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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최전방인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에 위치한 애기봉. 이곳은 지난 2010년부터 때아닌 유명세를 탔다. 그해 12월 21일, 국방부는 애기봉 성탄트리에 불을 켰다. 이 대형 성탄트리 점등에 대해 북한은 "반공화국 심리모략전을 중단하라"며 분노했다. 그리고 2년 뒤인 지난 해 12월 22일, 탈북난민북한구원한국교회연합을 비롯한 4개 단체가 다시금 애기봉 트리에 점등을 했다.

북한의 반응은 2년 전과 거의 같다. 대체 애기봉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주민들의 입장은 어떨까. 기자는 그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해 12월 28일과 29일, 이틀 연속으로 김포를 방문했다.

첫날이었던 28일, 이적(56) 목사를 만났다. 그는 애기봉 점등 문제 관련 기사마다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애기봉 인근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에 위치한 '민통선 평화교회'의 목사다. 애기봉 근처인 월곶면 군하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기자를 태운 채 운전하면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애기봉 점등은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4년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때 양측의 상호비방 및 심리전 중단을 합의하면서 이후 6년 동안 점등을 안 했어. 그러다가 재작년부터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다시 점등을 했지. 연평도 포격사건도 있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말야. 정부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북한은 반드시 또 포를 쏠 거야. 포를 쏘면 불 켠 자들(점등한 보수단체 및 그 뒤의 정부와 군)은 아무 일도 없겠지. 하지만 애기봉 인근 가금리, 용강리, 조강리 주민들은 다 죽는 건 물론이고 남북 간에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말란 법 없어."

휴전선과 그 뒤의 이북 땅 차를 타고 군하리에서 얼마 이동하지 않았는데 휴전선이 보였다. 이북 땅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가까웠다. 휴전선 너머의 땅은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휴전선과 그 뒤의 이북 땅차를 타고 군하리에서 얼마 이동하지 않았는데 휴전선이 보였다. 이북 땅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가까웠다. 휴전선 너머의 땅은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 강선일

이윽고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얼마 안 갔는데 철조망이 보였다. 이 목사는 그게 휴전선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상상 이상으로 매우 가까웠다. 휴전선 바로 뒤쪽으로 이북 땅이 보였다. 만약 북한에서 정말로 포를 쏜다면, 기자가 왔던 군하리 등 휴전선 뒤쪽 마을들은 2010년의 연평도처럼 불바다가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이 목사는 어느 언덕배기 옆 도로에 차를 세우더니 말했다. 눈 앞에 보인 팻말엔 '쌍룡대로'라 적혀 있었다.

탈북단체들이 전단을 살포한 쌍룡대로 이적 목사는 이곳에서 몇몇 단체들이 국방부의 보호하에 대북 전단을 몰래 살포했다고 말했다.
탈북단체들이 전단을 살포한 쌍룡대로이적 목사는 이곳에서 몇몇 단체들이 국방부의 보호하에 대북 전단을 몰래 살포했다고 말했다. ⓒ 강선일

"여기가 반북단체들이 (지난 10월 25일에) 대북 전단을 뿌린 곳이야. 국방부가 여기서 뿌리라고 장소도 알려주고 뒤도 봐주고 그랬어. 덕분에 반북단체들은 주민들 모르게 여기서 대북 전단 살포를 시도했지. 북한이 그거에 대해 계속 조준격파 사격하겠다는데 말야. 주민들은 그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할 때마다 얼마나 불안해하나 몰라. 이 나라 국방부는 주민들 안전은 뒷전이야. 어느 나라 국방부인지 모르겠어."

지상철(58) 씨는 부인과 함께 강화대교 바로 옆 곰탕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집은 몇몇 지상파 방송 맛집 프로그램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식당엔 방송에 나온 지씨의 사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유명한 맛집이고, 강화대교 바로 옆이란 좋은 입지에도 불구하고 저녁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씨는 계속해서 이명박 정부와 점등 주체세력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그 놈들(점등 주체세력) 22일날 점등 행사 후딱 하고 산 밑으로 내려가면서 뭐라 했는지 알아요? '30분만 불 꺼라' 이랬대요. 그러니까 지들도 북한에서 포 쏠까봐 무서워서 도망가는 동안만 불 꺼라고 한 거지. 그리고 걔네 도망가고 30분 있다가 다시 불 켰어요.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 김포 지역 주민들만 고생합니다."

지씨는 2008년부터 식당 영업을 했다. 방송도 타고 할 정도니 장사는 잘 된 편이었다. 그러나 "남북 갈등이 고조되면서 식당 손님도 확 줄고 인근 문수산 등산객도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고 해서 민간인 사찰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점등을 하고 전단을 살포하는 이런 상황에서 죽어나가는 건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이란 말을 덧붙였다.

이튿날, 폭설을 뚫고 애기봉 전망대에 올랐다. 원래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폭설로 인해 택시가 다니기 힘들 정도여서 중간에 내려 걸어서 올라갔다. 20분 정도 눈길을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긴장된 눈초리로 전망대 일대를 분주히 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한도 여기 동향을 주시하고 있을테니 병사들 입장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애석하게도 전날보다 날이 너무 흐려서 북녘 땅은 전혀 안 보였다. 오리무중이었다. 마치 현재의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애기봉 전망대 전망대 뒤에 성탄트리 꼭대기가 보인다.
애기봉 전망대전망대 뒤에 성탄트리 꼭대기가 보인다. ⓒ 강선일

전망대 내부에서 바라본 북녘 폭설과 흐린 날씨로 앞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오리무중. 그야말로 현재 남북관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전망대 내부에서 바라본 북녘폭설과 흐린 날씨로 앞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오리무중. 그야말로 현재 남북관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 강선일

전망대 일대를 간단히 둘러보고 그 길로 농민 김용태씨를 만났다. 그는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지난 22일 점등하려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애기봉 입구에서 동네 주민 70~80여 명과 함께 3개 중대 규모 전경들과의 충돌 과정에서 손을 다친 것이다.

"저는 정치는 잘 모르는 평범한 농민이고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번 성탄절 직전 대림절(성탄절 직전 4주 간 예수의 성스러운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심신을 경건히 하는 기간) 동안 마음을 다스리며 평화롭게 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이어 또 저렇게 점등을 하면서 지역민들 불안을 가중시키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나가 싸우다 이렇게 됐죠."

그는 이어 "우리에겐 평화롭게 농사지을 권리가 있다. 저들이 저런 행동(점등 및 전단 살포)을 계속 하면 우리 같은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 저번에 김포에서 뿌린 대북 전단 중 거의 대부분이 북에까지 가지도 못했다. 전단을 담은 풍선 중 일부가 동네 논두렁에 떨어졌다. 전단 뿌리는 건 그 자들이고 치우는 건 그걸 반대하는 우리다"라고 말했다.

 애기봉 인근에 거주하는 농민 김용태씨는 점등을 막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손을 다쳤다. 그는 "우리에겐 평화롭게 농사지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애기봉 인근에 거주하는 농민 김용태씨는 점등을 막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손을 다쳤다. 그는 "우리에겐 평화롭게 농사지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 강선일

마지막으로 군하리 식당에서 만난 김대훈씨는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밝혔다. 음악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음악만 하게 두지 않았다. "유정복(새누리당 의원, 김포시)씨는 점등하는 걸 점등 직전까지 몰랐단다. 진짜 모른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1월 1일날 문수산 정상에서 신년맞이 행사한다는데 그때 점등 관련해서 항의하는 집회라도 하려구."

그는 이번 대선에서 김포 지역의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의 두 배였다고 했다. 그러니까 만약 점등 및 전단 살포 등으로 자극받은 북한이 실제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현 대통령과 같은 정당의 박근혜 당선자를 지지한 김포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다.

김대훈씨는 지난 10월 22일 임진각에서 몇몇 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시도할 때, 경찰이 처음엔 허가했다가 결국 막았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 외신기자들도 많이 왔다. 후에 들은 거지만, 실제로 북한이 전단 살포 시도 당시 임진각 쪽을 향해 포문을 개방했다고 한다. 남측도 그에 맞서 포문을 개방하고.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외신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런데 결국 경찰 측이 전단 살포를 막았다. 내 예상으론, 그런 상황을 전체적으로 확인한 미국의 압력이 있었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은 애기봉에 점등한 현재 상황에서도 북한은 군사적 행동을 안 할 거란 보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2년 12월의 애기봉은 너무나 추웠다. 날씨만 추웠던 게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경색된 남북관계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마저 춥고 음산하게 만들었다. 주민들은 해가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 이 순간에도 불안감에 떨고 있다. 불이 켜진 성탄트리로 인해 언제 포탄이 날아오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새해엔 이 '오리무중'과도 같은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것인가.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이적 목사가 몸담고 있는 민통선 평화교회 입구엔 '남북 긴장 조성, 점등행사 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적 목사가 몸담고 있는 민통선 평화교회 입구엔 '남북 긴장 조성, 점등행사 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 강선일



#애기봉#김포#탈북난민북한구원한국교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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