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
<오마이뉴스>가 연속 보도하고 있는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 탄압이 이마트 차원을 넘어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계획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세계는 노조가 설립되면 단체교섭을 지연시키는 시나리오까지 전 계열사에 내릴 정도로 치밀함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이마트뿐 아니라 신세계 그룹 거의 모든 계열사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불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마이뉴스>는 2011년 6월 23일 신세계가 작성한 내부 문서 2개를 확보했다. 제목은 '각사 복수노조 준비현황 점검결과'와 '복수노조 관련 참고 Solution(해결방안)'이다. 이 시기는 그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복수노조 시대를 1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 문서는 계열사 간부급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그해 6월 7일부터 15일까지 호텔을 제외한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고 밝히고 있다. 해당 계열사는 이마트를 비롯해 신세계 백화점, 신세계 건설, 스타벅스, 신세계 푸드, 신세계 SI(온라인몰), 신세계 I&C(IT 서비스), 신세계SVN(베이커리), 신세계 첼시(아울렛), 신세계 L&B(와인수입업체) 등 10개사다.
'필수 핵심 준비과제'에 이마트에서 벌어진 내용 동일하게 수록
18페이지짜리 '각사 복수노조 준비현황 점검결과'를 살펴보면, 각사별 "필수 핵심 준비과제"로 논란이 된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대응 전국조직 구축 등의 내용이 동일하게 들어가있다.
'MJ(문제)/KS(관심) 인력관리' 항목에서 ▲ 인물정보 분석 및 DB 구축 ▲ 대상자 선정(List-up) ▲ 특성 그룹과 지인관계 맵핑(Mapping) ▲ 동향파악/관찰자/기록관리를 명시했다. 이마트가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의 주변인물에 대해 친밀도를 작성하고 대상자들의 사생활 부분까지 감시한 것과 일치한다.(관련기사 :
회사가 당신의 여자친구를 들여다본다면?)
또 '대응 조직체계 준비' 항목을 보면 ▲ 상황조(전략, 지침, 지휘소) ▲ 정보조(실체파악, 정보수집) ▲ 대응조(행동 대응) ▲ 채증조(증거확보, 동태확인) ▲ 면담조 등 대응조직을 구축해 행동지침을 교육하고 도상훈련 실시 여부까지 각 사별로 점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이마트 전국적 노조 대응조직과 거의 일치한다. (관련기사 :
'아이디 찾기'로 직원들 노조가입 감시)
직원 사찰과 노조 대응조직 준비 지시는 또 다른 문서인 '복수노조 관련 참고 Solution'에도 상세히 나와 있다. 38페이지에 이르는 이 문서에는 구체적인 직원 면담 기술 등 행동 매뉴얼까지 첨부돼 있다. 승진누락자, 저연봉자, 장기 병가자, 가정사와 금전 문제가 있는 자 등 광범위한 이유로 문제 사원을 선정하고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가입자 조치요령 가이드'에서 핵심이 아닌 주변 가담자의 경우 "NJ(노조) 한계 및 분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 확산"이라고 명시했다.
이 두 문서는 단순한 계획 문서가 아니라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계열사의 준비현황을 '점검'한 결과 문서라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마트뿐 아니라 신세계 백화점과 스타벅스 같은 다른 계열사에도 직원들에 대한 사찰과 미행을 시행하는 조직이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 계획 아닌 점검 문서... 다른 계열사에도 실행 가능성 높아
신세계는 계열사에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단체교섭 요청에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지연하는 계획까지 지시했다.
'복수노조 관련 참고 Solution'에 수록된 '단체교섭 지연 시나리오'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로 노조법상 근로자(사용자) 해당성 문제, 즉 해당 조합의 조합원이 신세계 직원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며 미루는 것이다. 이 부분이 확인되고 또다시 단체교섭 요청이 오게 되면 '법내 노조 해당성 문제', 즉 노조가 행정관청의 설립필증을 받은 정식노조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교섭을 지연시킨다.
조합원이 신세계 노동자임이 확인되고 법적으로도 정식노조인 것이 드러나도 신세계 측은 또다시 교섭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제시했다. 임시주주총회, 해외출장, 전략회의 등 '경영상의 이유'가 그 방법이다.
이렇게 사전에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고의적으로 단체교섭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다. 신세계는 이러한 계획을 세우며 "부당노동행위 등 법률적 문제 최소화 원칙"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노조법상 불법의 소지가 있다.
실제 진행되고 있는 단체교섭 지연
신세계의 단체교섭 지연 시나리오는 실제로 시행됐음이 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이 문서에는 교섭지연의 예시로 지난 2011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신세계백화점 측이 주고받은 공문이 담겨있다.
2011년 6월 28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신세계 백화점에 단체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자, 이에 신세계 측은 노조가 법률상 허가된 노조인지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7월 1일 자)을 보내 교섭을 연기한다. 그다음에는 조합의 임원과 조합원의 명단을 요청하는 공문(7월 3일 자), 경영상의 이유로 교섭불응을 통보하는 공문(7월 10일 자)이 들어가 있다. 모두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마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23일 전수찬 위원장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마트노동조합은 설립 이후 네 차례 교섭 요청을 했으나 이마트는 응하지 않고 있다. 전 위원장에 따르면, 사측은 1차 교섭요청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2차 교섭요청에는 전 위원장을 비롯해 2명이 해고 상태임을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3차에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거부했으며, 내용증명으로 보낸 4차 교섭에는 18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신세계, 내부 자료 인정... "관련자 문책할 것"신세계 측은 이 문서에 대해 내부에서 작성된 사실을 인정했다.
신세계 그룹 관계자는 "복수 노조에 대비해서 회사에서 작성된 내부 문서는 맞으나, 경영진의 방침과 달리 무리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향후 자체 조사와 감사를 통해서 관련자 문책과 징계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