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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는 제6회 서울여성문화축제를 통해 가족의 문제, 가족관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거나 어려움을 통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나가려 노력 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파하고자 한다. 그 중 '女심전심' 수기공모는 여성들이 직접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가족관계와 그에 의해 파생된 자기 경험과 대안을 이야기하자는 기획의도를 갖는다. 이러한 시도들이 '여성과 가족'에 대해 다양한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수기응모 글 중 선정된 5편을 공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제6회 서울여성문화축제
 제6회 서울여성문화축제
ⓒ 서울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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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아이 하나 더 가집시다."

오늘 아침 남편의 말이다. 내 대답은 'No'였다. 나 역시 아들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주고 싶다. 동네 아이들을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들을 보면 녀석에게 동생을 낳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공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어렵게 공부를 했다. 서른하나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그나마 국립대학을 다닌 덕분에 큰 빚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비는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로, 방세와 생활비는 근로장학생과 교외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내 나이에 기업에 취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또 공부가 적성에 맞기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몇 년 더 고생해서 연구직으로 가면 앞가림은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남편 역시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언젠가 흙집에서 살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공유하기에 결혼을 했다. 결혼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었다. 외로운 서울 하늘 아래 함께 지붕을 이고 사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뭔가 마음의 자리를 든든하게 했다. 이게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었을 게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공기의 존재를 매순간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처음마냥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가족이 주는 안정감은 아들이 태어나면서 생겨난 가사노동의 무게, 나를 위한 시간의 축소와 함께 점점 작아져간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남편과 나는 '부모'가 되었다. 더 가족스러워졌다. 그 '가족스러워짐' 가운데 나는 엄청난 정체성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로 공부를 쉬게 되었고, 내가 향유하던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었다. 그 대신 아이 젖을 주기 위해 소처럼 먹고, 아이의 기저귀를 수십 번씩 갈고,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 돌보는 일이 나의 일이 되었다.

고도의 지적 만족을 주던 정신노동 대신에 젖을 만들기 위해 먹고, 살려고 버둥거리는 생물적 존재를 돌보는 일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아주 단순한,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생존을 위한 육체적 노동의 연속이었다. 이러기를 일 년여. 아들은 제법 사람다운 꼴을 갖추었다. 언어라는 것을 익히기 시작했고, 제 몸을 가눌 줄도 알게 되었다.

아들에게, 행복하고 자긍심 넘치는 엄마 모습 보여주고 싶어

이런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학교로 발걸음을 돌린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안겨 나를 향해 두 팔을 펼치는 아들을 뒤로할 때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끊어내기 힘든 감정의 실타래들이 내 발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해방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전자는 모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후자는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혼란스럽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혼란스러움에 빠져 고민을 하기에는 내 자유가 너무 달콤하고 순간이 너무 값지다.  

결혼을 하며 가족을 구성하기 시작할 때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이다지도 무거운 것인지,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따뜻하고, 외롭지 않고, 뭔가 든든한 것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패키지로 따라온 설거지, 빨래, 남편 뒷바라지, 육아 등은 내 시간과 힘을 소진하고도 남는 양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끝이 나지 않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과연 이렇게 일방적인 것이 가족을 이룬 대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잘하는 것이 '현모'이고 '양처'이다.

하지만 나는 먼저 행복해지고 싶다. 현모이고 양처이기 위해 저 노동들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해내야 한다면, 난 현모양처는 되기 어려울 것이다. 난 저 노동들이 싫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지만, 그래도 싫다.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무디게 하고, 지치게 하고, 무가치하게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 가족 역시 나의 불행한 노동의 결과를 누리며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나가기로 말이다. 내가 사는 사회는 관습적인 면에서, 생활적인 면에서 오히려 나의 행복을 침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행복을 위한 나 자신의 노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학교로 돌아간다. 어렵게 한 공부의 끝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 행복하고 자긍심 넘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내 선택을 두고 엄마답지 못한 결정이라고, 이기적이라고 말거리로 삼을지 모르지만, 나는 먼저 행복해지고 싶다. 이 가족과 그리고 나를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12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서하나님의 글입니다.



#여성#가족#서울#아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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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는 서울 여성들의 자기성장,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폭력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생활인 여성들의 공동체입니다. 2007년 7월에 창립하여 서울여성문화축제, 서울여성아카데미, 지역아동센터 성교육 및 부모교육, 지속 가능한 생태 지킴이 활동과 식량주권운동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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