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이사장이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퇴진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교과부 국장-총장 비서실장'의 대화녹음 파일에 따르면, 교과부 이아무개 국장이 원동혁 총장 비서실장에게 "오명 이사장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뵙고 온 뒤에 총장 퇴진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실토했다.
또한 서 총장이 지난 1월 12일 오명 이사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서신'에 따르면, 오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서 총장을 불러 "대통령님이 오라고 해서 왔고, 이제는 대통령님이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서 총장의 퇴진은) 대통령님의 뜻이다"라고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 총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 당시 "오명 이사장이 대통령의 이름을 팔았는지 모르겠지만 제 퇴진이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오명 이사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청와대나 대통령을 거론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사장이 VIP 뵙고 와서 총장 퇴진 검토지시 내렸다"
서 총장 측에서 작성한 '오명 이사장 및 교과부의 서남표 청장에 대한 사퇴 압박 기록' 문건에 따르면, 오 이사장은 지난해 4월부터 올 7월까지 18회에 걸쳐 서 총장의 퇴진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오 이사장이 대통령과 청와대·총리 등을 언급했다는 것이 서 총장 측의 주장이다.
오 이사장이 "총리·청와대 모두 서 총장 왜 사퇴 안시키냐고 한다"(2011년 6월 1일) "청와대와 정부의 뜻이니 총장은 사퇴하라"(2011년 10월 26일) "정부, 청와대 모든 의견 조율이 완료되었다"(2011년 12월 7일) "VIP(대통령)의 뜻이니 오늘 이사회에서 사퇴하라"(2011년 12월 20일) 등의 발언을 통해 명시적으로 서 총장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음성파일에는 카이스트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해 12월 19일 '서 총장의 퇴진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아무개 국장 : "(오명) 이사장님께서 (서남표) 총장을 뵙기 전에 BH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나서 저한테 (오명 이사장이 저에게 퇴진 검토) 오더를 주신 것이다."
원동혁 총장 비서실장 : "BH는 VIP님(이명박 대통령)을 얘기하는 거냐?"
교육과학기술부 이아무개 국장 : "예, 예."
이 국장은 지난 1월에도 서 총장에게 "서 총장의 퇴진은 이사장 및 정부의 뜻"이라고 강조한 뒤 "사임 시기를 빨리 결정해 달라"며 "즉시 사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명 이사장과 교과부가 이렇게 서 총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는 것과 관련, 서 총장의 한 핵심측근은 "오 이사장은 올 12월 전에는 총장 이취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며 "이는 현 정부 임기 안에 오 이사장과 이주호 장관이 합의한 낙하산 인사를 총장에 앉히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국장은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교육청 위원님들과 식사 중이니 다음에 통화하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또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3쪽짜리 내용증명 서신(2012년 1월 12일 자)에 따르면, 오명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카이스트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서남표 총장을 회의장 밖으로 불러 거듭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 총장은 "많은 시간 심사숙고한 끝에 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자 오명 이사장이 '대통령'을 거론하며 그를 압박했다.
"대통령님이 오라고 해서 왔고, 이제는 대통령님이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의 퇴진은) 대통령님의 뜻이다."이에 서 총장은 "(제 퇴진이) 정말 대통령의 뜻이라면 이사회 공식회의석상에서 모든 이사님들께 공개하고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오명 이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서 총장은 "제가 '이사장님께서 대통령님을 거론하시면서 그동안 저의 퇴진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오신 사안을 이사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이사장님은 '그 얘기만은 하지 말라'고 저에게 부탁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총장은 "이사장님께서 자의로 총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뒤에서 작업하는 행위는 관련 법규에서 부여하지 않는 이사장의 명백한 월권"이라며 "이사장님께서는 이번에 이뤄진 사건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이사장님께서는 대통령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남용하여 국민의 대학인 카이스트를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다"며 "그런 위치에 계신 분이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시고 결정하셔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냐?"고 일갈했다.
오명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사돈지간이다. 오 이사장의 아들과 이 전 의원의 둘째 딸이 결혼한 사이다.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이 카이스트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지난 2010년 9월 이사장에 취임했다.
카이스트의 한 관계자는 "오명 이사장은 현 정권 아래서는 '과학기술계의 이상득'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해왔다"고 전했다.
오명 이사장 "오히려 총장이 대통령 팔고 다녀 주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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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 중인 오명 이사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명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7월 20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열린 임시이사회에서는 서남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을 논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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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명 이사장은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서 총장이 청와대와 대통령을 함부로 팔고 다녀서 지난해에 주의를 한번 줬다"며 "하지만 그 이후 서 총장에게 청와대와 대통령을 거론한 적이 없다"고 서 총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은 내가 여러 번 대통령을 거론했다고 했는데 내가 언제, 어디서 했다는 것인가?"라며 "설사 내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해도 총장이 그런 얘기를 언론에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계는 정권과 상관이 없다"며 "내가 서 총장이 명예롭게 나갈 수 있도록 커버해주고 있는데 왜 이사장을 물고 넘어지는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은 이미 10월 20일 자 사임서를 쓴 상태"라며 "(사임을 늦추려면) 이사회에다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 (사임 시기를) 발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 총장은 이사회와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인데 교수·학생과 대화가 되겠나?"라며 "서 총장이 학교에 오래 있을수록 학교가 복잡해지고 운영이 안 된다"고 거듭 '조기 퇴진'을 주장했다.
한편,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내일(19일) 카이스트를 대상으로 정기국정감사에 나선다.
오명 이사장-교과부, 20여 차례 퇴진 압박 |
다음은 서남표 총장쪽에서 작성한 '오명 이사장 및 교과부의 서남표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 기록' 문건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2011년 4월 12일 : "국회 일정 넘길 수 없다. 즉시 사퇴하라." - 2011년 4월 13일 : 일부 보직자를 소집하여, 총장 사퇴를 결의하도록 지시 - 2011년 4월 14일 : "조속히 사퇴하라." - 2011년 4월 30일 : "정기국회를 넘길 수는 없다. 혁신위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퇴하라. 2년 만 해야 한다." - 2011년 5월 3일 : "2년만 해야 한다."
- 2011년 6월 1일 : "정기국회 넘기기 어렵고, 지적될 사항 많아서 사퇴만이 유일하다. 교과부 장관도 2년만 해야 한다고 한다. 총리, 청와대 모두 서 총장 왜 사퇴 안시키냐고 한다." - 2011년 6월 3일 : 교과부 장관 "총장 임기 2년차에 사퇴하라" - 2011년 6월 27일 : "사퇴에 과심각하게 생각하라. 총장 사퇴 일정 고려하여 차기 이사회 일정을 잡아라." - 2011년 7월 13일 : "총장이 이제 임기를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 2011년 10월 7일 : "이제는 나가야 한다."
- 2011년 10월 26일 : "BH 및 정부의 뜻이니 총장은 사퇴하라." - 2011년 12월 6일 : 교과부 담당국장 "이사장이 총장의 진퇴에 대해 얘기하였다. 12월 20일 이사회에서 총장의 거취가 논의될 것이다. 이사장이 총장을 곧 호출할 것이다." - 2011년 12월 7일 : "12월 20일 이사회에서 반드시 사퇴하라. 정부, BH 모든 의견 조율이 완료되었다." - 2011년 12월 19일 : 교과부 담당국장 "이사장이 긴급안건으로 총장 사퇴 후 후임 총장 인선 절차에 관해 검토하라고 하셨다. 이사장께서 BH 다녀오셔서 총장 해임을 검토해보라고 했다." - 2011년 12월 20일 : "VIP의 뜻이니 오늘 이사회에서 사퇴하라."
- 2012년 1월 11일 : 교과부 담당국장 "사임시기를 빨리 결정해 달라. 즉시 사퇴하는 것이 좋다. 이사장 및 정부의 뜻이다." - 2012년 1월 21일 : "실질적으로 총장 생명 끝났다. 사퇴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 2012년 2월 7일 : 이사회 직전 "학교가 시끄러우니 오늘 사퇴하라." - 2012년 2월 7일 : 이사회 중 "총장이 교수들과 대척해서 사실상 생명이 끝났다고 보아야 하며, 사퇴해야 한다." - 2012년 4월 26일 : "사임의사만 밝히면 명예로운 퇴진을 만들어 드리겠다." - 2012년 5월 24일 : "총장은 이제 끝났으니 어서 설득해서 퇴임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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