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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검찰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검찰총장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그것도 검사의 금전 비리 때문에.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가 비리의혹을 받게 되자 이를 수사하겠다고 나선 특임검사팀이 19일 그를 구속했다.

그날 한상대 검찰총장은 "부장급 검사가 거액 금품수수 비리로 구속된 데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국민들께 큰 실망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하여 마음 깊이 사죄를 드린다"고 했다.

2년 5개월만에 다시 고개숙인 검찰총장

굳은 표정의 한상대 검찰총장  현직 부장검사에 대해 수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굳은 표정의 한상대 검찰총장 현직 부장검사에 대해 수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총수의 '사죄'는 거의 2년 반 만이다. 2010년 6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파문이 커지자 당시 검찰총장은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마음 속 깊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총수의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 사과에서 한 총장은 "국민들로부터 주어진 소임을 다했는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였는지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겸허한 자세로 전향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추진하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검찰 내부 비리로 사과한 것 말고 검찰이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민들께 큰 실망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사과한 사례가 있었던가. 예컨대 과거 군사정권 때 수사과정에서 강압수사,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했다거나, 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하여 몇 년을 끌었던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로 밝혀졌을 때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검사가 사생활에서 처신을 올바로 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하지만 그걸로 다가 아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제대로 수사권을 행사하거나 시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검사의 모습이다.

법원 "용산참사 수사기록 거부는 법치주의 위배"

2009년 1월,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이 농성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농성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용산참사 사건'이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검찰에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했으나 검사는 형사소송법 조항(266조의4 ②검사는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사유 등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을 들어 열람을 거부하였다.


피고인들은 이에 불복하여 다시 법원에 허용해달라는 신청을 냈고, 법원은 검사에게 열람등사를 허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검사는 법원의 열람등사 허용결정을 받은 뒤에도 일부 서류만 등사를 허용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거부하였다. 피고인들은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검사는 범죄자를 잡아 처벌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 4조)로서의 역할이다.  용산참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로서는 수사 내용이 외부로 공개된다는 점이 꺼려졌겠지만, 그 전에 피고인의 권리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그 중에서 수사서류 열람·등사권은 피고인이 자신을 방어하고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검사는 형사소송법 조항이나 법원의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공개를 고수했다.(피고인들은 약 9개월이 지나서야 다른 방식으로 수사서류를 열람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변호인의 수사서류 열람·등사를 제한함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또는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면 이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검사의 열람·등사 거부처분이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에서 열람·등사를 허용하도록 명한 이상, 법치국가와 권력분립의 원칙상 검사로서는 당연히 법원의 그러한 결정에 지체 없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검사의 거부행위는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9개월이나 되는 매우 오랜 기간동안 재판에 필요한 증거 등을 검토하는 데 곤란을 겪었다고 할 것이고, 이로써 원고들의 열람등사권,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피고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직적인 판결이라 볼 수 있다.

1심부터 3심까지 같은 결론이었다. 지난 15일 최종심인 대법원도 검사의 잘못을 지적했다. 좀 길지만 인용한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법원이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피고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마련되어 있는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조치를 이행할 것을 명하였고, 관련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법원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경우라면, 법에 기속되는 검사로서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할 직무상 의무도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검사가 관련 법령의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 등의 선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법원의 결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검사에게 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비리검사보다 법 무시하는 검사가 더 문제다

현직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서 수차례 법치주의를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이들은 이제보니 검사들이었다. 피고인이 수사기록을 보도록 허락하라는 법원의 결정도 무시한 채, 자의적 판단으로 열람을 거부한 검찰은 법치주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검사가 법을 무시해도 되는 걸까. 내가 보기에는 검찰총장이 부끄러워해야 할 검사는 비리검사보다는 법을 무시하는 검사이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검찰이 바로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검사#검사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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