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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전화 송수신기능과 문자메시지 기능만 착실히 수행하는 내 휴대폰, 때때로 시계기능과 알람기능으로 기쁨을 주기도 한다.
오로지 전화 송수신기능과 문자메시지 기능만 착실히 수행하는 내 휴대폰, 때때로 시계기능과 알람기능으로 기쁨을 주기도 한다. ⓒ 김학용
내 휴대전화 번호는 011-6XX-XXXX이다. 그렇다. 국민 정서에 역주행하는 불통과 고집, 아집(?)의 상징인 당신이 알고 있는 그 '2G' 번호 맞다. 그동안 온갖 선전·선동 속에서도 차별과 편견을 참아가며 18여 년을 버텨왔건만 요즘 입지가 점점 작아져 가니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차별과 편견에 지쳐 있던 내 주위의 동지들에게 절묘한 기회였을까? 통신사들의 4G 롱텀에볼루션(LTE) 구애작전에 금쪽같은 01X 번호를 고수하며 끝까지 함께 하자던 맹세는 어디 가고 하나둘씩 무너지고 말았다.

통신 3사의 금년 LTE 가입고객 유치목표는 1600만 명선. 하지만 현재까지 가입자는 약 1200만. 통신사 입장에서는 남은 2개월 동안 최대한 많이 갈아 태워야 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유혹에 넘어오기 쉬운 사람들이 바로 2G 고객들 아니었겠는가.

얼마 전 출시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갤럭시S3. 출시가격이 냉장고 한 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가였던 이 폰은 2년 이상 약정을 거는 조건으로 일정 요금제 이상만 가입한다면 거의 공짜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사회의 냉대, 관계의 단절 등을 한꺼번에 경험했던 '01X' 이용자들에겐 변화이며 기회이고 한편으로는 행복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보조금전쟁으로 인해 한때 폰 출고가는 17만 원까지 떨어졌고, 출시 3개월 만에 국내 판매량 300만 대를 무난히 돌파했다. 곧 경쟁제품인 아이폰5의 출시가 예정된 상황이라 갤럭시S3의 판매부진 우려가 통신사들의 과열경쟁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히트를 치고 만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까지 국내 LTE 가입자 수는 1172만 명(SKT 567만·KT 249만·LG 356만)으로 2G CDMA 가입자 1178만 명(SKT 532만·LG 646만)보다 약 6만여 명이 적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새 상황이 역전되어 지난 23일 기준 SKT의 2G 가입자는 507만명으로 지난달보다 크게 감소했으며 LG도 비슷한 수준으로 줄고 있다.

아, 천만 동지들의 연이은 이탈 소식에 난 왜 이렇게 작아지는가. 나는 이제부터 그들은 '동지'가 아닌 '적'으로 규정할 것이며 감언이설에 굴복한 그들을 '남보다 못한 존재'로 치부하리라. 어디 얼마나 '스마트'해지나 두고 보리라.

자기들이 언제부터 스마트폰 썼다고 4G, LTE 등 전문용어를 써가며 내 앞에서 감히 행복한 고민을 늘어놓는 건지. 뭐, 와이파이라서 느려 터진다고? 참나 인터넷도 안 되는 내 2G 피처폰보다 더 느리겠니?

요즘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신세계를 경험한 듯 미소를 머금는 동료를 보고 있노라니 은근 신경이 쓰인다. 스마트폰 영업사원인 양 신기능들을 찬양·고무·동조하며 우쭐해 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패배감까지 밀려온다. 정말 내가 한 발 늦은 건가? 보조금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나도 갈아탔어야 했을까? 슬슬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새 날이 올 때까지…' 뜨거운 맹세는 배신으로

다행히 보조금 전쟁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칼을 들이대자마자 사그라들어, 갤럭시S3 스마트폰 가격은 다시 70만 원선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당분간은 스마트폰 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하다. 하지만 연말쯤에 보조금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니 또 한 번 동지를 대거 잃는 난리를 겪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굳이 재산권, 인격권, 행복추구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평등권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피처폰 교체 비용만으로도 그 따위 최신 스마트폰 수십 개 사고도 남았다. 그동안 이 번호를 고수하기 위해 오직 한 길만을 고집했던 2G 이용자들의 눈물 나는 분투기를 아는가?

이제 2G 이용자들을 핸드폰 제조사는 물론 통신사조차 외면하고 있다. 무리한 강제 전환정책으로 충돌하여 크고 작은 생채기를 입히기보다는 차라리 모른 척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KT는 이미 2G 서비스를 종료했고 SKT와 LGT는 (비공식적으로) 2018년 서비스를 완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폰을 활용하는 이용자들의 구매패턴 탓도 있지만, 이동통신사들은 스마트폰 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이 이득이니 미온적인 대처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 출시되는 피처폰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아니, 사실상 스마트폰만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제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LG는 하반기 각각 1종의 피처폰 출시만을 계획하고 있다. 팬택은 이미 내수용 피처폰 생산을 중단했다. 모토로라도 금년 들어 아직까지 1종도 출시하지 않았다.

그나마 많이 출시한 편인 삼성이 올해 출시한 피처폰은 '와이즈 모던', '와이즈 클래식', '노리F2' 등 3종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자상가나 대형 가전 양판점의 휴대폰 매장을 둘러봐도 피처폰 구경은 쉽지 않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피처폰용 모바일 게임까지 출시가 중단된 상태라니 어디까지 궁지에 몰아넣을지 그저 궁금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동안 2G폰으로 인터넷뱅킹은 물론 내비게이션 기능이나 친구찾기 등의 각종 어플리케이션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깟 어플 몇 번 못한다고 그렇게까지 서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당의 모바일 투표는 물론 카카오톡 등의 무료 메신저와 그룹채팅,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한 교류에서도 번번이 소외되니 기가 죽는 것이 사실이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하트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요즘 대세라는 바로 그 게임, '애니팡' 말이다. 3년 만에 연락해 자연스럽게 '하트'를 요구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단다. 하지만 내 폰으로 하트 보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면 스토커로 오해를 받고도 남으리.

또 010 가입자끼리는 통신사에 관계없이 010을 누르지 않고 국번과 끝자리 전화번호만 누르면 된다지만, 우리 01X에게 전화하려면 모두 다 눌러야 하니 불편하다고? 고작 두 자리 차이인데 너무 폄하하지는 마시라.

'01X' 번호 고수를 위한 눈물 나는 분투기 

2011년 3월 24일,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사용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스마트폰은 '손 안의 움직이는 PC'로 불리며 일상의 모바일화를 주도했다.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와 영화를 보고, 카카오톡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즐긴다.

지난 2010년부터 지방선거, 2011년 재·보선, 2012년 총선 등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각종 언론은 '투표 인증샷' 등 트위터를 주시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 위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첨단을 달리는 스마트폰에 의한, 스마트폰을 위한, 스마트폰의 시대. 이러다 몇 년 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1]
직원 : "손님, 휴대전화 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고객 : "010-OXOX-OXOX"요.
직원 : "감사합니다. 김OO씨, 마포구 상암동 OOOO번지에 사시며 근무지는 OOOOO이시군요, 휴대전화 기종은 옵OOO-G 이고요."
고객 : "제주흙돼지 스페셜로 3인분 주세요."
직원 : "아, 고객님 그건 당분간 드시면 안 됩니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고객님의 의료정보시스템 기록을 보니 지방간과 고혈압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네요."
고객 : "아, 그럼 무슨 메뉴로 먹어야 하죠?" 
직원 :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가공하여 만든 식물성 콩고기로 만든 콩스테이크나 콩까스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요금은 현금으로 주셔야겠어요. 모바일 신용카드가 지금 한도 초과시네요~!"

[#2]
직원 : "손님, 휴대전화 번호는요?"
손님 : "011-OXO-OXOX요."
직원 : "본인 인증이 안 되는 번호입니다. 저기 입구에 가셔서 스마트폰 미소지 고객 전용 1회용 인증카드를 발급받으신 후 주문 바랍니다."
손님 : "…."

그렇다고 무조건 01X 번호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01X 이용자가 010 번호로 바꾸지 않고도 스마트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내년까지 01X 이용자의 3G 가입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01X 번호이동제도란 010 번호를 바꾸지 않아도 3G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한시적'으로 3년간만 허용된다. 이 제도 도입으로 01X 번호로 인한 3G 가입 장벽은 크게 해소됐지만, 2014년부터는 이마저도 불가능해 010 통합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또, 한때 '010통합반대운동본부'를 중심으로 01X 번호로 스마트폰을 우회하여 편법으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나왔지만 '꼭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하는 푸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마저도 일부 기능에 제한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01X번호로 스마트폰을 우회하여 편법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게시글.(화면캡쳐)
01X번호로 스마트폰을 우회하여 편법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게시글.(화면캡쳐) ⓒ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인터넷카페

1천만 2G 이용자의 외침에 화답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지하철을 타니 문득 그녀가 생각이 난다. 간절히 사랑했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사람도 나를 이만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녀도 페이스북을 하고 있을까? 나도 언제 어디서나 내 폰으로 페이스북으로 옛 연인도 찾고 카카오톡 친구 추천도 받고 하트도 날리고 당당히 폰을 내 놓고 싶다.

우리는 SKT가 추후 2G 서비스를 종료할 경우 수백만 원 상당의 보상금과 혜택을 거머 쥐려고 기대하는 막연한 보상심리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아니다. 또 010 통합정책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번호통합의 취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전혀 수익에 도움이 되질 않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는가? 지금의 통신시장을 누가 이만큼이나 키워 놓았는데….

우리가 01X 번호를 고집하는 이유는 결코 아집이 아니다. 오랫동안 써온 나만의 고유번호 01X는 나만을 상징하는 '분신'이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스마트폰을 쓰려면 무조건 010 번호를 써야 하며, 기존 2G로는 인터넷을 비롯한 신규 서비스에 접근할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아직 2G 이용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통합할 때 하더라도 01X 사용자도 즉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허용해준다는 대통령 후보는 없을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로운 대통령께 감히 기대해본다. 천만 2G 이용자의 외침에 화답해준다면… 감히 당신을 선택하리라.


#2G#01X#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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