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형사는 우연을 믿으면 안 돼."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수사 내용을 보고하며 "우연일까요?"라고 묻는 블레이크 형사에게 고든 고담시 경찰청장은 위와 같이 말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갓 수습을 뗀 풋내기 기자가 '기자론'을 말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7월 에스제이엠(SJM) 사태로 컨택터스를 취재하며 깨달았다. 반복되는 '짧은 사건'들은 우연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컨택터스란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에, 법인 등기부 등본에 '서진호'란 이름이 거듭 등장하는 일도 그랬다. 회사 관계자들은 기자와 통화하며 그를 감추려 했다. 취재 결과 서씨가 바로 컨택터스의 실제 소유주였다.
그렇다면 이건 우연일까 아닐까. 2009년 쌍용자동차, 2010년 발레오만도와 케이이씨(KEC), 상신브레이크, 2011년 유성기업, 그리고 지난 7월의 SJM과 만도기계. 노조의 옥쇄파업을 풀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들어갔던 쌍용차를 빼면, 모두 사측이 직장폐쇄를 강행하며 경비용역업체를 대규모로 투입한 곳이다. 이후 각 사업장의 노조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하거나 새로 들어선 친기업성향 노조에 밀려 단체교섭권을 잃어버리는 등 하나둘 무너져갔다.
새로 나타난 '직장폐쇄→노조 무력화' 공식... "정부가 신호 주고 있다"
모두 이명박 정부 들어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현 정부 들어 파업 현장에서 폭력사태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우차, 노무현 정부 때는 포항건설 등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찢어지고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2009년부터 새로운 공식이 등장했다. '사측의 직장폐쇄→경비용역 투입→폭력사태 발생→노조 대상 징계·손해배상 소송 등 진행→기존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또는 친기업성향 노조 설립'이 바로 그것.
중간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귀족노조 비판'이 있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다. 지난 7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노조 파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현대차나 금융노조는 대부분 연봉이 9000만 원에 가까운 '귀족 노조'"라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귀족 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만도기계가 직장폐쇄를 한 사실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1년 전 유성기업이 파업 중일 때도 "연봉 7000만 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발언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파업할 때마다 '철밥통 공무원들이(2009년 철도노조), 임금을 몇천만 원씩 받는 사람들이(2011년 유성기업, 2012년 만도) 파업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공격했다"며 "노동기본권 행사가 사회질서를 대단히 혼란스럽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기관·공기업의 단체협약을 개악하고, 이를 경영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모습이 기업에게 '지금이 노조를 무력화하거나 없앨 기회'란 신호를 줬다"고도 분석했다.
적신호는 정권 초부터 깜빡이고 있었다. 2008년 9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질서 확립 방안'의 하나로 '정치파업 근절, 무관용 원칙 확립 등 선진 노사문화 정립'을 내놨다. 이듬해 '쌍용차·철도노조 불법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 복수노조·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등 13년간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은 청와대가 선정한 '2009년 15대 정책 뉴스'로 꼽혔다.
"타임오프제·복수노조 설립... 노조가 무너지고 있다"
김지희 금속노조 대변인은 "2010년 타임오프제, 2011년 복수노조 설립 허용 등 사용자 중심으로 노사관계를 개편하는 과정들이 이어졌다"며 "노사관계의 균형이 많이 깨진 상태에서 (직장 폐쇄 등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들이) 정권 말 들어 과감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는) 금속노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라며 "여러 사업장에서 노조가 무너지거나 복수노조가 들어서 노노 갈등이 나타나는 등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공격적 직장폐쇄 및 용역침탈 대책 토론회'에 참석한 김기덕 민변 변호사 역시 "과거에도 직장폐쇄는 있었지만 2010년 타임오프제, 2011년 복수노조 설립과 교섭창구 단일화가 실시되는 흐름 속에서 (용역폭력·노조 무력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만도에는 직장폐쇄 후 4일 만에 제2노조가 들어섰다. 새 노조는 지난 5일 "전체 조합원의 85.5%인 1963명이 가입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SJM의 또 다른 노조도 지난 13일 안산시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한편 컨택터스는 '용역깡패'라는 비난에도 꿋꿋하게 해명문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19일까지 공식 누리집을 통해 발표한 글은 13편에 달한다. 컨택터스는 이 글에서 "연봉 최하 6000만 원에서 평균 7000만 원대를 받는 중산층 노동자들이 일은 덜하고, 돈은 더 받겠다며 파업을 벌였다"며 "일부 극렬 노조가 상습쟁의를 일으켜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정부의 논리와 별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