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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창업하시려면 최소한 1년은 준비하고 하세요. 안 그러면 망합니다. 우리나라 자영업 폐업 비율이 80%예요."잘라 말하는 목소리에는 '해 본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망해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서울 홍대 인근에서 2년 넘게 카페 운영을 해 온 강도현씨가 전하는 대한민국 자영업 세계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약 800만 명. 경제활동인구의 28.8%다. 80%의 창업자들이 망하고 흔적 없이 거리를 떠나가면 또 다른 '사장님'이 바리바리 싸온 퇴직금으로 그 자리를 메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돈을 버는 것은 대개 건물 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뿐. 강 씨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이런 경험들을 담아 최근 <골목사장 분투기>라는 책을 냈다.
무심코 홍대에 낸 카페, 매달 적자 400만 원올해 서른다섯 살인 강씨의 '스펙'은 여의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금융맨'에 가까웠다. 미국 리버티 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에서 일했다. 외국계 헤지펀드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며 억대 연봉을 받기도 했다. 동네 자영업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덜컥 '카페 사장'이 됐다.
"지인들끼리 투자금을 모아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한 카페였어요. '역시 카페 하면 홍대지!' 하는 생각에 홍대에 가게를 얻었지요. 근데 계속 적자가 나는거에요. 그래서 회의 끝에 그래도 제가 전공이 경영학에 가까워서 카페 운영을 맡게 됐지요."하루에 많게는 2억 원씩 버는 파생상품 전문가라고 해서 적자인 카페를 흑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씨는 매달 300~400만 원씩 밑지는 장사를 했다. 그러나 본업 수입이 많아 별 문제는 안 됐다. 헤지펀드 회사에서 매월 1000~1500만 원씩 받던 강씨는 적자의 대부분을 자기 월급으로 메웠다.
문제는 강씨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 두면서부터 시작됐다. '한국 자영업자'의 삶이 곧장 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적자는 계속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금방 1000만 원을 넘었다. 신용카드 대출로 버티다 보니 리볼빙(자유결제)서비스를 쓰고도 카드 대금이 두 달 밀렸다.
강씨는 10년째 A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프리미엄 회원'이었지만 카드회사는 가차 없었다. 카드사 상담원이 '가압류' 얘기를 꺼내온 것은 연체가 시작된 지 25일 정도가 지나서였다. 강씨는 "결국은 카페를 옮기면서 받은 보증금을 통해 갚긴 했지만 법원에서 압류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아찔했다"고 말했다.
"초보 사장님, 명동·홍대·신촌·강남에 들어가면 망해요"서울 홍대 정문에서 6호선 상수역으로 가는 길에 있던 강씨네 카페 '카페 바인'은 그렇게 망했다. 카페를 열었던 기간은 총 합쳐서 2년 반 정도. 손님이 딱히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한 번도 흑자가 난 적은 없었다. 많이 '까먹는' 달에는 500만 원 적자가 나기도 했다. 강씨는 궁금했다. 열심히 했는데 왜 카페가 망했을까. 결론은 충분한 검토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상수역-홍대 정문 라인은 홍대의 가장 주요한 상권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1층에 40평 카페하려면 싸면 800만 원, 비싸면 1200만 원 줘야 해요. 엄청 비싸죠. 물론 유동인구가 많긴 한데 그 시간대가 목, 금, 토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요. 그때가 커피 마시는 시간은 아니잖아요."폐업한 강씨의 점포 임대료는 부가세 포함 374만 원. 2층에 있는 카페이고 그나마 큰길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라 이 정도 임대료는 줘야 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홍대가 카페를 하기에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강씨는 자영업자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요소로 점포 임대료와 권리금을 꼽았다. 높은 임대료를 내면서 도심에서 장사하는 이유는 더 많은 손님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그 손님들이 자신의 가게로 올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해봐야 한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계산은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주변에 자신의 계획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계획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최근 곳곳에 점포를 늘려 화제가 됐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카페베네'의 한 달 운영비는 얼마나 될까. 그는 매출과 비용 수익을 나눠 뚝딱 계산해냈다. 도심 주요 지역에서 40평짜리 카페베네 점포를 열기 위해서는 개점 비용만 약 4억5천만 원이 들고, 장사가 매우 잘 될 경우 월 수익 260만 원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이 계산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대료다. 월비용 1940만 원 중 임대료가 1000만 원을 차지한다.
강씨는 "초보 사장님은 명동, 홍대, 신촌, 강남에 들어가면 망한다"면서 "경험 없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임대료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지역 임대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뉴욕 맨해튼에 비춰 봐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예로 들은 점포는 맨해튼의 노른자위인 5번가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크기가 132㎡(40평)인 이 매장의 임대료를 원화로 환산하면 보증금 4000만 원에 월 임대료 1000만 원 정도. 홍대나 강남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강씨는 "이 지역 직장인들이 받는 연봉은 서울 직장인들 평균 연봉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면서 "무슨 대단한 근거로 임대료가 이렇게 높은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이 이익 독식... 자영업자 능력과 상관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임대료와 함께 자영업자들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자신의 점포 근처에 새로 가게를 내는 다른 자영업자들이다.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시장 상황 때문에 망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지만 자영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강씨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고용을 줄인 대기업에서 찾았다.
"오늘도 국제신용평가사인 S&P가 한국 신용등급을 올렸어요. 외국에서 볼 때는 우리 경제상황이 괜찮다는 얘기입니다. 현대, 삼성은 몇 분기째 최대 실적 갈아치우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밑바닥에 있는 자영업자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거든요. 근본적인 문제는 대기업이 돈을 벌면서 그만큼 고용을 안 한다는 겁니다."대기업이 사회 전체가 벌어들이는 이익을 독식하면서 그에 맞게 임금을 올려주거나 고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분석이다. 강씨는 "고용만 안 해주면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골목까지 대기업이 밀고 들어와서 지역 상권 위협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자영업자들이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신촌의 한 편의점 사장님을 예로 들었다. 이 사장님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편의점을 시작했는데 24시간 하다 보니 인건비도 많이 들고 남는 게 없어 결국 프랜차이즈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 대기업이 한 달 후에 사장님 점포 인근에 큰 직영 매장을 열더라는 것이다. 강씨는 "'간판 내렸으니 죽으라'는 식 아니겠냐"고 말했다.
강씨는 회사에서 명예퇴직당하면 바로 생존으로 내몰리게 만드는 복지정책의 미비도 지적했다. 그는 "직장에서 '짤린' 사람들이 자영업을 한다고 하면 아이템을 찾고 시장조사를 하는 데 최소한 1년이 필요하다"면서 "이 기간을 버틸 수 있는 복지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카페, 음식점, 치킨집, 호프집 같은 '흔한' 직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자영업자들이 직종을 선택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4개월 정도다.
강씨는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에서 불로소득을 걷어 들이고 기업에 고용을 압박하고 빈약한 복지를 해결하는 역할은 시장이 자체적으로 할 수 없다"면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관료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 하는데 기재부 장관은 자영업자 늘어나니까 고용 대박이라면서 박수만 치고 있는 걸 보니 어이가 없다"고 털어놨다.
"'뭘 해야 먹고살지?' 하며 시작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어"현재 한국의 자영업 폐업 비율은 80%. 새로 시작하는 자영업자들이 생존하는 20% 안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씨는 "기본적으로 운이 많이 작용한다"고 전제하면서 "확고한 철학은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제가 본 사람 중에는 직장에서 떠밀려 나와서 막연히 '뭘 해야 먹고살지?' 하며 시작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반면 확실한 철학이 있어서 자영업을 시작한 사람은 힘든 일이 와도 어떻게든 버티지요. 점포에 주인의 정체성이 드러나야 하는 것 같아요."이런 깨달음을 얻은 강씨는 몇 달 전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는 동교동 삼거리 인근에 '카페 바인'을 다시 열었다. 강씨는 "카페에서 수익금을 통해 강정마을 지지와 이주노동자 후원도 하는데 그런 정체성을 손님들이 무의식 중에 알게끔 인테리어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소셜카페'라는 정체성을 더욱 살려보겠다는 취지다.
지난 여름에는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사진을 찍어 온 고객에게 여름 내내 아메리카노 1잔을 값에 2잔을 주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모 그룹 계열사가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한다는 이유로 삼성카드도 받지 않는다. 카페에 정체성이 생기니 그에 맞는 손님들이 모였고 지금의 경영 상황은 간신히 적자는 안 보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일단 가게 위치를 옮기면서 임대 유지비가 절반으로 줄었어요. 직접 세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 지역이 꽤 유동인구가 있는 지역이었고 카페가 하는 후원 활동에 동의해주시는 손님들이 찾아주시면서 매출도 30% 정도 늘었지요. 홍대에서 할 때도 월 500만 원 정도면 많이 나오는 거였는데 지금은 800~900만 원 정도 나옵니다."강씨는 "카페를 운영할수록 이 장사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잘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홍대 한복판에 맛없기로 소문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카페에 간다"면서 "이제 생각해보면 그 공간이 주는 매력이 손님들을 만족시켰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저도 창업하고 망하기 전에는 이런 걸 몰랐습니다. 오히려 커피장사 하는 사람들은 자부심도 많고 고집이 세서 맛없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자영업 준비하는 분들은 꼭 창업 전에 공부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