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기자회견을 할 당시에 버스를 타고 귀가중이었다. 서울시 중구에 소재한 YTN 건물을 지나다가 건물 앞 전광판에서 안철수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중계중이라서 재빨리 DMB를 틀었다. 물론 이미 전광판에 자막으로 사태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분명 그는 진심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의 진심이 전달되는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일전에 단일화가 파행 정국으로 내딪으며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했을때, 나는 민주당이 쇄신을 한다면 안철수는 아름다운 단일화를 위해서 후보직을 양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개인적인 바람이 아닌 예측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여론조사 문항때문에 여러차례 협상이 난항을 겪을때,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최후통첩'을 하기까지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입장을 거의 관철할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안철수라는 개인은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는 실천형 인간이기 때문에 의사에서 벤쳐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CEO 등의 환골탈태가 모두 성공적이었고, 고로 그는 대단한 자의식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가 '안철수 현상'이라고 대변되는 새정치에 대한 열망의 대변인이 된다고 하였을 적에,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 절대 타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고 그런 부분 때문에 대선 출마선언까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을 것이다. 현실의 구태에 조금이라도 타협하는 것은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이 개인적인 영달을 내던지고, 명성을 위협하면서까지 정치판에 뛰어드는 의미가 퇴색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일부 야권 지지자들이 비판하던 것처럼 영악하고 약삭빠르게 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타협할 수 없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나는 오늘 그의 눈물에서 비로소 여태까지 행보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안철수 후보의 오늘 사퇴의사 표명은 이러한 그의 정치입문 동기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철수 후보는 어제 문재인 후보와 단독회동에서 진전이 없자 오후일정을 취소하고 숙고한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가 오늘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과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 사이에 부단한 갈등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비로소 느끼고 오늘 큰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이러한 대승적인 결단에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법륜스님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스님이 (남북관계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과오를 언급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그때 당시 야당의 이회창 대표와 함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우리 언론에 발표했더라면, 보수언론이 "남북 좌파들끼리의 야합"정도로 규정하게 하는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현 이명박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이렇게 파탄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완전히 대입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니겠으나, 만약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단독회동을 통해서 양보를 하고, 같이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그 결정을 함께 발표했더라면 더할 나위없는 "아름다운 단일화"가 되었을 것이고, 정치 평론가들이 말하는, 지지세력의 교집합을 넓히는 단일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앞에도 말했지만 안철수의 숙고는, 민주통합당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간주하고, 구태세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진짜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는 심정으로 내린 것이라고 사료된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회견문에 나온 이와같은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을 것이다.
1.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루어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2.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 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안철수 후보는 억울한 심정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여태까지 민주당이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이용하려고 한 부분도 많았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여당행세를 하고, 야당에 걸맞지 않게 전투력도 없고 기득권에 안주한 한계가 많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의 행보에서 미루어 짐작할 때, 그가 새누리당보다는 그나마 민주당이 낫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야합을 위해서 권력을 쥐려고 한 정치공학적 판단이 아니라) 그가 말한 정치개혁을 위해서 야권 단일화를 한 것이라면, 그래서 민주당의 쇄신을 촉구한 것이라면, 그는 기자회견에서 아까 언급한 그런 표현은 삼갔어야 한다. 그리고 정녕 그가 야권 단일화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다면, 그가 스스로 "민주당이 집권하든 새누리당이 집권하든 새 정치는 아니다"라는 은유를 해서도, 그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의 열망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평을 해서도 안된다. 전자는 그가 독선적이라고 해석할 여지를 주고, 후자는 그의 지지자에게 크나큰 패배감을 안겨줄 것이다. 만약 그가 실로 야권 단일화를 소중히 여겼다면, 그의 지지자가 온전히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게끔 앞에 언급한대로 애매한 언행은 삼갔어야한다.
안철수는 대승적인 희생을 통해서 차기 대권후보 0순위가 되었다. 그에게 미심쩍다는 태도를 보여온 야권 지지자들도 이제 안철수의 진심을 알게되었다. 나는 그의 눈물에서, 그가 약삭빠르게 다음 대권을 위한 고도의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이번 대선을 소홀히 하고 차기 대권을 노릴 궁리가 아니라 그의 회견문 대로 그에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 결코 잊지 않겠다면,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 가겠노라면 그는 당장 문재인 후보와 머리를 맞대고 시지푸스처럼 민주당의 쇄신을 위해서, 정치권의 개혁을 위해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제 넘게 한 가지 더 지적을 하자면, 개인적으로 최소한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이 보여주는 비젼은 그에 걸맞는 현실적 방법론이 철저하게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정치의 부분에 있어서 안철수 후보가 처절한 자기성찰 없이, 단순히 이상주의자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그의 독선이고 한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몇몇 야권지지자들이 그에게 의구심을 품은 부분들에 대하여 안철수 후보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정말로 차기 대권후보 자격이 있는, 국민이 제일 신뢰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대의를 위해서 기자회견문에 어떠한 표현을 쓸지에 대해서 좀더 조심스러웠어야 한다.
안철수 후보는 5년을 더 기다리지 마시고 지금 당장 '새 정치'를 실현하시라. 안 후보는 차기 대권후보 0순위로 도약했지만 국민들은 5년간의 유신의 부활도, 5년간의 민주당의 과거 답습도 바라지 않는다. 국민은 안철수가 조광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을 다시한번 곱씹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정치의 대변인과 행동가가 되기 바란다. 정치개혁은 대통령만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만약 아까 언급한대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완벽하게 화작(化作)을 한다면, 민주당의 기득권에 안주나 새누리당의 횡포를 불구경하다가 5년 후에 대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인 안철수는 대통령 후보로서만이 아니라 국민을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당장 새 정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콧노래 부르지 않기 바란다. 쾌재를 부를 때가 아니다. 현재 안 좋은 이미지는 문재인 후보에게 돌아갔다. 새누리당은 벌써 "정치쇄신에 대한 '안철수식 실험' 노력이 민주통합당의 구태정치의 벽에 막혀 무산된 것"이라는 논평을 내고 안철수 지지자 이탈표를 흡수하려 하고있다. 민주통합당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절대 얻을 수 없고, 박근혜 후보는 더더욱 이길 수 없다. 설령 박근혜 후보를 이겨서 대권을 잡는다고 해도, 호남에서 여당행세를 하는 등의 구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5년 내에 국민이 심판할 것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내가 뭐라고 말할 위치는 아니지만 국민들은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도 안철수 지지자들이 많고 그들의 상심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서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안철수'라고 하는 개인이 단박에 이루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크나큰 오산이고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관심을 갖는만큼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모든 것이 바뀌고 그렇지 않는다고해서 "나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난 그들이 애초에 정치에 절실함이 없었던 것이라고 간주하고싶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말처럼 "생활스트레스의 근본은 정치"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안철수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고 안철수가 없으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안철수 후보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안철수 후보가 천명한대로 정권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을 지지하고, 그에게 민주당 쇄신을 요구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 실린 글을 약간 수정해서 개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