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집중 공략 대상은 박근혜 후보다."
4일 저녁 대선후보 첫 TV토론을 앞두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이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양자 대결로 압축된 이번 대선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TV토론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좋은 기회다.
지난 11월 말 선대위 안에 TV토론팀을 꾸린 이 후보는 3일 유세 활동을 잠시 중단한 채 토론 준비에 나섰다. 김미희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토론회 집중 공략 대상은 물론 박근혜 후보"라며 "새누리당이 거악의 본산이고 후보 본인이 정치쇄신 대상임을 강조하고 맹공을 퍼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 계획은 아니"라면서 "두 후보는 한미FTA 협정문 전문을 읽고 토론회에 참석해야 할 것"이라는 토론팀 관계자 말을 전했다. 두 후보 모두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미FTA 폐기 문제를 직접 거론해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는 의미다.
"진보정당 따라하는 건 좋은데... 박근혜는 '무늬만 반값등록금'"이상규 통합진보당 정책기획위원장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 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후보가 민중의 삶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골목상권 지키기, 친환경 급식, 농업 문제 등은 모두 한미FTA와 관련돼 있다"면서 "두 후보 모두 회색적 입장인데 한미FTA 폐기 없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건 거짓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달 22일 700쪽에 이르는 '18대 대선 정책공약집'을 발표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한미FTA 폐기부터 재벌개혁, 무상복지, 정치개혁에 이르기까지 20대 부문 108대 세부 과제들의 구체적 실천 방안과 재원 마련 방안까지 담았다.
이정희 후보는 요즘 '4가지 50%' 공약을 앞세운다. 현재 10% 수준에 머물고 있는 노조 조직률을 50%로 높이는 한편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만들고 쌀, 배추, 마늘, 사과, 배, 한우육 등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로 식량 자급률을 5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월소득 4천만 원이 넘는 고소득층에게 50% 소득세율을 적용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민주통합당은 물론 새누리당 같은 보수정당까지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 '진보 정책'을 따라하는 상황에서 한발 더 치고 나가겠다는 의미다. 실제 이정희 후보가 지난달 20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10대 핵심 공약을 박근혜-문재인 후보 공약과 비교해 보면 0∼5세 무상 보육과 국공보육시설 확대, 반값등록금 등 복지 관련 공약은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특히 문재인 후보와는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 관계에서 큰 시각차를 드러냈을 뿐 경제민주화 정책이나 '최저임금, 평균임금 50% 인상', '의료비 연간 100만 원 상한제' 같은 노동-복지 정책에서 구체적 목표치까지 일치했다.
이정희가 문재인 도우미? "문 후보 하기에 달려"
이상규 위원장은 "복지 확장,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을 진보정당이 선도하고 기성정당이 따라하는 건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박근혜 후보 '무늬만 반값등록금'은 국가 예산으로 사채놀이해 대학생 채무자를 양산하겠다는 것이고 검찰 개혁도 기소권 독점은 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토론회를 통해) 그런 정책 차이들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돼 있어 (진보 진영에) 하나의 꽃놀이패가 될 것"라고 덧붙였다.
실제 3자 구도로 진행된 지난 2002년 대선 TV 토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사이에서 '진보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박근혜 후보가 '색깔론'을 앞세워 두 후보를 싸잡아 비판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상규 위원장은 "선명한 진보 목소리가 나와 3자가 차별화되면 박근혜 후보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비쳐 문 후보에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 의도가 아니라 문 후보에게 달린 문제"라면서 "이 후보는 토론회에서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상대가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잘못을 지적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3자 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해 지지를 늘릴지 여부는 문 후보 자신에게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