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니 나이르.'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머리카락 잔치'라고 할 수 있는 몽골식 돌잔치가 지난 11일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아장아장 카페'에서 열렸습니다. 돌잔치의 주인공은 이주노동자 부부의 자녀인 '둘궁'이었습니다. 돌잔치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실상 둘궁이는 22개월, 즉 두 달이 모자란 두 돌 아기였습니다. 잔칫상에는 뜨거운 돌에 구운 양고기인 '허르헉'을 비롯한 몽골 전통음식이 차려졌습니다. 여느 우리나라 돌 잔칫상처럼 푸짐했답니다.
이날 잔치에는 둘궁의 친지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함께해 아이와 부모를 축하해줬습니다.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손님들은 돌아가면서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 복주머니 같은 옷감에 집어넣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몽골에서는 배냇머리를 계속 갖고 있으면 어머니의 기운이 아이를 지켜준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우스니 나이르를 할 때까지 아이의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른답니다. 우스니 나이르 때 배냇머리를 자르는데, 이는 아이가 더 이상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젖먹이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친지들은 아이가 독립된 인격체로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며 덕담과 선물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생일 잔치가 기적인 이유
"에게게게게!"
"하하하하!"아이가 싫다고 뭐라 하는데도 어른들은 깔깔거리며 아이를 안으려 했습니다. 녀석은 그럴수록 더 새침하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젓더군요. 그런데, 정작 안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혀를 내밀며 조용해졌습니다.
제일 먼저 머리카락을 자른 둘궁의 아빠 엄마는 "우스니 나이르를 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며 참석한 친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들 부모가 아이의 생일 잔치를 기적이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둘궁은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심장병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장폐색으로 배변 주머니를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또래 아이보다 몸무게나 키는 작지만, 부모는 그 많은 수술을 견뎌내고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둘궁의 엄마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둘궁의 우스니 나이르를 축하하는 시를 읊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2011년 1월 11일,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다섯 번의 하나가 모인 날, 네가 태어난 날이보다 좋은 날, 좋은 시간이 어디 있으랴이보다 축복받은 날이 언제 또 있으랴우리 둘궁, 우리 딸, 밝음이가 태어난 세상은엄마 아빠 사랑 가득한 좋은 세상엄마 아빠 품에서 두 돌을 보내옛 어른들이 다 하듯 머리를 자르는 날, 우스니 나이르여러 친지들의 축복 속에 사랑을 모아 돌잡이한단다하얀 우유 빛 같은정갈한 마음으로호랑이 기운을 안고 태어난 너의 머리를아빠가 먼저 자르면, 뭇 사람의 축복의 장이 펼쳐진단다역경 딛고 일어선 둘궁은 씩씩하답니다
'1'을 행운의 숫자라고 믿는 몽골에서는 '1'이 여러 개 겹친 날을 행운의 날이라고 믿는답니다. 그래서 둘궁은 좋은 날, 축복받은 날 태어났다는 거죠.
하지만, 둘궁은 태어나면서부터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어 장폐색으로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나날이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둘궁을 찾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지난 5월 둘궁은 장폐색 때문에 달고 다니던 배변주머니를 떼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둘궁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고 있답니다. 옹알이도 부쩍 많아졌고, 걸음마도 배우려는지 엄마 손을 잡거나 의지할 것을 잡고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기곤 합니다.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긴 하지만, 둘궁은 씩씩합니다. 목소리 또한 작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튼튼한 발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견한 듯 둘궁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아이가 퇴원한 뒤 생일잔치를 열기까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둘궁 엄마는 "아이가 건강한 모습을 생일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거듭 강조했습니다.
저는 둘궁에게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이들인데 말입니다. 둘궁은 생명의 고귀함을 알게 해준 고마운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둘궁아,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