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8·8 사태의 악몽'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2008년 8월 8일. MB정권은 기어이 KBS에 경찰력을 동원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KBS를 검은 손아귀로 장악하고 만다. 이날 8·8 사태는 최시중의 방통위와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 모든 국가권력기관을 동원한 MB정권과 한나라당, 행동대원 역할을 했던 유재천, 권혁부, 박만, 이춘호, 강성철, 방석호 등 KBS 이사회 6적, 그리고 당시 박승규 노조(부위원장 강동구) 등 정권에 동조한 내부 세력들이 합작해 만든 희대의 불법적, 폭력적 언론장악 공작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4년이 흘렀다. 2012년 8월 8일 오늘 공교롭게도 우리 노조 파업 관련 대량 징계가 확정된다. 지난달 27일 이미 특별인사위원회(위원장 길환영)는 김현석 KBS본부 위원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2008년 정권적 차원의 언론장악에 항거해 '파면' 처분을 받은 이후 두 번째 해고를 당한 것이다.지난 8월 8일, KBS 새 노조가 발표한, '끝나지 않는 8·8 사태의 악몽'이라는 제목의 성명서 앞부분이다. 4년 전, 1천여 명의 경찰이 KBS를 포위하고 수백 명의 사복 무술경찰이 KBS 본관 건물에 난입한 가운데 열린 KBS 임시 이사회의 '사장 해임 제청 의결'을 KBS 새 노조는 '8·8' 사태라 부른다.
지난 3회의 증언을 통해 '8·8 KBS 임시 이사회'의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당시 한나라당 추천 이사 6인(KBS 새 노조는 이들을 'KBS 이사회 6적'이라고 지칭) 가운데 일부의 발언 내용을 전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발언 가운데 '압권'은 유재천 이사장과 권혁부 이사의 발언이다.
'멘붕 발언'의 압권 두 편
유재천 이사장은 경찰의 포위 속에서 열리는 비정상적 이사회의 연기를 주장하는 요구에 대해 "연기 요구도 회의를 한 다음에 해야죠"라고 답했다. 비정상인 회의를 할 수 없으니 회의 자체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무조건 회의를 다 끝내놓고 연기 주장을 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권혁부 이사는 "회의라는 것을 우리인들 하고 싶겠습니까. 이 회의를? 개인적인 심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수모를 당해 가면서"라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8월 8일 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정연주 제거'를 위한 절차를 모두 끝내야 한다는 정권 차원의 방침이 있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함께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진행해온 1박2일 작전이 아니었던가.
8·8 임시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 볼수록 정권 차원의 방침에 따라 이 날 끝장내기로 단단히 작정했음을 볼 수 있다. 유재천 이사장과 권혁부 이사의 '멘붕 발언'을 포함하여 그 이후 진행을 한번 보자.
이사장 : 연기 요구도 회의를 한 다음에 해야죠.
권혁부 이사 : 남 이사님! 회의라는 것을 우리인들 하고 싶겠습니까. 이 회의를? 개인적인 심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수모를 당해가면서.
남윤인순 이사 : 권 이사님은 그동안 이런 소란 행위 있으면 회의하지 말자고 늘 하셨던 분이에요. 일관성이 있으세요! 그동안 이런 소란행위 있으면 제일 먼저 문제 제기하면서 어떻게 회의하느냐고 정리하자고 하셨던 분이세요.
권혁부 이사 : 그런데 내가 뭐가 문제가 됩니까? 내가 그런 말을 했는데, 지금."
남윤인순 이사 : 아니, 그러니까 지금 정상적으로 할 수 있습니까?
방석호 이사 : 회의진행 하시죠?
이사장 : 예. 경과 보고에 대한 질의 또는 수정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박동영 이사 :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오는데, 참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문제 이외에도 오늘 이사회가 긴급한 경우를 전제로 소집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짚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제589차 이사회 경우에는 어제로 통지되었다가 일자와 안건이 바뀌어서 통지되었습니다...정상적인 경우에는 안건제출기간이 7일이고, 그것을 이사회에 통보하는 기간이 7일, (그래서) 통상 14일을 소요하도록 되어 있고, 잘 아시겠습니다만 비상시의 경우에 그것을 이틀로 단축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틀로 단축을 하면, 필요에 의해서 이틀로 단축했다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일은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안건 제출이 되었을 때 이 안건이 과연 긴급한 안건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이사장님이 판단하셔야 합니다. 이사장님이 판단할 때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하시든 간에 최종적으로 이사장님 지휘 하에서 이것은 긴급한 안건이라고 판단하시고 그 판단하는데 정상적으로는 7일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만 필요에 의해서 이사 통보기간까지 포함해서 2일에 처리했다 하더라도 충분한 검토는 하셨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589차 이사회에 본래 제출되었던, 긴급하다고 생각해서 이사장님이 판단하셔서 소집한 안건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없습니다. 지금, 이 얘기는 바꿔 얘기하면 이것이 긴급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이전에 소집되었던 안건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급안건에 대한 판단을 신중히 해주셔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 다음에 이렇게 이사회에서 14일이라는 기간을 두었다는 것은 안건에 대한 이사들의 충분한 검토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서 의사를 결정해야 된다고 하는 정신이 배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만 오늘 이 논의가 어쨌든 간에 중요한 안건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그나마 소집에 따른 편법이라고 할까, 그 용어가 부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하튼 무리하게 소집된 것에 대한, 그런 이사회에서 논의된 의결에 대한 하자나 결격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설사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충분하게 얘기를 듣고 이 자리에서 논의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해드리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여기 이사회에 지금 사장이 참석을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하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참석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여하튼간에 지금 이기욱 이사님이 이 의안 자체가 부당하다는 얘기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사장님께서는 이것이 부당하지 않고 당연히 부의할 만한 안건이라고 판단하셔서 지금 안건에 부의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사장 : 그렇습니다.
박동영 이사 : 그리고 논의하자고까지 말씀하셨고. 그런데 이 안건을 논의하려면 그 당사자가 출석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의안건을 할 때는 이사회 규정 제9조를 보면 이사회가 이사들한테 통보하는 해당 기간 안에 같은 내용을 각 이사 뿐 아니라 사장, 감사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통보하지 않고, 이사회를 해도 괜찮은지,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장 : 제가 제 권한으로 이사회를 긴급 소집하게 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하는, 편법이 아니냐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저는 편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사회 소집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면서 제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중요한 안건이라고 생각해서 긴급소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안건을 이사님들에게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혹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그것은 지적해 주시고, 우리가 또 의논을 할 수 있습니다.
정 사장의 출석 문제는 정 사장하고 집행부에는 오늘 이 소집과 관련된 모든 통보와 또 자료를 다 보내드렸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 오시라고 하지 않은 것은 본인의 신분과 관계된 얘기를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동영 이사 : 보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부분에 관한 한은 그럼 이 의안이 상정되고 난 뒤에, 감사원에서 해임을 요구했지 않습니까? 그럼 그것을 우리가 심의해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럼 그 요구의 대상이 된 사장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때 불러주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춘호 이사 : 사장에 대해서는 늘 사장님이 오셔서 우리에게까지 얘기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상태이고, 얘기를 안 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후진술' 기회조차 없는 '사형 선고'
8·8 임시 이사회가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한다는 것은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그 해임 제청안에 서명만 하면 해임이 완결되는, 그러니까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형 선고'를 내리는 마지막 법정에 당사자가 나와서 '최후 진술'하는 것까지도 하지 못하게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하여 KBS의 친여 이사들은 막았다. 왜 그렇게 무리를 했을까.
특히 유재천 이사장은 나와 감사에게 이날 이사회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사회 통보가 정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사회 규정에는 "이사장은 이사회를 소집하고자 할 때에는 일시, 장소, 부의안건 등을 별지 제2호 서식에 의하여 각 이사, 사장, 감사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별지 제2호 서식에 의한 공식 통보가 사장과 감사에게 이뤄지지 않았다. 절차적으로도 중대한 하자가 있는 임시 이사회였다.
특히 '땅부자' 이춘호 이사의 마지막 말은 참 인상적이다. '사형 선고'와 같은 해임 제청을 받게 될 당사자의 설명과 최후 진술을 할 기회조차 줄 필요가 없다면서 내세운 이유가 "늘 사장님이 오셔서 우리에게까지 얘기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상태이고, 얘기를 안 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사형선고를 받게 될 피의자가 재판 과정에서 자기 입장을 설명했으니, 사형선고 내리는 법정에 출석할 필요도 없고, 최후진술도 필요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감사원에서 내놓은 '해임 권고'의 이유들에 대해 한 번도 자세하게 이사회에 나가 설명한 적이 없었다. 그럴 시간이 있을 수 없었다. 감사원의 '해임 권고'가 불과 이틀 전에 나왔던 터다.
나의 8·8 해임작전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수행한 KBS 임시 이사회 모습은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풍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