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전날, 한파가 몰아닥친 종로구 창신동의 동대문 쪽방촌 골목이 산타 모자를 쓴 이들로 북적였다. 7살 어린 아이부터 50대까지 세대도 다양했다. 늘픔약사회에서 주최한 '약사, 약대생과 함께하는 따뜻한 연말보내기-쪽방산타' 봉사활동을 위해서다.
약사회에서 주최했지만, 약사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약대생이자 늘픔 동아리인 여자친구를 따라 의미 있는 데이트를 선택한 20대 대학생, 약사인 엄마를 따라 봉사 나들이에 나선 온가족, 늘픔약사회 회원인 언니의 권유로 온 동생과 친척 등 이유와 관계도 다양했다. OT(이하 오티·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모인 인원만 봐도 얼추 5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쪽방촌에는 아프신 분들이 많으니까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은 편이에요. 문제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정작 치료를 못 받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의료 보험비를 못 내서 병원에는 갈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약국을 찾는 비율이 높은 편이죠."
2시 오티에서는 늘픔약사회 대표인 장보현 약사(27)의 쪽방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있었다. 그는 쪽방의 정의를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쪽방을 '도심 인근이나 역 근처에 위치하며 1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이라고 정의 내렸다. 쪽방의 법적 정의는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곳이 이곳 쪽방이라고도 했다.
늘픔약사회 회원들은 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매달 정기적으로 두 번 이곳 동대문 쪽방촌을 방문해 건강상담과 투약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탄가스, 영양제, 가정상비약, 떡 등을 지원하는데 쪽방산타 봉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가 2년째다. 쪽방촌 주민들은 쪽방 안에서 요리해 먹기 때문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부탄가스와, 영양공급이 불충분해 질병에 걸리기 쉬운 점을 해소하기 위해 비타민 영양제를 전달하게 됐다.
오후 3시,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 쪽방산타들은 4~5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한파가 덮친 스산한 창신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산타주머니와 카트에는 선물을 한 아름씩 가득 실었다. 동대문 쪽방촌 총 320명에게 모든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었다.
우리조가 배정받은 인원은 총 30명, 쪽방촌 지도를 살펴보던 조장 민지원 약사(27)는 "우리 조는 좀 빡세겠네요, 윗마을에 배정됐어요"라고 말했다. 윗마을, 아랫마을이 무슨 말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의문은 금세 풀렸다. 하지만 글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사진으로 표현할 방법도 찾지 못했다. 한 건물에 1명이 겨우 누울 정도의 작은 방들이 90도에 가까운 경사의 계단 사이사이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설명이 될까?
낡고 삐걱거리는 계단은 불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 미로처럼 엉켜있었다. 비타민제와 부탄가스 한 줄, 백설기, 가정상비약 이렇게 한 세트를 품에 안고 우리는 위태롭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추운데 고생하십니다.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추운데...""저희 약사들 모임에서 연말이라 드릴 것들을 좀 가져왔어요. 비타민제는 하루에 한 알씩 드시면 되고요. 방은 좀 따뜻한가요?""추워서 나가질 못해요. 불편할 텐데 여기까지 가져다주고. 너무 고마워요." 사전에 배부된 알림장을 주민에게 받아 우리가 가진 명단과 대조한 뒤 정확한 개수만큼 선물을 드리고 확인서명까지 받으면 1명의 선물전달이 끝난다. 시간 내 30명의 집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대화는 나눌 틈이 없었다.
"추운데 장갑 끼고 해~ 내 장갑 줄까? 장갑 나한테 많이 있는데"
"우리 집은 언제 와? 빨리 와~" "여기 할아버지 몸 아파서 못 내려와요, 내가 대신 받아갈게. 여기" 삶도 팍팍하고, 환경도 팍팍한 이곳에서 의외로 장난스럽고 따뜻한 대화들이 오갔다. 맨손에 차트를 뒤적이는 나에게 장갑을 건네는 아주머니, 빨리 받고 싶다며 괜히 옆에 서서 기다리는 할아버지, 윗집의 다른 분을 위해 대신 받으러 오는 아저씨.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이곳에 적어도 공동체는 남았구나 싶어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몇 년에 걸친 늘픔의 활동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도 같다는 뿌듯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머니 그런데 투표는 하셨어요?" "했지!" "몇 번한테 하셨는데요?" "여기는 1번이야. 정신 똑바른 사람들은 1번 찍고, 좀 특이하거나 못된 놈이 2번 찍어!"이번 선거에서 마음에 크게 남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파출부는 박근혜에게 투표하고, 그 집주인은 문재인에게 투표했다"는 계급배반투표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보건의료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늘픔이 몇 년이나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이곳 쪽방촌의 선택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여유가 생긴 이후로는 집집마다 물었다. 투표는 하셨는지, 누구에게 하셨는지, 이곳 분위기는 어떤지.
주민등록증이 있는 대부분 주민들은 투표를 한 것 같았다. "투표할 수 없는 사람 빼고 모두 투표했다"는 말이 실감이 됐다. 한 아주머니는 옆집 아저씨가 이번 참에 주민등록증도 만들고 투표도 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 아주머니도 1번을 찍었다. 이유를 물으니 "여자가 돼야지, 여자가 되는 게 좋아"라고 말했다. 여자가 돼야 좋다는 이야기는 이웃 할아버지의 입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못된 놈이 2번을 찍는다고 이야기했던 60대의 아주머니에게도 이유를 물었다. "TV를 매일 봤는데 1번을 찍어야겠"더라며 1번이 대통령이 된 것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딱 한 명, 2번을 찍었다는 40대의 남성은 "1번의 아버지가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2번을 찍었다고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가 말했던 특이하거나 못된 놈이었다. 슬프게도 전라도 출신임을 대화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곳 창신동 쪽방촌, 우리조가 배정받은 30명의 쪽방촌 주민 중 50대 이하는 2명 밖에 없었다. 대부분 1번을 찍었다는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이곳 쪽방촌에 몰려있었다. 그리고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쪽방의 한 켠에는 TV가 꼭 놓여있었다. 독한 겨울, 난방도 안 되는 이곳 쪽방에서 그들은 TV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지난 10월 직접 이곳에 방문했던 문재인 후보보다 더 중요한 그들의 생활이었다. 대선 직후 멘붕에 빠진 사람들이 국민방송국 설립, 진보매체 후원 등으로 돌파구를 찾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분명해진 우리의 현주소에 더 실망했다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쪽방촌을 직접 방문한 후보, 매달 두 번씩 쪽방촌에 봉사를 온 약사들이 지지했던 정책이나 후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생활의 일부인 저 네모상자로구나. 그 네모상자는 그들의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그렇게 직접 마주한 현실은 여느 기사에서 접했던 것보다 더 큰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쪽방산타활동을 마치고는 함께 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소감을 나눴다.
"고려대 약대 12학번입니다. 고등학교 때 억지로 하던 봉사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온 첫 번째 봉사였는데요. 앞으로도 봉사하는 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늘픔동아리라 매달 쪽방에 왔었는데요, 이번 쪽방산타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이면 바뀔 수 있는지를 느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조수월 약사입니다. 제가 76학번이니까 올해 56입니다. 제가 청년시절 87년도에 약사들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이런 활동을 했어요. 그 당시에도 노동자, 농민 등 빈민들을 위한 투약활동을 했지요. 2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쩌면 더 열악한이런 삶이 있다는 게 가슴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해나가는 후배들이 있어 참 고마웠어요. 많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래도 여기, 내 삶의 현장과 지향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임이 있다. 공동체를 지향하고 개인소유가 아닌 수입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여 함께 나누려는 약사들의 모임이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매달 네모난 쪽방의 네모난 TV 속에 갇힌 그들을 만나고 소통하려 할 것이다. 이제 적나라한 현실도 알았으니 새로운 방향도 모색할 것이다.
"선거 전까지 후원금도 잘 안 모이고 신청자도 별로 없어 가슴 졸였는데 선거 끝나고 다들 허하셨는지 많이 오셨네요. 후원금도 많이 모였습니다. 이후에도 일상적인 도움과 연대 부탁드려요." 쪽방기획단이었던 늘픔약사회 박상원 약사(27)의 소감이다. 대선멘붕의 힐링을 진보매체의 후원으로 전환시키던 시민들의 힘은 이곳 늘픔과 쪽방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제는 정말,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