, '자유롭고 정의로운'이란 전제를 깔고 있는 공동체라면 충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정도까지는 양보가 가능하였다.
다시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 중에는 언어의 사용에서 맥락을 배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실제로 부정하고 있거나 내지 그런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의 입에서 애국가의 국가(國歌)로서의 성격을 부정하는 발언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사 순수하게 진보적 가치에서 국가(國歌) 제창의 강요 문제를 제기했다손 치더라도, 상황과 맥락을 살피지 못한 정치인에게 남는 것은 정치 생명의 단절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넘어서서 애국가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의 김영환 의원은 자신의 대선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들이 뭐라 하든 우리가 죽음을 바쳐, 삶을 다해 지켜야 할 태극기와 애국가는 우리 조국이다. 우리는 태극기를 사랑하고 우리의 애국가는 당신들이 뭐라 하든 우리의 국가이다. 어제도 오늘도 아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나는 '죽음을 바쳐, 삶을 다해 지켜야 할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문장에서 전체주의의 냄새를 맡는다. 물론 김영환 의원은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불렀던 애국가와 희생자들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생각하며 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국가는 절대적인 선이 아니라 억압과 학살로 기억되기도 한다.
종북 논란이 우려스러운 이유 어떤 사람들은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여 정부의 잘못을 반국가적인 선동으로 몰지 말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의 구별은 나름대로 학식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리 쉽게 구별을 하지 못하는 개념이며, 국가의 상징에 대하여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는 순간에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의하여 국가가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큰 법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종북 논란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른바 '주사파'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을 핑계로 한 매카시즘과 전체주의적 사고의 발호이다.
"'김일성, 김정일이 개XX냐'(라는 물음에) '개XX'라고 하면 종북세력이 아니다"라는 식의 사상검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름 합리적인 보수 인사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천주교도에게 십자가를 밟게 하듯 종북도 검증해야"라고 공공연히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주장하였다.
이제 '애국가 제창'에 대한 찬성 여부가 종북을 가리는 잣대가 되어 버렸으니, 국민의례에 대한 합리적 토론은 아예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국가나 사회가 종교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신과 조국은 충성의 대상이요, 행위 주체로서 하느님과 국가는 부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신과 조국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저항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파문을 각오해야 한다. 둘의 대표적 공통점인 제사적 의례는 기독교에서는 예배의 형태로, 국가에서는 국민의례로 나타난다.
그래서 국가와 종교는 절대적 권위를 두고 대립하기도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증인의 사례는 특수하기는 하지만, 국가와 종교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극단을 잘 보여준다. 정통 기독교 내부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하는 무시못할 조류가 존재하고 있다. 국기라는 국가 상징에 대한 경례는 분명 우상 숭배의 혐의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되었든 종교가 되었든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억압한다면 단연코 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사회주의자들의 조국이었던 구소련보다 정의로운 국가라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라는 것에 있었다고 본다. 맑시즘과 변증법적 유물론이 유일한 진리라는 강요는 설사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부정의일 수밖에 없다.
더 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조건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불태우는 '북괴'의 존재로 인해 민주주의는 유보 당했다. 그게 과거의 한국 현대사였다. 이런 불행한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사회 내부에 암약(?)하고 있다는 이른바 '종북 세력'의 존재를 기화로 되풀이 되고 있다. 언제나 민주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에게는 핑계거리가 늘 존재하는 법이고, 더 발전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운명은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일 뿐이다.
학교에서 조회 등을 비롯해 공식 행사를 할 때 참 힘든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를 부르는 등의 국민의례를 할 때이다. 어른들 눈으로 보기에 혈기왕성하고 철이 없는 고등학생들은 국가의 상징에 예를 표하는 훈련이 참 되어 있지가 않은 편이다. 가슴에 손을 얹게 시키고 애국가를 부를 때는 크게 좀 부르라고 해도 말을 독하게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 가르칠 때 애로사항이 있기는 해도 과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폭력으로 뒷받침 되었던 일사불란한 줄과 어설픈 거수경례로 나름 절도 있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1980년대의 학창시절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왜냐하면 적어도 현재의 우리나라가 과거의 우리나라보다는 자유 대한민국의 이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