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3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드르르륵, 드르르륵'.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가자 재봉틀 소리가 들린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색색의 앞치마를 두른 40~50대 여성 5명이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채옥림(53), 최영순(47), 안경숙(56)씨가 박음질을 하면, 한경아(51), 황지연(45)씨가 다림질과 포장을 한다. 한경아씨는 "갑자기 400장 주문이 들어왔다"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작업장 한쪽 벽면에는 알록달록한 무늬의 면생리대가 전시되어있다. 장바구니와 면생리대는 이들의 '주력상품'이다. 앞치마, 면행주, 수저집, 컵주머니, 에코백,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장바구니, 돗자리 등도 만든다. 이곳은 여성친화 마을기업 '목화송이'다.
"써보니까 너무 좋아서" 아줌마 3명, 10만원씩 모아서 시작
지난 1월 29일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목화송이 작업장을 찾았다. 같은 건물 1층에는 아름다운 가게, 2층에는 또 다른 도봉구 마을기업인 '세움카페'가 위치해있다. 세움카페에서는 지적장애인 청소년들이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를 만든다. 세움카페와 목화송이는 지난 2011년 도봉구 마을기업 1호로 선정되었다.
"조합원들끼리 써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한경아씨는 2005년 면생리대를 처음 접했던 때를 떠올렸다.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 조합원이었던 한씨는 '피자매연대'에서 면생리대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됐다. 환경보호와 여성건강을 위해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생리대를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나타나던 때였다. 첫 생리를 시작한 딸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었던 한씨는 "처음에는 쌍문 한살림 매장에 면생리대를 조금씩 진열을 해놓고 지역주민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이듬해 한씨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워커즈 컬렉티브(Worker's collective)'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에서 시작된 '워커즈 컬렉티브'는 '공동투자', '공동경영', '공동책임'을 기본으로 하고 수익 역시 똑같이 나누는 대안적 노동 방식을 뜻한다. '워커즈 컬렉티브'에서는 모두가 대표이자, 노동자다. 평범한 아줌마였던 한씨는 다른 3명의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 목화송이의 '공동대표'가 된다. 작업실은 강북구 미아동 주민센터 지하. 출자금은 1인당 10만원이었다.
"한 달에 만원씩 가져가면서 일했어요. 못 가져갈 때도 많았죠. 그래도 보급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주말마다 벼룩시장 찾아가서 면생리대 만들기 교육도 하고. 지하작업실이라 환경은 열악하고, 수입은 안 되고. 워커들도 일하러 들어왔다가 그만두고, 들어왔다가 그만두고...힘들었죠."(한경아 공동대표) 사업에 활로가 열린 것은 2009년. 한살림에 '목화송이'가 만든 장바구니가 물품으로 등록되면서부터다. 워커 4명이 400만원씩 출자해 강북구 삼양동 주택가에 14평 규모의 작업장을 얻었다. 한경아 공동대표는 "밤을 새서라도 납품일은 꼭 지켰다"고 말했다. 이렇게 쌓은 신뢰는 면생리대 물품화로 이어진다. 한살림의 전국 151개 매장(2012년 11월 현재)에 '목화송이' 면생리대를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품 등록을 위해 필요한 식약청 허가를 위해서는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이미 각 400만원을 출자한 상황에서 또 다시 추가비용을 내는 것은 부담이었다. 다행히 지식경제부 공모사업인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식약청 허가도 얻었다.
지역 취약계층 직원으로 채용...하루 7시간, 주5일 근무 원칙
현재 목화송이는 한 달에 장바구니 1600개, 면생리대 800개를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한 셈.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경아 대표는 마을기업 협의체 회의를 위해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중랑구 마을기업 70곳에 연락을 돌렸다. 그런데 절반 이상이 연락이 안 되거나 마을기업 문을 닫은 상태였다. 십여 군데의 마을기업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지원금이 끊기면 어떻게 사업을 유지할 것인가'였다고 한다.
한경아 대표는 "정부나 시에서 돈만 2년 동안 주고, '그 다음에는 당신들이 알아서 서라'고 하기 보다는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마을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감이 늘어나면서 목화송이는 지역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장애인, 노인 등 지역 내 취약계층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 도봉자활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2명은 정직원으로 채용했고, 2명은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재택근무, 아르바이트 형태로 근무하는 주민들도 있다.
황지연 공동대표는 "저희는 하루 7시간 주 5일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면서 "일이 험하지 않고 다 여성들이니까 자활센터에서 많이 소개시켜준다"고 말했다. '행복한 일자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목화송이의 캐치 프레이즈다. 실밥 따기, 뒤집기 등 단순한 작업은 지역 주민들에게 부업으로 맡긴다.
자활센터를 통해 목화송이에 취직하게 된 최영순씨는 이곳에서 일한지 3년째다. 최씨는 "이전에 한복 만드는 일을 했는데 뭔가 만들고 이런 일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됐다"면서 "누가 일 빨리하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꼼꼼하게만 하면 되니까 즐겁다"고 말했다.
안경숙씨는 지난해 3월부터 목화송이 일꾼이 되었다.
"30년 동안 서점을 했는데 적자가 누적이 돼서 접었어요. 남편이 장애가 있어서 제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어디 받아주는 데가 있나요. 고민하다가 이곳을 소개받았어요. 영리를 목적으로 했다면 물량을 많이 소화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었을텐데 여기는 '사람이 편해야 한다'고 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브라질·아프리카 공정무역 목화로 면생리대 만들고싶다"목화송이는 지난해 서울시 마을기업 공간지원금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 무이자, 5년 이내 상환조건으로 임대보증금 1억 원을 지원받았다. 오는 2월 1일, 목화송이는 지하 작업장을 떠나 지상 2층에 위치한 작업장으로 이전한다. 작업공간도 25평에서 50평으로 2배로 커진다. 최영순씨는 "지하에 있으면서 밖에 해가 떴는지 졌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이제는 알 수 있겠다"면서 기뻐했다.
작업장 이전과 함께 목화송이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한살림 '워커즈 컬렉티브' 형태가 아닌 협동조합형 마을기업으로 전환하는 것. 안경숙씨를 비롯해 현재 목화송이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조합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현재 목화송이의 월매출은 1200만원. 순이익을 묻자 한경아 대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대표 포함 직원 7명의 인건비와 재료비, 유지비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것. 한 대표는 "앞으로는 인터넷 판매 등 영업을 다각화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마침, 홍보컨설팅 업체에 몸담았던 황지연 공동대표가 지난 1일부터 목화송이에 합류했다. 한경아 대표와 함께 대안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게 됐다는 황 대표는 "이전부터 목화송이의 활동을 응원해왔고 컨설팅도 해줬는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서 목화송이에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경아 대표는 "저는 컴맹인데 황 대표가
블로그도 만들어주고 홍보 쪽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살림에만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제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자신있느냐'는 질문에 두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연 대표는 "한살림 조합원들이 7년을 써보고 검증이 되어서 나온 제품"이라면서 "제대로 만들었고, 가격도 다른 제품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수입은 공익을 위해서도 쓰일 예정이다. 지난해 목화송이는 라오스에 있는 여성들에게 면생리대를 보냈다. 한경아 대표는 "북한 여성들, 아프리카 여성들에게도 지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탐즈 슈즈처럼 1+1으로 면생리대 하나를 사면, 하나는 북한이나 아프리카에 보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2배로 넓어진 작업장 역시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황지연 대표는 "바느질 카페를 열어서 지역주민들이 와서 정보도 공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의 거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화송이는 더 큰 꿈도 가지고 있다. 브라질, 아프리카 등에서 목화를 공정무역으로 들여와 면생리대를 만드는 것. '목화처럼 따뜻하게 모여서 재미있게 일하고 같이 살자'. 목화송이 상호 뜻과 참 잘 어울리는 행보다.
"설 연휴도 짧은데...연휴 전날 근무하나요?"
"8일? 금요일부터 노는 걸로 해.(웃음)" 지난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자리 잡은 마을기업, A카페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짧은 설 연휴지만 하루 앞 당겨 쉴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직원들은 웃었다. 이날은 김혜미(49) 대표를 비롯해 최수경(42), 소은영(46), 김혜영(46)씨가 모여 2월 근무 시간표를 짜는 시간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오전·오후 5시간이 한 타임이 돼 한 명씩 카페를 지킨다.
시간표는 짰지만 40대 가정 주부인 그들에게 약속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갑작스럽게 집안일이 생기면 그들은 서로를 '땜빵'해 준다. 융통성 있게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들에게 카페는 좋은 일자리이자 사랑방이 된다.
독거노인 반찬나눔 봉사하던 주부들, 바리스타되다 카페 총무인 최수경씨는 카페에서 생활의 활력소를 느낀다. 10년 넘게 집안일만 했지만 이 곳에서 커피도 내리고 사회활동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또 카페 근무로 받는 30만원 가량의 돈은 아이에게 용돈도 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게 해 준다.
"신랑이 늦게 들어온다고 싫어하는 것만 빼면 다 좋아요. 백수가 더 바쁘다는 그 말, 이제 알 것 같아요" A카페는 지난 2011년 11월,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문을 열었다. A카페라는 이름은 서대문 일대에 A부터 Z까지 마을카페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졌다. 서대문구 일대에서 독거노인 반찬나눔 등 봉사 활동을 벌이던 김혜미 사랑나눔봉사센터 대표가 주축이 됐다. 김 대표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지역의 주부들이 바리스타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서 A카페에서 일하게 됐다. 6명의 직원 중에는 김 대표처럼 장애아를 둔 부모가 3명이다.
카페는 10평에 15명이 앉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다. 아메리카노 커피가 2000원으로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보다 50% 이상 저렴하다. 주 이용 고객은 봉사센터를 비롯해 사랑나눔복지센터와 함께 가는 장애인 부모회 서대문지부 등 지역 사회의 풀뿌리 단체 활동가들이다. 카페 수익금의 10%는 봉사센터에 기부된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지경숙(47) 함께 가는 장애인 부모회 서대문지부 회장은 폐현수막을 활용해 직접 만든 헤어핀을 카페에서 판매한다. 수익금은 모두 장애인 부모회에 기부된다. 카운터 왼쪽에 자리잡은 진열대에는 천차만별 형태의 헤어핀이 장식돼 있다.
"제 아이가 자폐아인데, 카페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녀요. 이 근처를 오가다 무슨 일이 생기면 A카페로 가라고 해요. 가까운 파출소보다 낫죠. 자폐아를 이해하는 분들이 계시니 안심이 되죠." 지 회장은 다음날 예정된 장애인 부모 모임을 위해 미리 쿠키를 주문했다. 커피만 파는 카페에서 어떻게 쿠키를 만드는 것일까? 궁금해 했지만 답은 곧바로 나왔다. 주문이 들어오자 최수경와 김혜영씨는 A카페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지난해 8월 문을 연 이 카페는 B카페. 바로 A카페의 자매카페다. 대형 제빵 오븐기가 갖춰진 B카페에서 쿠키와 머핀 등의 빵을 구울 수 있다.
아직 자생력 약하지만..."공동체 경제의 핵심은 매출 아니라 관계"
최씨는 벽에 붙어있는 조리법을 보고 재료 양을 조절했다. 버터 녹이랴 밀가루 휘저으랴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중노동이었다. 2명의 제빵사가 있었지만 일거리가 적은 방학기간에는 쉬고 있기에 두 사람이 대신 나선 것이다. 버터, 계란, 밀가루, 건포도, 아몬드, 계피가루를 넣은 반죽을 펴 오븐에 넣은 지 15분 만에 쿠키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두 카페 합쳐서 커피 100잔은 팔아야하지만 쉽지 않다. 두 카페의 월세가 40만원씩, 직원들 월급 주고나면 마이너스다. 이날처럼 쿠키, 빵 등 단체 주문이 들어오면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다. 김혜미 대표는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내느라 고민이 많다. 김 대표는 "길거리의 고만고만한 카페들하고는 달라야 한다"며 "차별화, 특성화된 아이디어를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A카페·B카페의 자생력은 아직 약하다. 서대문의 봉사단체,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임 장소로 활용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이용은 적다. 회원제(연간 10만원)를 도입해 커피값 50%까지 할인 해주는 등 회원 확대에 힘을 쓰지만 녹녹치 않은 상황이다. 회비 3만원, 할인율 20%로 낮춰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날 A카페에서 만난 김종남(48) 서울시 마을기업 인큐베이터는 두 카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공동체 경제의 핵심은 매출이 아니다"며 "마을 바깥으로 돈이 새어 나가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마을기업과 같은 공동체 경제의 핵심은 매출이 적어도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만든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된다는 지적이다.
"대형마트나 대기업 편의점처럼 지역에 빨대를 꽂고 돈을 뽑아가는 시스템은 점점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힐 겁니다. 대신 A카페처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착한 소비를 할 수 있는 마을 기업이 늘어날 거예요. A카페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 마을 사랑방이 되는 게 목표잖아요."