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7이 국내 출시 한 달 만에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 넥서스7은 다음달 2일 출시되는 아이패드 미니와 같은 7인치대일 뿐 아니라 구글 첫 레퍼런스(기준) 태블릿이란 점에서 구글-애플 양사간 자존심 대결은 피할 수 없다.
스마트폰과 달리 태블릿 시장에선 아이패드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삼성 갤럽시탭을 비롯해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출시됐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크게 주목 받진 못했다. 일단 아이패드는 전용 애플리케이션만 27만5천 개로 안드로이드 진영을 압도한다.
과연 넥서스7은 아이패드에 맞서 한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까? 아울러 아이패드 미니와 더불어 7인치 태블릿의 부활을 알릴 수 있을까? 지난 1주일 넥서스7 들고 다니며 그 해답을 찾아봤다.
[이동성] 7인치 태블릿, 한국에선 샌드위치 신세?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지난 9월 27일 넥서스7 홍보 차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구글의 애정은 남다르다. 넥서스7을 여는 순간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뒷면 하단에 조그맣게 붙은 '에이수스(ASUS)' 마크만 빼면 제품 어디에도 제조사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온전히 '구글의, 구글에 의한, 구글을 위한' 태블릿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패드와 갤럭시탭10.1 등 10인치 태블릿과 갤럭시노트, 옵티머스뷰 등 5인치대 스마트폰 사이에서 7인치 위상은 어정쩡하다. 태블릿이 기존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타깃으로 한다고 봤을 때 차라리 7.9인치 아이패드 미니가 유리해 보인다. 7인치에 비해 화면이 35% 정도 넓을 뿐 아니라 기존 아이패드용 앱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서다. 반면 전용 앱이 부족한 넥서스7은 기존 스마트폰용 앱에 의존해야 한다.
이동성 면에서도 불리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10인치 태블릿보다 휴대하긴 좋지만 와이파이 전용이란 한계가 있다. 지난 1주일 넥서스7를 쓰면서 와이브로 에그를 항상 휴대해야 했다. 집이나 회사에서 와이파이 사용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할 때는 에그를 일일이 껐다 켜는 불편이 따랐다. 대화면 장점은 이미 '노트폰'에 희석된 상황에서 네트워크 불편까지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4325mAh 대용량 배터리 수명도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 대기 300시간에 웹브라우징 10시간, 동영상도 9시간 감상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게임을 하면 배터리가 비교적 금방 닳았다. 충전 시간도 꽤 긴 편이어서 배터리가 바닥난 상태에서 8시간 넘게 충전했는데도 60%를 간신히 넘길 정도였다.
[서비스] 한국어 전자책-영화 콘텐츠로 국내 소비자 겨냥넥서스7 첫 화면은 구글 노트북PC '크롬북'의 태블릿판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구글 서비스 일색이었다. 하단 메인 메뉴에는 크롬 웹브라우저를 비롯해 구글플러스, 구글플레이 등이 기본 배치돼 있었고 구글 폴더에는 지메일, 유튜브, 캘린더, 세상보기 등 구글 모바일 서비스가 가득 담겨있다.
당연하지만 DMB를 비롯해 'S노트'나 'T스토어', '올레내비' 같이 국내 제조사나 통신사에서 기본 제공하는 붙박이 앱도 없다. 덕분에 깔끔하다는 인상은 주지만 구글보다는 네이버, 다음 등 '국내용 서비스'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에겐 아이패드처럼 '외산 제품'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구글이 지난달 넥서스7 국내 출시에 맞춰 플레이북과 플레이무비 등 한국 콘텐츠를 대폭 강화한 것도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다. 아직 신간 베스트셀러나 최신 영화 등 다양성은 떨어지지만 아직까지 '한국어 책'이 없는 애플 아이북스와 비교하면 그나마 자체 볼거리는 풍부한 편이다. 다만 팀 쿡 애플 CEO 역시 23일 아이패드 미니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국어 전자책을 소개하며 한국 콘텐츠 강화를 예고했다.
'플레이북'의 가장 큰 장점은 자동 번역 기능이다. 아이북스의 경우 사전 기능 정도만 지원하지만 플레이북은 특정 단어나 문장뿐 아니라 본문 전체를 한꺼번에 번역해서 보여준다. 물론 기계적 번역에다 오역도 많지만 영어나 일본어 원서 읽을 때 참고할 만한 수준은 된다.
'플레이무비'의 경우 CJ E&M 등과 제휴를 맺어 '어벤져스', '트랜스포머3' 같은 외국 영화뿐 아니라 '시체가 돌아왔다', '연가시' 같은 한국 영화도 1000~3000원 정도에 빌리거나 50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48시간 대여시 스트리밍 형태여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필요는 없지만 인터넷 연결이 안 되면 감상이 불가능한 단점도 있다.
구글은 애플 '시리'에 맞서 '구글 나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화형 음성 명령 서비스인 시리가 날씨, 스포츠경기 결과 등을 직접 물어야 답하는 반면 구글 나우는 사용자 설정에 따라 필요할 때 맞춤 정보를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길 교통상황이 뜨고 좋아하는 스포츠팀 경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결과를 알려준다. 또 넥서스7을 들고 극장 주변으로 이동하면 해당 극장 영화 상영 정보가,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근처로 가면 대중교통 시간표가 뜬다. 공공장소에서 음성 대화가 쉽지 않은 걸 감안하면 실용성은 있지만 한국 프로야구팀 등록이 불가능한 점 등 '현지화'가 아쉽다.
[가격-성능] 30만 원 대 42만 원... 7인치 킬러앱은 애니팡?마지막으로 제품 성능과 가격을 따져보자. 사실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태블릿이 자리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29만9천 원짜리 넥서스7 등장은 태블릿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통신사가 아닌 롯데마트나 하이마트를 유통 채널로 선택한 것도 색다르다.
가격 면에서는 아이패드 미니 16GB(와이파이 전용) 모델이 42만 원에 출시되면서 상대적인 경쟁력은 갖췄다. LTE 지원 모델의 경우 이보다 15만 원 정도 비싼 57만 원에 이른다. 다만 7인치 태블릿은 휴대용에 걸맞게 이동통신망 연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시장 반응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넥서스7 역시 성능 면에선 아이패드에 견줘 모자람은 없었다. 게임에 필요한 센서들은 모두 갖췄고 아이패드에 없는 NFC(근거리 무선통신) 기능도 있다. 후면 카메라가 없어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게 단점으로 꼽히지만 스마트폰을 함께 쓰는 탓에 큰 불편은 없었다. 사실 영상 채팅용 120만 화소 전면 카메라 역시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아이패드 미니가 500만 화소 후면 카메라를 탑재해 쓰임새를 넓힐 걸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넥서스7을 쓰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게임이었다. '펀치히어로', '카트라이더 러시', '2012프로야구' 등 스포츠 게임뿐 아니라 '애니팡', '캔디팡'처럼 카카오톡과 연계한 소셜 게임을 손에 들고 즐기기에 7인치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한편으론 게임 이외에 꼭 넥서스7가 필요한 서비스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소비자 처지에서 30~40만 원대 태블릿 등장은 반길 일이다. 그렇다고 게임만 즐기기엔 많이 아쉽다. 전자책이든 영화 감상이든, 업무용이든 게임용이든 태블릿 시장을 차별화하고 한국 소비자를 유혹할 만한 킬러 콘텐츠나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다. '안드로이드 천국' 한국에서 벌어질 구글과 애플 태블릿 싸움 역시 기기 성능보다 현지화된 콘텐츠 확보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