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재일동포 유학생 장성희씨, 국내에 입국한 지 1년 반이 지난 성희씨는 현재 사무실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즐겨보는 그녀는 대한민국의 여느 20대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재외국민 선거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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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선거의 배경은 2007년 '국내에 있는 주민등록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으면서부터다. 이 변화의 흐름에는 재일동포 이건우씨가 있었다. 그는 재일국민 참정권 운동을 펼치며 공직선거법 규정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이에대해 '헌법불합치'을 결정해 이후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뤄졌다.
재외국민 선거는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재외국민도 자격조건을 갖춘 경우 투표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주민등록증이 없는 만 19세이상 재외국민들에게 대통령선거권과 국회의원 선거권, 지방선거권, 주민투표권이 인정되고 있다. 한 재일동포의 노력이 대한민국 선거 역사를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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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씨는 우리 국적을 가진 우리 국민이다. 내국인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점. 그리고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일본 특별영주자격을 갖고 있다는 점 정도다. 하지만 성희씨는 한국 사회에 공감대가 많다. 문화, 환경적인 면에서 특히 그랬다.
"한국 유학생활을 한 지 1년 반 정도 됐어요. 학교 사무실 일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평소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즐겨보는데, 드라마 속에서 88만원 세대란 말을 듣고 이해하게 됐어요. 그 88만원 세대란 표현은 저와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네요.(웃음)"2가지 일을 하는 바쁜 국내 유학생활, 하지만 성희씨가 '88만원 세대 급' 분주함 속에서도 빼놓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투표다. 성희씨는 지난 1년 반의 유학 생활 동안 2번(서울시장 재보선,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선거에 참여했다.
성희씨는 바로 내일 12월 19일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특별영주자격을 가진 재일동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재외국민 선거권을 인정받아 투표하는 첫 대통령 선거이기 때문이다. 성희씨가 그 의미에 대해 말한다.
"이번 선거는 (특별영주자격) 재일동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첫 투표이거든요. 저도 당연히 대통령 선거를 할 생각입니다. 대통령 후보자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선관위 우편물을 확인하고 있어요. 포털에 나오는 정치 기사들도 읽고 있어요. 마지막 TV 토론은 직접 봤어요. 흥미 있었습니다.(웃음)"내 생에 첫 대통령 선거, 국내거소신고 재외국민 열기 후끈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처음 진행된 재외국민투표(5일-11일)는 뜨거운 참여 열기 속에 진행됐다. 선거인 명부에 등재된 22만2389명 중 15만8235명이 참여해 71.2%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재외국민 투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마감까지 계속된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또 다른 재외국민 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국내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들의 투표가 그것이다. 이들은 일반유권자(내국인)와 같은 투표함에 투표하고, 개표해 의미를 더한다.
재외국민 국내거소신고 선거인, 6만9511명 |
재외국민 국내거소신고 선거인 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선거인 수는 6만9천511명이다. 이중 12월 19일 선거에 참여하는 숫자는 6만7천351명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이 이 숫자를 기사에 제대로 적시하지 못했다. 20여개 넘는 언론사 11월23일자 기사에서 재외국민 국내거소신고인 수를 6만7천782명으로 잘못 보도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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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거소신고 재외국민 7만5537명(2012.10월31일 법무부자료) 중 국내거소신고인 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6만9511명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이중 2160명은 재외국민투표를 통해 이미 투표를 끝내 놓은 상태이다. 12월 19일 선거에 참여하는 숫자는 6만7351명이다.
참여 열기는 뜨겁다. 재일동포 김겨레(29·서울대 인류학과 석사졸업)씨는 "재일동포들은 투표권이 없이 오래 살아왔습니다. 투표권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꼭 투표할 계획입니다"는 생각을 밝혔다.
국내에 거소신고를 한 재일동포(특별영주자격포함)는 1만2719명(2012.10월31일·법무부)이다. 이중, 1만 명 내외의 재일동포가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생활 15년차인 이순남(42·서울대국제대학원박사과정수료)씨도 그 중 한 명, 순남씨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투표를 할 계획이다. 순남씨는 특별영주자격을 가진 재일동포에게 선거권이 생긴 사실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재일동포들은 한국 국정과 일본 지방 참정권의 권리 자체가 없었죠. 한 번은 일본에 살 때 길을 걸어가는데 일본 선거 운동원이 투표하세요, 투표하세요 하고 붙잡는 거에요. 두 번, 세 번 그러는 통에 괴로웠습니다. 당시 '투표권을 줘야 하죠' 화를 냈습니다. 괴로운 상황은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대한민국은 2006년 5·31 지방선거부터 일정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 참정권(지방선거)을 줬다. 하지만 당시 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은 대한민국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투표에 참여한 외국인 친구까지 재일동포 순남씨에게 미안함을 표시할 정도였다.
"한국남자랑 결혼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일본인 친구가 재일동포인 저보다 먼저 대한민국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친구가 투표 후 미안하다는 말을 했죠. 그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언제 선거권 문제가 해결될까 생각했었습니다. 외국인도 누리는 국민의 선거권 권리를 누리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변화의 조짐은 2007년 6월에 있었다. '국내에 있는 주민등록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으면서부터다. 약 1년8개월 후인 2009년 2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내에 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들은 일반 국민들과 똑같은 투표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재일동포 순남씨는 첫 투표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설렜습니다. 입구에 들어가면서 신분 확인을 했는데 담당자가 처음에는 (명부를)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이번에도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해프닝이었습니다. 커튼 속 투표 장소에서 투표를 하는데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고 생각을 가졌습니다. 선거후 재일동포 주부들 사이의 인사말은 '투표했어?'가 될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순남씨는 지금 첫 대통령 투표를 앞두고 좋은 후보를 고르기 위해 공부 중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온 우편물은 물론 TV 뉴스 등을 빠짐없이 보고 있다. 또 각 후보들의 동포정책을 살피고 있다. 이상적인 후보를 찾아 투표할 계획이다.
재일동포 유임씨와 겨레씨의 첫 투표,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 의무'
재일동포 김겨레씨. 겨레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살아도 조국을 잊지 말아라'라는 뜻으로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겨레씨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국내대학(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일본에 살면서 조국 언어와 문화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사람이 되려면 조국의 언어를 알아야 된다는 조언을 듣고, 일본 대학 대신 한국 대학을 택했습니다." 한국 생활 초기에는 정체성의 혼란도 겪었다. 한국 생활 10년차인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국민'으로 어울리지 못했다. 이방인이란 생각과 한국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겨레씨에게 선거권은 정체성을 찾는 좋은 계기였다.
"선거권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 사람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지도자를 뽑는데 참여하게 되네요. 국민의 권리이고, 재일동포 가족들에 영향을 끼칠 권리라 책임감을 가져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겨레씨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후보를 선택할 계획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래 지향적이되 통일과 해외동포들에게 배려가 있는 후보를 선택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생활 4년차인 이유임(23·연세대학교)씨에게도 투표의 의미는 남다르다. 유임씨는 내국인 친구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듣고 느끼면서, 자신 역시 정치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재일동포 유임씨에게 그동안 선거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선거는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사실 예전에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선거를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별한 감정은 없었죠. 하지만 선거를 하고 나니깐 나도 할 수 있네.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한국에서 첫 선거 때는 투표소 인증 샷을 찍기도 했습니다."유임씨는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다. 대학교 시험이 오후 3시에 끝나지만, 시험이 끝나자마자 곧장 투표소로 향할 생각이다. 열성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이유, 유임씨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그땐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투표는 국민의 의무라 생각해요. 대통령 후보들의 계획을 살펴본 후, 한 명의 국민으로 선택을 하겠습니다."특별영주자격 재일동포의 첫 대통령 선거, '이번에도 울진 않겠죠?'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선거권의 권리. 하지만 (특별영주자격) 재일동포들은 그 당연한 권리를 반세기 넘게 얻지 못했다. 차별에 맞선 선거권을 얻어낸 재일동포들에게 2012년 첫 '대통령 선거'는 역사의 증표와 같다.
그래서일까. 김겨레씨는 '자신에게 투표란 책임'이라고 전했다. 김순남씨는 '현재진형형의역사'라고 했다. 이유임씨는 '투표는 미래'라고 말했다. 재일동포들에게 투표란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한 재일동포가 투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투표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지는 일반유권자(내국인)들이 한 번쯤 되새길 말이다.
"투표권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단 한 번도 선거를 하지 못하고 투표 권리 없이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식민지 역사 때문에 재일동포들 역시 그동안 투표권을 행사 못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국민들이 놀러를 가시더라도 한 표를 행사하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투표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세요." (김순남)2012년 12월19일. 재일동포 성희씨는 생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나선다. 88만원 세대에게는 꿀 맛 같은 휴일이지만, 휴식 대신 룸메이트와 함께 투표소로 향할 계획이다. 앞선 2번의 선거에서 투표 후 울었다는 성희씨, 이번에도 눈물이 나올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국에 온 1년 반 동안 2번 모두 투표를 하고 난 후에 울었어요. 너무 기뻤는데 그냥 한편으로 슬펐어요. 12월 19일 대선 투표 날 또 울까 걱정이에요. 이제 익숙해져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또 울 것 같긴 해요."투표하는 것 자체로 눈물이 나는 사람들, 2012 대통령 선거는 재일동포의 험난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재일동포 성희씨에게 투표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권리"라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이유를 물었다. 성희씨의 대답은 오래도록 기자의 귓가에 맴돌았다.
"전쟁이나 식민지 시대가 없었으면 저는 당연히 한국에서 태어났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